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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okdaegeon Mar 09. 2021

선우예권 피아노 리사이틀

2021년 1월 26일, 롯데콘서트홀

어느 인터뷰에서 선우예권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열심히 연주하는 것, 신뢰받는 인간이 되는 것, 거짓 없이 사람을 대하고 솔직하게 표현하려고 애쓴다."


아마 연주 비결에 관한 질문이었을 겁니다. 비밀스러운 방법이란 게 그저 열심히 노력하고 좋은 사람이고자 한다니... 그런 연주자의 마음이 너무 좋았습니다. 그때부터 팬이 되어 찾아 듣고 보았습니다. 브람스든, 베토벤이든, 쇼팽이든, 모차르트든, 수많은 곡들... 누구든 어떤 작곡가의 곡도 소화할 수 있지만, 선우예권은 어디로 가려고 할까? 그는 세상에 어떤 음악을 남길까? 무엇을 더 잘 해낼 수 있을까?


이런저런 작업들의 여정은 젊은 연주자의 길이겠지요. 다른 연주자라면 알아서 하겠거니 해도, 선우예권은 무얼 할까 자꾸 마음이 가더군요. 그래서인지 이번 공연 프로그램인 참 좋았습니다. 들려주되, 치우치지 않으려는 마음.


환상곡들은 떨렸고 소나타 8번은 설렜습니다. 론도는 감미로웠습니다. 너무 좋아서 한 번 더 적고 싶네요. 론도... 너무 좋았습니다. 드라마 '밀회'에 보면 주인공이 사랑을 표현하며 론도 511번 설명하면서, 2770개의 음표와 500개 정도의 겹화음을 만진다고 말합니다. 치는 게 아니라요.


선우예권 실연으로 들으니 조금 알듯도 합니다. 사랑은 저렇게 한다는 걸요. 근데 좀 슬픈 사랑이더라고요.. 어쩌면 제가 모차르트의 단조를 특히 좋아해서 이렇게 호들갑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쇼팽도 말해 뭐할까요. 다만, 내 안의 쇼팽이 너무 강해, 선우예권의 쇼팽에 적응하긴 쉽지 않았지만 뱃노래에서는 당분간 선우예권으로 쇼팽을 들어보자 싶었습니다. 마음이 그렇게 순간 들었습니다. 스타인웨이 소리도 참 좋았구요.


연주 외적으로 공연 자체는 아쉬운 점이 많았습니다. 누군가의 코 고는듯한 콧숨소리나, 어찌나 그렇게 떨어지는 프로그램북 등등. 하지만 작은 오점으로 전체를 망쳐버릴 순 없으니까요. 좋은 기억만 가져갑니다.


작년에 해야 했던 좋은 연주회들이 밀리고 밀려 이제야 연달아 열리다 보니 한 달 새 세상 아름다운 음악을 많이 듣습니다. 행복하네요. 한때 수상소감으로 '아름다운 밤이네요.'라는 말이 참 식상하다고만 여겼습니다. 이제는 그 뜻 조금은 이해합니다. 어제 10시 넘어 분위기와 함께 음악으로 만들어진 그 순간을 전달할 수 있는 표현을 고르라면, '아름다운 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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