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2. 10살 강아지와 함께한 빛나는 600일
안녕하세요!
어제 치앙마이에서 돌아와서 여독이 덜 풀려 그런지, 마감기한에 꼭 맞추어 올리게 되었네요.
이번 편에서는 '다솜이의 자의식'에 대해 적어보았습니다.
지난 편을 읽은 후에 이해되는 부분들이 있으니, 아직 못 보셨다면 전편도 함께 확인해 주세요 :)
다솜이는 10살이 넘은 나이에 우리 집에 와서 불과 600일 정도를 같이 있었을 뿐인데, 나는 종종 다솜이를 아기 강아지 시절부터 키웠다고 착각하곤 한다. 다솜이와 함께한 600일은 한 강아지의 일생을 압축한 것처럼 느껴진다.
비틀거리며 한걸음 한걸음 걸음마를 타던 아이가 무섭게 뛰어다니며 비둘기를 쫓기까지. 뻐끔뻐끔 눈도 잘 못 뜨던 아이가 초롱초롱 빛을 내며 나를 바라보기까지. 몇 가닥 없는 털 사이로 분홍 속살을 내보이던 아이가 보송보송 흰 솜털로 뒤덮인 사랑스러운 바야바가 되기까지. 그리고 '손', '앉아'와 같은 기본적인 지시어뿐 아니라 제 이름도 못 알아듣던 아이가 점점 소통을 하고 영리하게 머리를 쓰는 척척박사가 되기까지!
이 모든 과정을 함께했으니 말이다.
외형적인 변화와 건강해진 모습은 눈에 띄는 부분이지만, 점점 다솜이가 똑똑해진다는 것은 쉽게 알아채기 어려운데 이것을 피부로 느끼게 해 준 일화가 있다.
미국의 심리학자 고든 갤럽(Gordon G. Gallup)에 따르면 거울 검사를 통해 동물의 자의식 능력을 판단할 수 있다고 한다. 거울에 반사된 모습을 보고 '자신'으로 인지하는지에 따라 자의식이 높다는 의미이고, 지능이 높은 동물일수록 이 검사에서 높은 결과를 나타낸다고 한다. 다시 말해, 지능이 낮으면 거울 속의 상(像)을 다른 개체로 인식한다는 의미이다. (다만, 이 테스트는 지나치게 시각 의존적이며, 후각, 청각 등 다른 감각을 이용하는 고지능 동물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한계를 지니고 있다.)
다솜이의 초반 모습을 떠올려보면, 단연코 이 거울 검사를 통과하지 못할 것이다.
다솜이가 온 지 한 달이 채 되지 않았을 때의 일이다. 퇴근하는 동생을 작업실에서 기다렸다가 셋이 함께 집으로 가는 길이었다. 그날따라 지하주차장 가장 아래층에 주차를 했는데, 그곳은 주차타워 입구가 있어서 자동차 위치를 확인할 수 있게 여러 군데에 거울이 있었다. 동생과 집에 가서 뭘 먹을지 얘기하며 일반 구역에 주차되어 있는 차로 걸어가던 중, 갑자기 다솜이가 줄을 당겼다.
"누나! 잠깐만 기다려봐! 여기에 다른 강아지가 있어!!"
거울 앞을 지나던 다솜이가 맹렬히 짖기 시작했다. 거울에 반사된 자신의 상을 다른 강아지로 인식한 것이다. 다솜이는 한참 동안 거울 앞을 떠나지 않고 안절부절못하며 연신 짖어댔다. 앞발로 거울을 긁으며 가까워지지 않는 적을 공격해보기도 했다. 아무리 냄새를 맡아도 다른 강아지의 냄새는 나지 않을 텐데, 다솜이는 의아해하면서도 일단 짖고 보았다.
평온한 귀갓길에 낯선 강아지를 만나다니! 다솜이의 당황스러움이 응어리처럼 단단하게 뭉쳐 쩌렁쩌렁 성대를 울렸다. 다솜이의 허스키한 목소리가 지하 주차장을 가득 채웠다.
다솜이의 당황스러움의 소리가 커져갈수록 나와 동생도 어쩔 줄 몰랐다. 작은 몸에서 나오는 소리가 어찌나 크던지, 혹시 이 늦은 시간에 민원이라도 들어오는 게 아닌지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러다 이내 다솜이의 착각이 귀엽고 웃겨서 재빨리 카메라를 켜고 그 모습을 담기 바빴다.
"다솜아, 거기에 누가 있어? 그게 바로 너야!"
"에! 오! 에오!! (야! 거기 너! 비겁하게 멀리서 쳐다만 보지 말고 얼른 썩 꺼져버려!!)"
(집에 온 지) 한 달 된 다솜이는 거울 속의 자신도 인지하지 못할 정도의 수준(?)이었던 것이다.
그로부터 얼마나 지났을까.
그 후로도 몇 번인가 거울을 마주쳤을 때 맹렬히 짖던 다솜이가 서서히 변해갔다. 하얀 털이 소복이 자라나고 눈에 총기가 더해진 만큼, 다솜이의 총명함도 뚜렷해졌다.
다솜이는 자의식은 물론 자신감이 높은 강아지로 자라났다. (굳이 '자라났다'라는 표현을 쓰고 싶다.)
자신감 높은 강아지로 키운 비결이라면, 매일 거르지 않고 하는 산책과 마킹을 꼽을 수 있겠다. 매일 자신의 구역을 공고히 하고 확장하며 영향력을 넓혀갔다. 주말마다 새로운 지역을 탐험하는 것도 다솜이의 자신감을 높이는 데에 한몫을 한 것 같다.
총명해지고 자신감이 높아진 다솜이는 이제 거울을 봐도 짖지 않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거울 속의 상이 자신임을 확실하게 인지하게 되었다. 다솜이는 거울에 비친 모습으로 자신을 바라보기도 하고, 뒤에 서있는 나를 직접 쳐다보기 위해 힘들게 고개를 젖히지 않아도 되었다.
다솜이는 거울을 보며 무슨 생각을 하게 되었을까?
"오늘 털이 유난히 보슬보슬하군! 누나가 헬렐레렐(세수) 시켜줄 때 참고 있길 잘했어!"
"요즘 털 모양이 아주 마음에 들어! 역시 나는 이렇게 털이 길고 엉켜있을 때 제일 멋지다니까!"
"누나는 왜 자꾸 암컷 강아지 같은 옷을 입히는 거야? 아무리 누나랑 커플룩이라고 해도 수컷 강아지 체면이 말이 아니네.."
"주둥이 털 사이에 간식을 숨겨둔 걸 누나가 아직 눈치채지 못해서 다행이야. 이따가 모두 잠들면 떼어먹어야지!"
거울에 비친 자신을 빤히 쳐다보는 다솜이를 볼 때면, 거울상과 맹렬히 싸우던 시절이 떠올라 자꾸 웃음이 새어 나왔다. 그래도 다솜이가 얼마나 똑똑해지고 성장했는지를 보여주는 척도 같아서 늘 간직하고 꺼내보는 에피소드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