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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석대건 Aug 06. 2022

나는 쇄빙선이다

최현우, 사람은 왜 만질 수 없는 날씨를 살게 되나요

어제는 잠이 오지 않아 시를 읽었다. 눈에 걸린 것은 김개미의 '자면서도 다 듣는 애인아'였지만 손에 잡힌 것은 최현우의 '사람은 왜 만질 수 없는 날씨를 살게 되나요'였다. 천천히 잘 읽어내지 못해 1시간 정도 걸렸다. 매트리스 끄트머리에 머리를 걸고 베개를 넣었다 뺐다를 반복했다.


'조금씩 베어먹으면 오래 먹을  있다' 구절을 읽으니 시는 쓰는 후배동생이 생각났다. 시를 쓰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생기면 자연스럽게 써질 거라고 위로했다. 돌이켜보니 잘못 말해준  같다. 뭐든지   있지만 아무것도   없다는   스스로  알고 있으면 그런 말을 하다니. 차라리  구절을 말해줄  그랬다. 조금씩 쓰면 오래   있다고. 나중에 말해줘야겠다.


시집에는 시인의 20대에 적힌 시들이 적혔다. 풀어진 마음들이 엿보이는 시들이 많았다. 해야겠다는 다짐보다는 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담겼다. 제목에서도 그런 불만이 읽힌다. 우리는 만질 수 없는 것을 바라보기만 할 뿐이다. 1989년생이 그의 20대 시절인 2010년대는 배가 잠겼고 땅이 흔들렸고 사회가 깨졌다. '우리는 어둠을 갱신하며 서 있다'고 했을 때 그 절망이 느껴졌다. 어둠도 새로울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는 살아내고 있다. 그는 '여전히 어떤 사람과 나는 남아서 쇄빙선처럼 얼음의 방향으로 간다'며 깨는 쪽을 택했다. 쇄빙선의 운명은 나아가기 위해 파괴하기로 정해졌다. 깨어지지 않은 얼음은 없고 갈라진 틈으로 길이 만들어진다. 바닷길을 내어 가는 끝에 무엇이 있을 수 있고 없을 수 있다. 사는 것도 그렇겠지. 있을 수도 없을 수도. 나도 쇄빙선처럼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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