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2. 10살 강아지와 함께한 빛나는 600일
안녕하세요!
오늘은 다솜이의 영원한 숙적, 비둘기와의 일화를 담아보았습니다.
여기에 풀어낸 얘기 말고도 비둘기와의 추억이 참 많은데 ㅎㅎ
다솜이한테는 시트콤같은 일이 많이도 일어나는데, 후술한 그날이 역대급이었습니다!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요?
다솜이는 좀처럼 뛰는 법이 없었다. 언제나 타닥타닥 잰걸음으로 걸어 다녔다. 양쪽 다리에 슬개골 탈구가 있는 터라 불편함 때문에 뛰지 않는 것 같기도 하고, 그저 뛰어본 적이 없어서 그런 것 같기도 하다고 추측만 할 뿐이었다.
아직 찬 기운이 채 가시지 않은 어느 날, 나와 같이 작업실로 출근하던 다솜이가 갑자기 뛰기 시작했다. 처음 느껴보는 스피드에 당황해서 리드줄을 놓지 않으려는 내 손아귀 힘도 덩달아 세졌다. 다솜이는 순간 속력을 높여 달려가더니, 작업실 앞 작은 공터에 옹기종기 모여있던 비둘기 떼를 향해 돌진했다. 난데없는 맹수(?)의 공격에 도시의 비둘기 떼들이 순식간에 흩어졌다. 몇몇은 하늘 위로 날아가 버리고, 몇몇은 바로 몇 발자국 떨어진 벤치 앞으로 자리를 이동했다. 다솜이는 한 마리도 놓치지 않겠다는 마음인 건지 맹수의 습격을 피해 도망친 비둘기들을 전부 쫓아다녔다. 오른쪽으로 뛰었다가, 왼쪽으로 뛰었다가. 나와 연결된 리드줄이 팽팽해지면서 다솜이가 뛰어간 자리가 컴퍼스를 돌리듯 원을 이루었다.
뛸 줄 모르는 강아지인 줄만 알았던 다솜이가 귀를 펄럭거리며 신나게 뛰는 것을 보고, 나도 모르게 연신 "잘한다!"를 외쳤다.
그것이 화근이었을까? 비둘기를 다 내쫓은 다솜이는 나를 돌아보며 뿌듯한 미소를 지었다. 나는 '뛴 것'을 두고 잘했다고 한 것인데, 다솜이는 '비둘기를 쫓은 것'을 잘했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누나를 기쁘게 해주려는 착한 마음에서 비롯된 것인지는 몰라도...
그날 이후 다솜이와 비둘기의 전쟁이 시작되었다.
다솜이는 비둘기만 보면 전력을 다해 뛰었다. 비둘기를 쫓다가 넘어져서 입술에서 피가 난 적도 있다. 이 정도 되니, 다솜이는 비둘기들 사이에서 이 동네 깡패견으로 소문이 났을지도 모르겠다.
시간이 흘러 눅눅한 공기가 깡패견의 오감을 자극하던 이듬해 초여름. 아직도 그날을 잊을 수 없다. 문제의 사건이 벌어진 그날!
여느 때처럼 오전 산책을 마치고 집에 돌아가는 길, 제법 무더워진 공기가 평소에 잘 가지 않던 좁은 골목의 쿰쿰한 냄새를 실어와 다솜이의 코에 닿았다. 킁킁! 궁금해진 다솜이는 집에 가기를 마다하고 오랜만에 골목 탐방을 하자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누나! 이쪽으로 가자!" vs. "다솜아! 이제 집에 가야지!"
이미 한바탕 산책을 한 후였기 때문에, 이제 그만 집에 가서 쉬고 싶었던 나는 한껏 허리를 곧게 피고 리드줄을 당겼다. 다솜이도 지지 않았다. 결심한 게 있으면 의지를 굽히는 법이 없는 다솜이는 '나 이제 못가' 스킬을 발휘하며 길바닥에서 엉덩이를 떼지 않고 똑바로 나를 쳐다보았다.
서로 눈을 마주치며 소리 없는 기싸움을 벌이던 그 순간.
'치어억-!'
무언가 떨어졌다. 무언가 정교하게 날아와 우리 둘 사이를 갈랐다. 무언가 정확히 다솜이의 이마를 공격했다. 딱밤을 맞듯 다솜이의 작은 얼굴이 살짝 뒤로 젖혔다 돌아왔다.
새똥이었다.
순간, 집중하며 빛나던 다솜이의 눈동자가 흐려졌다. 나는 상황 파악을 하지 못하고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상황 파악을 하지 못한 건 다솜이도 마찬가지였다. 다솜이는 갑자기 느껴지는 진한 비릿함과 묵직함에 어리둥절했다. 당황함에 “멍”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그저 혀를 날름거리며 갑자기 콩캉콩캉 뛰는 심장을 진정시키려 애쓸 뿐이었다.
그제야 다솜이의 이마 정중앙에 내려앉은 누런 점액질을 발견한 나는 화가 치밀어 올랐다. -- "세상에 어떤 간 큰 비둘기가 우리 다솜이를!!"
그러다 곧이어 웃음이 터져 나왔다. -- "세상에 어떤 강아지가 새똥을 맞아~!! 하하하!"
작은 눈이 동그랗게 커지며 혀를 날름거릴 뿐, 화를 내지도 못할 만큼 의기소침해진 다솜이의 당황스러움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새는 그냥 아무 데나 똥을 싸는 게 아니라 하늘에서 아래를 쳐다보며 정확히 조준해서 배변한다고 한다. 시커먼 아스팔트 위에 새하얀 다솜이의 얼굴이 마치 과녁처럼 느껴졌나 보다. 온 동네 비둘기를 내쫓고 다니는 소문난 깡패견에게 앙심을 품은 것일까? 마침 미동도 없이 까만 배경 위에 하얀 점을 찍어주었으니, 그 비둘기는 옳다구나 하고 다솜이를 조준한 것이다.
긴 말 필요 없이, 다솜이와 비둘기와의 소리 없는 전쟁에서 비둘기의 대승이었다.
내 착각인지 몰라도 다솜이는 그날 이후 더욱 맹렬히 비둘기를 몰아냈다. 그러나 나는 생각했다. 네가 아무리 열심히 뛰어다니고, 넘어지면 다시 일어나서 비둘기를 쫓더라도, 넌 비둘기한테 안돼. 이마에 새똥을 맞은 그날, 이미 넌 진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