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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찬 Jul 18. 2024

이유 있는 짖음, 조건 없는 믿음

Part 2. 10살 강아지와 함께한 빛나는 600일

안녕하세요! 저는 지금 태국 치앙마이에 여행을 왔습니다.

여행을 와서도 다솜이에 대한 글을 쓰고 있으니까 마치 다솜이와 함께 온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좋네요.

오늘은 다솜이의 ‘공격성‘에 대한 이야기를 가지고 왔습니다.

다솜이는 다른 강아지에게 공격적이었는데 나름의 이유가 있었겠지요.

저는 남에게 피해를 주는 걸 싫어하는 성격이라, 다솜이가 짖을 때마다 전전긍긍하며 혼내기 일쑤였어요.

그런데 사실 마음으로는 기분이 좋을 때도 있었습니다 (?)

다른 반려가족들은 어떠신지 궁금하네요!  우리 강아지만 이렇게 짖는 거 아니죠? ^^;;  




한동안 다솜이와 함께 작업실로 출근하고, 나른해질 때쯤 산책을 하고, 동생이 퇴근을 하면 셋이 함께 집으로 귀가하는 일상이 이어졌다. 전혀 특별할 것 없지만 다솜이가 우리의 일상에 들어왔기에 하루하루가 특별해진 느낌이었다.


다솜이는 빠르게 건강해졌고 어려졌다. 하얀 털이 보송보송 온몸을 뒤덮어 ‘네다리 탈모‘의 이력을 흔적도 없이 채워버렸다. 새롭게 자라는 털이 다솜이의 분홍빛 살을 빼곡히 덮어 솜사탕처럼 하얘진 것과 반대로, 희뿌옇던 눈동자는 점점 까맣게 물들어갔다. 그리고 호기심 가득하고 총기 어린 눈동자는 늘 나를 따라다녔다.


평생 처음으로 느껴보는 행복이었다. 어디서나 나를 지켜보고 따르는 존재가 생기다니. 다솜이를 위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강한 사람이 된 것만 같았다.


다솜이는 잘 먹고 잘 싸고 산책도 잘하는, 나무랄 데 없는 강아지이다. 집에서도 짖거나 말썽 부리는 일이 없이 차분한 텐션을 유지했다. TV에 나오는 난리법석인 강아지들을 보다가 다솜이를 보면 ‘이런 게 강아지의 나잇값이란 걸까?’란 생각이 절로 들었다. 그만큼 다솜이는 그저 사랑스럽고 명랑하고 밝은 강아지였다. 다른 강아지를 만나기 전까진.


그날은 평소보다 작업실에서 일찍 나와서 아직 밝은 시간이었다. 혹시나 강아지를 불편해하는 사람이 있을까봐 평소처럼 횡단보도에서 멀찍이 떨어져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보다 두어 발짝 앞서 신호를 기다리는 무리 중에 웰시코기가 있었는데, 다솜이가 웬일로 그 웰시코기에게 다가가려 하는 게 아닌가. 그전까진 다른 강아지를 가까이서 마주친 적이 별로 없거니와 마주치더라도 무시하기로 일관했던 터라, 나는 다솜이가 그 웰시코기에게 특별히 관심이 생겨서 인사하고 싶어 하는 줄로만 알았다. “인사해도 돼요?”라는, 견주라면 익숙하지만 나는 처음 내뱉은, 말을 건네며 한 발짝 한 발짝 다가갔다. 다솜이가 꼬리까지 바짝 세우고 적극적으로 앞서가길래, 두 강아지가 서로 얼굴을 비비고 반갑게 인사하는 아름다운 그림을 상상했다.


그러나 아니나 다를까. 별안간 다솜이가 자기보다 3배는 큼직한 웰시코기에게 달려들었다. 한껏 험상궂은 표정으로 매섭게 짖으며 웰시코기를 위협했다. 다른 강아지들은 윗입술을 씰룩씰룩하면서 “나 무서운 이빨 있어!”라고 위협한다던데, 다솜이는 씰룩대봤자 이빨이 없어 선홍빛 잇몸밖에 보이지 않았다. 아이러니하게도 있어야 할 곳이 텅 비어있는 그 모습이 더욱 기괴하고 무서워 보였다. 나는 재빨리 다솜이를 들어 올리며 연신 “죄송합니다”를 외치고 자리를 떠났다.


다솜이에게 뒷배가 생긴 것이다. 항상 자신의 뒤에 있으며 언제 어디서든 의지할 수 있고 자신을 지켜줄 것만 같은 사람. 바로 나였다.


“내 뒤에 누나 있어!!! 우리 누나 엄청 쎄다!!”

(사실이 아님)


“내 뒤에 누나 있어!!!”


다솜이는 나를 믿고 크게 짖었다. 다솜이는 다른 강아지가 무섭기도 했고 싫기도 했다. 혈기왕성한 강아지들에 비해 나이가 많아 상대적으로 몸이 약한 다솜이는 자신을 지키기 위해 짖었다. 또 겨우 찾은 안정과 행복을 다른 강아지에게 빼앗길까봐 경계했다. 산책 때마다 기를 쓰며 표시해 놓은 자신만의 구역을 침범당한 것이 불쾌하기도 했다.


사실 나는 다솜이가 ’사회성 좋은‘ 강아지인 줄로만 알고 있었다. 다솜이가 다른 강아지를 가까이서 경험한 것은 딱 한번, 집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갔던 애견미용실에서였다. 그곳에 있던 푸들과 비숑 아이들을 졸졸 쫓아다니며 냄새를 맡는 것을 보고, 유기견 구조 경험이 있는 미용실 원장님이 “다른 강아지에 대한 호기심이 많고 적극적으로 다가가는 것을 보니 사회성이 좋은가 보네요.”라고 한 말을 철석같이 믿은 것이다. 나는 마치 초등학교에 보낸 아들이 선생님께 칭찬을 들은 것 마냥 기분이 좋아져서 가족들에게 자랑을 했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그때도 다른 강아지들을 공격할 요량으로 쫓아간 것인데, 기력이 좋지 않을 때라 걸음이 느리고 자신감도 부족해서 겉으로 보기엔 그저 ‘사교성’으로 비쳤던 것 같다.


그렇게 착각 속에 살다가, 사실은 다솜이가 다른 강아지에게 ‘공격적’이라는 것을 알게 된 나는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온순하기만 한 줄 알았던 내 강아지가 TV 프로그램에 나옴직한 문제성 강아지였다니! 그 후로 멀리서 강아지가 보이면 다른 길로 돌아가거나 다솜이가 달려들지 못하도록 눈을 가린 채 품에 안고 걸음을 재촉했다. 나름 문제를 해결해 보겠다며 훈련사를 알아보기도 하고 애견유치원에 연락해보기도 했는데, 중성화 안된 수컷이자 노견을 받아주는 곳은 없었다. 나중에 딱 한 군데 신생업체를 통해 그룹수업을 받았지만, 다솜이의 화만 돋울 뿐이었다.


그런데 웃기게도, 다솜이의 ‘화’는 선택적이었다. 다솜이는 중형견 이하 사이즈의 흰 강아지에게는 거침없이 공격을 퍼부었다. 어두운 색의 강아지는 가끔 참고 넘어가주기도 했다. 대형견 크기의 강아지들은 보고도 못 본 척했다. 그리곤 꼭 멀어져 가는 뒤통수에 대고 한마디 하곤 했다. “야!! 이번엔 내가 봐준 거다! 여기 내 구역이니까 다신 나타나지 말아라!!”


호기롭게 짖었는데 생각보다 너무 가까운 거리에 있거나 상대를 이길 수 없을 것 같을 땐 내 다리 뒤로 숨었다. 리드줄에 배배 꼬여 더 이상 움직일 수 없을 때까지 내 다리 사이로 파고들어 자신의 뒷배를 적극 활용했다. 그 상태에서는 더욱 안전하게 마음껏 짖을 수 있기 때문이다.


다솜이의 자신감의 근원이 된 나는 복합적인 감정이 들었다. 다솜이의 공격성에 난감하면서도, 나를 의지한다는 사실에 내심 기분이 좋았다. 그리고 이렇게 매서운 강아지가 우리 가족에게는 그저 사랑스러운 반려견이라는 당연한 반전이 마음에 들었다.


이 강아지는 대체 뭘 믿고 나에게 의지하는 것일까? 나는 객관적으로 보았을 때 오히려 ‘약체’에 가까운데 말이다. 아직도 그 답은 찾지 못했지만, 나는 여전히 다솜이를 위해서라면 누구와도 맞서 싸울 준비가 되어있다. 다솜이는 그저 본능적으로 내가 자신의 편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렸는지도 모른다.


맞아. 나는 사실 목욕물에 홀딱 젖은 네가 내 팔을 꼭 잡았을 때부터, 동물병원에서 케이지 문을 열고 너와 눈이 마주쳤을 때부터, 아니 카톡으로 불쑥 전송된 공고 사진 속 너를 처음 봤을 때부터, 네 편이었어. 나를 믿고 맘껏 짖으렴! (언제나 그렇듯이 뒷감당은 내가 할 테니 ^^;)


무서울 때에는 내 다리 사이를 비집고 들어오는 다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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