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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okdaegeon Jul 28. 2022

잘 살고 싶어서

퇴사를 결정하게 된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잘 살고 싶어서'다. 


얼마 전 가톨릭 신학생들의 이야기를 다뤘던 KBS 다큐멘터리를 봤다. 자신이 믿는 신념에 따라 몸을 내던진 그들을 보면서 처음에는 '무엇에 대한 희생인가'라는 의문부터 들었던 게 사실이다. 그들 신학생들이 선택한 '희생하기 위해 포기한다'는 노력 과정은 나를 비롯해 많은 이들의 삶인 '얻기 위해 포기한다'와는 정반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념의 가치는 큰 것이고 그들의 확신에 존경을 보낼 수밖에 없다. 그들이 걷고 있는, 욕망의 반대로 향하는 다른 길의 여정이야말로 탐욕의 시대를 살아가는 인류가 가진 한 줄기 구원이라는 걸 안다. 


존경 반, 의문 반 시선으로 절반 정도 봤을까? 어느 신학생의 인터뷰에 나는 일시정지를 눌러야 했다. 그는 잘 살고 싶어서 신학생을 선택했다고 말했다.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최선으로 살아내는 방법이 신학대학에 입학하는 것이고 신부가 되는 것이라는 뜻이었다. 내가 희생이고 포기라며 그들의 선택을 재단하는 수준에 그쳤지만 오히려 그들은 그런 생각들을 아랑곳하지 않았다. 희생과 포기가 아닌 행동과 실현이었다. 나는 스스로에게 물어봐야 했다. 과연 나는 잘 살고 있을까? 잘 살기 위해 행동하고 노력하고 있을까?


꿈은 사라진 지 오래다. 그저 돈이 많았으면 좋겠다. 돈이 있어야 밥도 먹고 술도 마시고 운동도 하고 놀기도 한다. 맛있는 밥, 좋은 술, 많은 운동, 그리고 더 재밌게 놀기 위해서는 지금보다 돈이 더 많아야 하고 그래서 돈을 더 벌어야 했다. 회사도 그래서 다녔다. 일은 재밌지 않았다. 성취감은 있었어도 만족감은 없었다. 그렇게 10년을 넘게 살아왔다.


그 세월 동안 '잘 산다'는 그저 돈이 많다는 뜻이었다. 돈 이외의 것을 실현하는 삶을 '잘 산다'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나도 잘 살고 싶다. 그래서 회사를 그만뒀다. 



어제 새벽, 잠이 오지 않아 동네 3km를 달렸다. 오늘 회사에 가야 했다면 하지 못했을 행동이다. 달리고 와서 샤워를 하고 잘 잤다. 오늘이 내일에 얽매이지 않는 삶, 그래서 어제보다 오늘이 더 나을 수 있는 삶, 이게 어제를 기억하고 내일을 기대할 수 있는 삶이라면 너무 거창한 것일까?


그만둘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운이 좋다. 가족이든, 대출이든 뭐라도 묶여 있었다면 쉽게 결정할 수 없었을 것이다. 물론 여전히 대출 이자는 매달 꼬박꼬박 내야 하고 어떤 방식으로든 돈을 벌어야 하겠지만 아직은 실감 나지 않는다. 방법이 있겠지. 


그 뭐라도 하는 방법이 내가 잘 살기 위한 노력과 일치할지는 모르겠다. 며칠 지난 지금 분명한 건 내게 주어진 시간들을 온전히 내 인생에 쓰고 있다는 게 정말 좋다. 시간을 가치 있게 하는 게 오롯 나의 노력에 달렸고 정성을 들여 의미를 채우니 만족감이 정말 높다.


분명 많은 이가 회사를 다니는 저마다의 이유를 가지고 있고 그 이유의 무게는 정말 무겁다는 걸 잘 안다. 나도 그랬으니까. 하지만 나는 퇴사라는 큰 결정을 하고 회사라는 칸을 인생으로 바꿔 '회사를 잘 다니고 싶다'가 아니라 '인생을 잘 살고 싶다'는 마인드셋과 환경을 바꿨다. 지금 이 순간, 솔직히 마음이 편안하다. 무엇보다 무기력으로 빠지지 않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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