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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찬 Aug 08. 2024

뜻밖의 강아지 팬미팅

Part 2. 10살 강아지와 함께한 빛나는 600일



강아지와 함께하는 일상은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돌아간다. "컹!" 경쾌한 알람소리에 눈을 뜨자마자 적당히 데운 수비드 소고기 사료로 밥상을 차려주고, 언제나 준비되어 있는 물그릇을 신선한 물로 바꾸어준다. 아침마다 사과를 잘게 잘라 나누어 먹는 것도 빼놓을 수 없다. 깨끗이 비운 밥그릇을 정리할 새도 없이, 강아지는 어서 옷을 챙겨 입으라고 재촉한다. 가장 중요한 일과인 산책 할 시간이 다가왔기 때문이다.


다솜이는 루틴을 중요시하는 강아지라, 별다른 일이 없다면 위에 나열한 오전일과를 매일같이 수행해야 했다. 특히, 소변은 배변패드에 곧잘 하지만 큰 볼일은 밖에서만 해결하는 다솜이의 장건강을 위해, 최소 1일 1 산책은 무슨 일이 있어도 지켰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다솜이의 산책이 1순위였다.


시간을 칼같이 정한 것은 아니지만, 다솜이의 오전 산책은 주로 11시~12시쯤 이루어졌다. 시계도 볼 줄 모르면서, 소파에서 쉬고 있다가도 이 시간만 되면 나를 옷방으로 데리고 가는 것이 여간 신통하지 않았다.


아파트 1층 출입문을 나서자마자 화단으로 달려가서 급한 볼일을 해결하고, 이 동네 강아지들의 '핫 플레이스'로 불리는 전봇대에 다리를 높게 들어 시원하게 흔적을 남긴다. 몸이 한결 가벼워진 다솜이가 엉덩이를 씰룩대며 나무, 전봇대, 주차방지봉 등 정해진 코스를 따라 한 바퀴 마킹투어를 돈다. 밤 사이 자신의 영역이 안전하다는 것을 확인하고 동네 다른 강아지들의 냄새까지 꼼꼼하게 맡아 정보를 습득하면, 비로소 그날의 산책이 시작된다.  


다솜이와 함께하는 산책길은 늘 내 예상보다 길어졌는데, 그 이유는 첫째로 다솜이가 가보고 싶은 곳이 많아서였다. 집으로 오는 지름길보다 빙 둘러서 오는 길로 가고 싶어 했고, 쉽고 편한 큰길보다 외진 작은 길을 가보고 싶어 했다. 둘째로 궁금한 것이 많아서였다. '왔던 길도 다시 보자' 정신으로 매일 보던 풍경, 다니던 길도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길거리의 풀 한 포기, 새로 심긴 꽃, 심지어 바닥에 붙어있는 껌까지도 살뜰히 살펴보고, 냄새를 맡아댔다.


좁은 길을 개척하는 다솜이


세 번째 이유로는 동네 사람들이 다솜이를 가만 두지 않아서였다. 다솜이와 함께 걷다 보면 '내가 슈퍼인기견(犬)을 키우나'하는 착각이 들 때도 있었다. 아파트 단지에 삼삼오오 모여있는 어르신들은 가장 긴장해야 할 대상이었다.


"아이고~ 강아지가 얌전하네~"

"예쁘장하게 생겼네! 숙녀네 숙녀야!"

"몇 살이여? 애기같은데?"


어르신들의 예상은 십중팔구 빗나갔다. 다솜이가 인형처럼 생겼다며 한두 마디씩 건네시다가, 대개는 '우리 강아지는 이랬었는데 말이야~' 하면서 저마다 기억 속의 강아지 얘기를 꺼내놓으시곤 했다. 그런데 정작 다솜이는 어르신들에게 별 관심이 없어했다. 이제 그만 가자는 강아지와 끊임없이 말을 이어가는 어르신들 사이에서 나 혼자 갈팡질팡하며 곤혹을 느끼기 일쑤였다.


공원에 갔다가 간식을 얻어먹는 일도 다반사였다. 일부러 좋은 수제간식을 챙겨주셨는데 이빨이 없는 다솜이가 딱딱해서 못 먹는 경우도 있었지만, 센스 있게 습식 간식을 선물해 주셨을 때에는 게눈 감추듯 먹어치우는 다솜이를 보며 나도, 선물해 주신 분도 흡족한 미소를 짓기도 했다. 서로 아는 사이도 아닌데, 강아지가 귀엽다는 이유로 선의를 베푸는 사람이 많다니! 아직 세상은 살 만하다는 것을 강아지를 통해 느끼게 되는 날들이었다.


다솜이는 어린이들 사이에서도 인기만점이었다. 다솜이의 산책시간이 어린이집 산책시간과 맞물리는지, 앞치마를 두른 선생님 뒤를 따라 서로 손을 맞잡은 아이들이 줄지어 산책하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었다. 그러다 한 아이가 다솜이의 이름표를 보고 친구를 불러 세웠다.


"다솜아! 이 강아지 이름도 다솜이래!"


그 어린이집에도 다솜이라는 이름의 어린이가 있었나 보다. 별안간 자신보다 5살은 족히 어린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다솜이는 당황해서 눈만 뻐끔대며 나를 쳐다볼 뿐이었다. 그중 어떤 어린이가 다솜이인지는 아직도 오리무중이다.


뜻밖에 성사된 팬미팅. 도와달라는 눈빛을 보내는 다솜이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즐겨 산책하던 집 근처 공원에서의 일이었다. 그날도 점심시간쯤 다솜이와 한 바퀴 산책을 하고 있는데, 한 남자가 나를 따라오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검은 옷에 모자까지 눌러쓴 모습이 어딘가 느낌이 좋지 않아 얼른 자리를 떴다. 그런데 다음날도 같은 사람과 마주친 게 아닌가. 전날과 마찬가지로 나를 따라오는 것 같은 느낌에 괜히 다솜이에게 이리저리 말을 걸며 불안한 마음을 떨치려 애썼다.


'밝은 대낮에 사람도 많은 공원인데! 내 착각이겠지...' 하며 걸음을 재촉하던 순간, 어느새 바로 뒤까지 따라온 그 남자가 말을 걸어왔다. 콩닥대는 놀란 가슴 진정시키려 나도 모르게 리드줄을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


그런데 검은 옷의 그 남자는 내 예상과는 정반대로, 수줍게 볼을 붉히며 이렇게 말하는 것이 아닌가!


"저기... 지난주부터 지켜봐 왔어요..."

"아.. 네...?"


남자친구가 있다고 말을 해야 하나.. 고민할 새도 없이 남자가 말을 이어갔다.


"강아지가 너무 귀여워요!! >.<"

 

남자는 오래 숨겨온 마음을 고백이라도 하듯, 다솜이에게 눈을 고정시키며 쉴 새 없이 조잘댔다. 자신은 근처 직장에 다니는 회사원인데 어느 날 점심을 먹고 소화시킬 겸 공원을 걷다가 우연히 산책하고 있는 다솜이를 보게 된 것. 하얗고 복실복실한 작은 강아지가 당당하게 걷는 모습이 인상 깊어 계속 같은 시간에 공원에 오게 되었다는 것. 볼수록 귀엽고 인형 같은 모습에 눈을 뗄 수 없어서 말까지 걸게 되었다는 것. 자신은 요크셔테리어를 키우고 있는데 지난주에 미용을 했다는 것까지도!


우리 다솜이를 예쁘다고 하니, 혹시 나쁜 사람은 아닐지 의심했던 마음이 눈 녹듯 사라지고, 느닷없이 감사한 마음이 자리 잡았다. 그 후로도 몇 번인가 마주친 그분은 볼 때마다 다정하게 다솜이에게 눈인사를 하며 건강하라는 인사를 빼놓지 않았다.


늘 뜻밖에 일어나는 다솜이의 팬미팅 때문에 산책시간은 늘어났지만, 다솜이가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에 나 역시도 기분이 좋아지는 해프닝들이었다. 동물을 좋아하는 사람 중에 나쁜 사람은 없다고 하지 않나. 다솜이에게 말을 걸어오는 사람은 모두 동물을 좋아하는 사람일 테니 다솜이는 착한 사람만 만나서 참 다행이다.


누나와 함께 공원 산책을 즐기는 다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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