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에세이

나는 지금 대만에 있어

그리고 과거에도 있지

by SEOK DAE GEON

대만 타이페이에 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사랑해줘) 말하자면, ximen 근처 호텔에 있다. 마치 이 글을 읽는 당신이 나를 당연히 아는 사람인 거처럼, 나답지 않게, 여행으로 온 것은 아니다. 출장으로 온 대만이다.


출장이 아니었다면, 평생 이곳을 올 일이 있겠냐 싶던 날들이었다. 나는 여행을 싫어해. 그곳에 기대가 없어. 그래서 짐을 챙기는 게 싫고 챙기지 못한 걸 후회하는 게 싫고, 후회하는 나를 보면 그래도 되는 거라고 '그러려니' 하는 게 싫다. 별 것도 아닌 걸로 그런 생각하냐고들 하지만.


그런데 여기는 왜 이렇게 좋을까. 뜨뜻한 살갗에 닿는 습도가 좋고, 길을 걷다가 콧구멍을 밀고 들어오는, 뭔지 알 수 없는 음식 냄새가 맛있다. 방금도 금방이라도 비가 올 것 같은 하늘 아래에서 걷다가 왔다. 무슨 박물관에 가려고 했는데, 가다가 길을 잃어서 갔던 길로 돌아왔다.


무슨 일인지 평소에 하지 않던 용기도 났다. 용기라고 해봐야 거창할 것도 없이 심야 카페에서 혼자 맥주 마시다가 온 것뿐인데, 어찌나 맛있던지. (그래서 지금도 술기운에 여행기를 쓰고 있다. 제일 싫어하는 게 여행기인데.)


여기는 서울로부터 1시간이 느리다. 그 어느 날 선배 누나는 30살이 싫다며, 생일날 딱 그 시간에 맞춰 날짜변경선을 넘었다. 누나는 남들보다 서른 이전의 날이 하루 많다.


나는 그녀로부터 과거에 있다. 내가 지금 이곳에서 이 시간에 아직도 잊지 못했다고, 여전히 사랑하고 있다고, 앞으로도 기억할 거라고 말한다면, 그 말들은 그녀의 시간대에서 과거에만 존재하는 단어들로 남겠지. 영원히 닿을 수 없는 과거에만 존재하는 고백이라니. 얼마나 낭만적인가. 마치 대만 밤거리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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