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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okdaegeon Aug 02. 2022

그들을 사람으로 대면한 적이 없다

지난주는 휴가였지만 회사에 갔다. 물론 출근을 한 건 아니었고 상사와의 퇴사 기념(?) 점심을 먹기 위해서였다. 그동안 집은 송파구 끝 거여인데 회사는 강서구 끝인 마곡이라 평소 출퇴근하는 게 정말 쉽지 않았다. 그래도 이제 한두 번 더 오면 거의 올 일이 없을 동네라서 괜히 천천히 운전하면서 왔다. 


그렇게 도착까지 신호 하나 남겨둔 상황이었다. 오른쪽에 배달 오토바이가 섰다. 마곡에서 정말, 정말  배달 오토바이가 많이 다니는데 그 숫자는 둘째치고 하나 같이 정말 위험하게 운전한다. 보행 신호에서 횡단보도를 넘나드는 건 기본이고 보행로를 침입하기 일쑤다.


불법이 자행될만한 환경적인 요소가 좀 있긴 하다. 마곡은 계획 지구라서 8차선 대로를 바라보는 건물들이 줄지어 서있고 또 그 안쪽으로 이차선 도로들이 있다. 그 이차선 도로를 사이에 끼고 양쪽으로 식당이며, 카페며, 건물 입구 등이 있다고 보니 도로에는 불법주차에, 질주하는 오토바이에 무단 횡단하는 사람들까지 정말 난장판일 때가 많다. 이렇게 너도나도 지키지 않으니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그레샴의 말이 마곡에서만큼은 딱 들어맞는다.


아무튼 오른쪽에 선 배달 오토바이를 보면서 이런 생각들이 뇌리를 스쳐가고 '쟤 지나가면 출발해야지'라고 다짐하던 와중에 엄청난 장면을 목격했다. 아니 배달원이 아이스 아메리카노 하나가 포장된 비닐을 들고 살짝 열더니 거기 꼽혀 있는 빨대에 입을 대고 마시는 게 아닌가! 글에서는 배달원이라고 좋은 표현을 쓰고 있지만 그때는 "아니 저 XX가 미쳤나"라고 소리쳤다. 치킨 배달시키면 몇 조각 몰래 빼먹는다는 뉴스는 본 적이 있는데 그걸 실제로 목격할 줄은 몰랐다.


'자신이 주문하고 자신이 마실 것을 직접 마신 것'이라며 아니라고 부정해봐도 이미 늦었다. 내가 자주 가는 집 앞 카페에도 배달 주문을 많이 받아서 가져가는 모습을 자주 봤다. 그건 분명 배달 중인 아이스 아메리카노였다. 업장에서 배달 보낼 때 커피에 빨대를 오픈해 꼽아 보내는 경우는 없을 테니 '설마 아니겠지' 싶기도 했다. 하지만 많은 이들은 자신이 이동하면서 마실 커피를 테이크 아웃할 때 비닐에 포장해가지 않는다. 차로나 오토바이로 이동하는 사람은 더더욱.


나는 배민이든 뭐든 배달 플랫폼을 통해 배달을 시켜본 적이 없다. 치킨도 직접 사러 나갔고 그나마 시킨다면 짜장면에 탕수육 정도다. 그것도 혼자일 때는 시키지도 않았다. 지난해였던가? '배민 한번 안 시켜본 사람 나오라'던 광고가 있었는데, 그게 나였다.


그래서 생각이 들었다. 내가 배달 오토바이를 운전하는 사람들을 대면할 일이 없었기 때문에 이렇게 부정적인 방향으로 의심하는 게 아닐까? 사람으로 만날 일이 없어서, 그래서 그저 오토바이로 거리에 소음을 발생시키고 도로에서 불안을 일으키는 부류로만 여기는 것이 아닐까? 사람으로 만난 적이 없으니 사람으로 보지 않았고 사람으로서 공감도 하려 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치킨 배달이라도 시켜 그들 역시 사람임을 굳이 확인하고 싶지 않다. 그날의 목격으로 달라진 게 있다면 이전까지는 피해야 할 대상으로만 여겼다면 이제는 관찰의 대상이 됐다는 것이다. '왜 그럴까',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을까', '꼭 그래야만 할까' 싶은 호기심이 들기 시작했다. 그다지 매력적인 주제는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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