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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okdaegeon Aug 21. 2022

종이 청첩장에 대한 고민

동아리 후배가 결혼을 한다. 나이 차이가 많아 학교를 같이 다니지는 않았지만 동아리 행사를 치르면서 인연이 쌓였다. 게다가 워낙 싹싹하고 붙임성이 좋은 친구라서 오히려 선배인 내가 알고 지낸다는 게 고마울 정도다. 어제는 저녁 식사 초대를 받아 이태원에서 만났다.


후배의 결혼 이벤트는 이런저런 이유로 연락을 못했던 이들과 다시 만나기에도 참 좋다. 우리의 삶은 평행선이 아니기에 이렇게 각자의 선들이 만나는 접점이 생길 때 그 반가움은 생각보다 정말 크다.


가볍게 안부를 주고받고 서로 사는 소식을 나누다가 자연스럽게 후배의 결혼 준비 스토리로 흘렀다. 10년을 만난 커플인지 생각보다 스트레스 없이 준비하고 있는 것 같아 내 기분이 다 좋았다. 그러다 청첩장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후배의 청첩장은 단순했다. 부부에 대한 축복을 바라는 인사와 함께 결혼식 일시, 장소 등의 정보만 적힌 3단 접이 종이였다. 후배는 말했다. 청첩장을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고민했다, 있어야 한다는 것은 알면서도 한번 쓰이고 버려질 텐데 주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처리하기 어려운 존재(?)가 되지 않을까 걱정했다고 했다. 다른 모임에서는 받는 이들이 모바일 청첩장으로도 충분하니 종이는 가져오지 말라고도 했다며, 그래도 오늘 모임은 선배들은 만나는 것이니 종이로 챙겨 왔다고. 버리기도 애매하고 처리하기 어려운 어떤 것.


어느새 이야기 주제는 서로의 청첩장 보관법으로 변했다. 누구는 여기저기 두다가 이사를 하게 되면 정리한다고 했고, 누구는 청첩장만 모아둔 박스가 있다고 했다. 또 누구는 아예 받지 않는다고 했다.  나도 청첩장은 쉽게 버리지 못하고 책장 속 책들 사이에 숨겨뒀다. 그러는 이유라면 그냥  부부의 이름이 적혀있다는 이유만으로.


의미는 필요의 조건을 충족한다. 청첩장을 굳이 물성의 종이로 만들어 내는 이유는 의미를 담기 때문에 꼭 필요하다고 생각해서다. 하지만 이제 조금 변한 것 같다. 필요와 의미를 저울이 기울었달까. 종이 청첩장은 곧 사라질 것 같다. 종이가 없더라고 그 의미가 사라지지 않다는 걸 아는 이들이 더 많아졌다.


그러면서 '지워지지 않는다'에 대한 생각으로 번졌다. 내가 그렇듯 청첩장은 그저 종이일 뿐이지만 인쇄된 이름을 보면 쉽게 버릴 수 없다. 그래서 언젠가는 이름 부분만 찢어내 버린 적도 있다. 마치 택배 박스에서 주소 부분은 떼어내듯. 연필로 쓰면 지우고 지울 수 있지 않을까? 근데 또 걱정인 게 결혼은 약속인데 그 약속의 굳건함이 퇴색될까 싶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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