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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okdaegeon Mar 12. 2023

내 바쁨은 정말 가치 있을까?

최근 한 달간 정말 바빴다. 서비스 개발 관련 프로세스를 조율하고, 작업을 요청하기 위한 기획서와 로드맵 등을 작성했다. 원활한 진행을 위해서 꼼꼼하게 해야 했고 정성을 들일수록 더 바빠졌다. 그 와중에도 미팅 일정을 소화해야 했고 기관에서 진행하는 회의에도 대표로서 참석해야 했다. 또 사이사이에 지원사업들을 확인하고 내용들 업데이트해서 제출했다. 


이번 주말에는 함께 서비스를 꾸려가고 있는 팀원을 만나 회의를 했다. 다들 이미 직장을 다니고 있기 때문에 내가 주말에 나서 맞춰야 한다. 한 명은 송파에서 또 한 명은 인천에 만났다. 그러고 나서 다시 사무실에 왔다. 다음 주 업무를 위해 미리 법무법인에 관련 자료를 보내두어야 하고, 우리 유저들에게는 지연되고 있는 서비스 기능 관련 소식을 알려야 한다. 이외에 개인적인 일들까지 했던 걸 생각하면 바빴다는 말로밖에 설명되지 않는다. 


이렇게 정신없이 지내다 보면 꼭 구멍이 생기기 마련이다. 완벽하지 않은 사람이기에 실수라기보다는 자연스러운 결과이겠지. 지난주 금요일에는 대학교 친구의 청첩장 모임을 깜빡했다. 한 달 전에 정했던 일정이었는데 약속 시간이 지나고 '어디냐' 전화를 받고서야 인지했다. 물론 나만 만나는 것은 아니었기에 그나마 다행이었지만, 만약 투자 관련 미팅 같이 중요한 자리였다면 나는 대표로서 실격이었다.


그러다 보니 내가 이렇게 바쁘게 사는 게 과연 괜찮을 걸까 의문이 든다. 스트레스를 받는다거나 번아웃이 온다는 의미가 아니라, 이렇게 바빠야 할 가치가 있냐는 것이다. 


https://www.hbrkorea.com/article/view/atype/ma/category_id/7_1/article_no/1972/page/1


사람들은 어떤 일에 많은 수고를 들이면 들일수록 그 일이 가치 있다고 여긴다. 이걸 '노력 정당화(Effort justification)이라고 한다더라. 생각해 보니 나도 이 노력 정당화에 빠져 있는 것도 같았다. 정신없는 와중에 잠깐 커피 타러 사무실 밖으로 나오면서 나 스스로 '정성을 들이자'라고 다짐하곤 한다. 다시 보니 이게 노력 정당화다. 


나 말고도 많은 사람들이 이런 정당화에 빠진다. 그리고 거기서 그치지 않고 한 발 더 나아가 도덕적 자부심으로도 이어진다. 이건 사회적으로 인식되는 관념인데, 심리학자 재레드 셀니커에 따르면 미국, 프랑스, 한국 사회 전반적에는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 사람들을 가리켜 “도덕적으로 훌륭하다”라고 여기는 경향이 있었다고 한다. 실제 어떠한 성과를 냈는지는 무관하게 말이다.


나 역시도 나의 바쁨이 정말 가치가 있었을까, 그러니까 정말 성과가 있었나 반성해 보면 생각보다 성과는 없었다. 그저 해야 할 일을 하는 정도였달까. 만약 해야 할 일을 하는 수준의 성과라면 평일에도 다 처리할 수 있었을 것이다.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나는 업무에 대부분을 표면적으로만 바쁘고 하는 일은 없이 보냈다. 


이에 대한 아주 좋은 인용으로 (글에 나온) 유명한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 농구팀 감독 존 로버트 우든은 “무엇인가를 했다고 해서 성취했다고 착각하는 실수를 범하지 말라”라고 했다.


나의 바쁨을 바쁘게 만드는 타임 타이머...


그렇다면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할까. 애엄 웨이츠는 '업무-활성 네트워크(task -positive network)'와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default mode network_'의 쌍방 활성화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여기서 전자는 우리 뇌 부위 중에는 집중력이 필요한 일을 할 때 활성화 되고 후자는 우리가 휴식할 때 기본적으로 활성화된다.


핵심은 업무에서 성과를 낼 수 있는 에너지, 그러니까 고차원적 사고는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에서 비롯된다. 문제는 디폴트 네트워크가 업무-활성 네트워크는 음의 상관관계이기 때문에, 만약 업무-활성 네트워크만 돌리게 된다면 결국 앞서 말한 대로 표면적으로 일만 하고 성과 없이 바쁘기만 한 상태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업무-활성 네트워크의 효율적으로 돌리기 위해서는 일부러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 즉 뇌가 현실에 얽매이지 않고 방랑할 시간을 주어야 한다.



맥도널드를 세운 레이 크록은 '잠자는 것도 일로 생각하고 최선을 다해 쉬었다'라고 했으니 어쩌면 일을 더 잘하기 위해 쉬어야 한다는 뻔한 말은 생각보다 지키기 어려운 정언 명령이겠다 싶다. 


그래서 생각한 방법이 똑같이 이전과 같이 바쁘게 살되, 정의를 달리 하는 것이다. 일주일의 스케줄을 살펴보면 운동을 하거나 학원에 가는 시간도 있다. 그런데 나는 그것 역시도 최선을 다한다는 마음가짐을 업무-활성 네트워크 안에서 해내고 있었던 것 같다. 생각해 보면 좀 여유롭게 할 수 있는 것인데 말이다. 


먼저 캘린더 설정을 달리했다. 예를 들어 업무 미팅은 '업무-활성 네트워크'(파란색), 운동 시간은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초록색)으로 분리했다. 예전에는 모두 최선을 다하는 마음 가짐으로 임하는 하나의 색을 가진 일정이었다. 이렇게라도 나 스스로 여유의 주문을 준다면 디폴트 모드가 활성화되길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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