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 순간이 마지막인 것처럼 깨어 있을 수 있다면
오늘은 입사하고 지금까지 제일 힘든 날이었다.
자세한 내용을 밝히기는 어렵지만, 정말 쉽지 않았다.
회사에서 비참한 기분을 느끼게 되는 상황은 다양할 수 있을 텐데, 기본적으로 존중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 느끼거나 가치를 인정받지 못한다고 느끼는 상태가 그 근본적인 원인이지 않을까 싶다.
그러나 같은 상황에 대한 해석은 객관적이기보다는 주관적이다. 누군가가 나에게 존중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는지, 가치를 충분히 인정하는지에 대한 판단을 정확하게 하기는 매우 어렵다. 존중, 인정, 존경심 등을 언어, 비언어적으로 표현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이는 시간, 공간, 그리고 사회의 표현 양식과 규범에 제한받기 때문이다. 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커뮤니케이션은 특정인을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더욱 잘못 해석될 여지가 다분하다.
오늘 있었던 일에 대해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겪고 나서 한참 숙고하고 보니 이제 핵심에 조금 더 다다르게 된 것 같다.
비참함은 존중과 인정의 부재라는 주관적인 판단에서 온다. 그런데 누구나 존중하고 인정하는 방식은 다를 수 있기 때문에 타인에게 내가 원하거나 익숙한 방식의 존중과 인정을 바라서는 안 된다. 사회에서 타자를 인정하는 메커니즘에는 노이즈가 많다. 의도의 불분명함, 표현 양식의 불확실성, 그리고 전달 방식의 불완전함 모두가 하나의 소통 기획으로서 인정이나 존중을 성공보다는 실패의 가능성이 더 높은 것으로 만드는 것 같다.
게다가 타인의 존중과 인정을 갈구하는 사람은 안정적인 자아를 가지기 어렵다. 이렇게나 불확실한 메커니즘을 가진 것을 가지고, 신뢰할 수 없는 타자의 존중 표현 따위에 자신의 자존감을 맡길 수는 없다.
용기는 두 가지의 조건을 가지는 것 같다.
첫째, 내적으로 명확한 옮고 그름, 좋고 나쁨의 기준이 있어야 한다. 특정 상황에 대한 사실/가치 판단을 위한 다양한 기준과 경험치가 쌓여 있어야 하고 인지적이기보다는 직관적인 판단이 가능해야 한다.
둘째, 자아가 기억할 수 있는 행동의 역사 범위 내에서, 자존감과 자신감을 꺾을 만큼의 그릇되거나 나쁜 행동이 없거나, 있는 경우에 반성이나 사과를 통해 정리돼 있어야 한다. '내가 이런 말/행동을 해도 되는 사람인가?'라는 질문을 일으키는 수준의 비일관성이나 명백한 부정 증거가 있다면 자아는 용기를 낼 수 없게 된다.
그렇다면 비참한 감정을 느끼는 상태에서 용기를 내서 자존감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훈련이 필요하다.
1. 마음챙김
항상 깨어 있어야 한다. 깨어 있는 모든 순간에 좋음과 나쁨,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는 판단력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정신이 게을러져 있는 상태에서의 행동을 추후에 정당화하기 시작하면 곤란하기 때문이다. 애초에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을 정도로 깨어 있어야 한다.
2. 성찰
명상의 수준이 일정 수준으로 올라가기 전까지는 마음챙김 수련을 하더라도 모든 순간에 지혜가 발휘되기는 어렵다. 따라서 매일 있었던 일들을 성찰하며 마음챙김과 내적인 기준, 쌓인 경험치 등을 성찰하는 시간을 보내야 한다. 이 과정이 얼마만큼 인지적/의식적으로 흘러가야 하는지, 질문을 던진 채로 일정한 시간의 호흡명상으로도 가능한지는 아직 미지수다. 성찰에서 지혜와 이해로 이어지려면, 특정 행동이나 마음 상태의 원인을 규명하는 작업이 도움 될 것 같다. '왜 나는 특정한 상황에서 존중받지 못한다고 느끼는가?'와 같은 질문이 예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나가며
오늘 글은 매우 두서없는 일기가 되어버렸다. 그러나 글을 쓰며 마음 탐구를 통해 얻은 성과가 분명히 있었다. 용기를 낼 수 있으려면, 매 순간 깨어 있어야 하고 주기적으로 성찰하고 반성해 마음을 청정한 상태로 유지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