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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찬 Jul 04. 2024

나에게도 엄마가 있다니!

Part 1. 안락사 당일에 구조된 아이

안녕하세요! 다솜이 누나입니다.

저는 한동안 다솜이의 존재를 가족들에게 비밀로 했었는데요.

다솜이가 혹시나 “나는 왜 누나만 있고, 엄마, 아빠는 없지?”라고 궁금해하면 어쩌나 걱정했었습니다 ㅎㅎ

그런데 다솜이에게도 엄마가 생겼어요!

그 날의 기록을 적어보았습니다.

다솜이가 “나에게도 엄마가 있다니!”하고 좋아하는 모습이 눈에 선하네요!

그나저나, 다솜이는 엄마를 보고 어떻게 “저 사람이 엄마다!”라고 한 눈에 알아본 것일까요? ㅎㅎ




나는 다솜이의 '누나'다.


처음 임시보호를 시작할 때 우리의 관계와 호칭에 대해 고민해 보았다. 인스타에서 봐왔던 다른 사람들은 주로 ‘임보 엄마’, ‘임보 아빠’란 호칭으로 본인을 지칭했다.


“언니가 이제 다솜이의 임보 엄마야?”


안그래도 뭐라고 칭해야 하나 고민하던 차에, 동생이 예고도 없이 훅 치고 들어왔다.


그런데 음… 갑자기 10살이나 먹은 (개)아들이 생긴다고 생각하니, 당황스러웠달까? 꼼지락꼼지락 발가락 끝까지 힘이 들어가면서 온몸이 간지러운 기분이 들었다. 일찍 결혼한 친구라면 10살 먹은 자녀가 있을 법도 한 나이이긴 했지만, 나는 결혼도 하지 않았고 1살짜리 아들도 없는데 갑자기 10살짜리 아들이라니! 아~ 안돼!


“아… 엄마는 좀… ^^; 음... 누나! 누나라고 하자!”


그렇게 나는 다솜이의 누나가 되었다.




사실 나의 임시보호 대작전에는 한 가지 걸리는 것이 있었다. 바로 강아지를 너무도 무서워하는 엄마를 설득하는 것이었다.


처음 한달간은 철저하게 비밀로 부쳤다. 부모님 집에 가야 하는 날이면 남자친구에게 다솜이를 부탁하곤 했다. 그러나 영원한 비밀은 없는 법. 매일 연락하고 사소한 일도 공유하는 우리 가족의 분위기 상, 내 삶에 크게 들어와버린 다솜이를 언제까지고 비밀로 할 수는 없었다.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하나 고민만 하며 휴대폰을 만지작 거리는데, 마치 내 순서를 가로채듯 엄마에게 먼저 카톡이 왔다. 하여간, 우리 가족들은 늘 나보다 먼저 움직인다니까! 일상적인 연락인 줄 알았던 카톡은 나를 얼어붙게 했다. 엄마가 서울에서 약속이 생겨서 다음 주에 서울집에 온다는 것! 이제는 더 이상 다솜이의 존재를 숨길 수 없는 시기가 오고야 말았다.


동생과 미리 합을 맞추고 조심스럽게 다솜이 얘기를 꺼냈다.


“실은, 지금 우리 집에 강아지가 있어.”

‘뚜— 뚜— 뚜—’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전화가 끊겼다. 높낮이 없는 통화 연결음이 엄마의 굳은 표정처럼 느껴졌다. 그 후로 엄마는 전화도 받지 않고 카톡도 읽지 않은 채, 입을 꾹 닫아버렸다. 일주일 동안. 아빠와 이모에게 도움을 요청했지만 별 소용이 없었다. 자신이 강아지를 얼마나 무서워하는지 뻔히 알면서도 딸들이 몰래 일을 벌여버린 것에 화가 단단히 난 듯했다.


“내가 데려오지 않으면 안락사된다고 해서 어쩔 수 없었어!”

“입양자가 나타날 때까지만 임시보호 하는 거야!” (-> 결국 그 입양자가 나로 밝혀짐)

“정말 작고 이도 없어서 물지도 않아!” (-> 이는 없지만 잘 무는 것으로 밝혀짐)

“잘 짖지도 않고 엄청 얌전해!” (-> 100% 거짓으로 밝혀짐)


온갖 말들로 안심시킨 후에야 엄마는 비로소 카톡에 답을 하기 시작했다. 상황을 완전히 받아들인 것은 아니었지만, 일단 서울에서의 약속을 취소하지 않고 집에 오기로 했다. 이것만으로도 엄마에게는 큰 결심이자 장족의 발전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드디어 서울집에 엄마가 오던 날. 나와 동생은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현관문이 열리고 엄마가 쭈뼛대며 들어섰다. 어색하게 인사하고 뒤를 돌아 다솜이를 살펴봤다. 혹시나 엄마에게 달려든다면 언제든 다솜이를 들어 올릴 준비를 하면서.


다솜이는 이때까지만 해도 많은 외부인을 만나본 적이 없었지만, 후에 겪은 경험들을 생각해 보면, 적극적으로 다가가 상황을 파악하는 스타일이다.

그런데 엄마를 처음 만난 이 날은 조금 달랐다. 다솜이는 멀찌감치 서서 엄마를 쳐다보더니 천천히 엄마가 집 안에 들어오는 것을 지켜보았다. 마치 누나들과 한가족이라는 것을 알아차리고, 엄마에게 적응할 시간을 주는 듯했다. 엄마가 조심스레 인사를 건네고 소파에 앉았다. 다리를 소파 위로 올려야 하는지 고민하다가 우선 한쪽 발만 소파 위로 올렸다.


그때 다솜이가 엄마에게 다가갔다. 나와 동생은 초긴장 모드로 돌입했다.


엄마에게 인사하는 다솜이. “나는 다솜이예요! 당신이 내 엄마예요?”


다솜이가 엄마에게 인사했다. 마치 자기소개를 하는 듯했다.


“나는 다솜이예요! 당신이 내 엄마예요?”


다솜이가 시익~ 웃었다.

엄마는 당황했다. 그러다가 눈을 마주치며 시익~ 웃는 다솜이를 보고, 어색하게 시익~ 웃었다.  


다솜이에게도 엄마가 생기는 순간이었다.


엄마는 평생을 무서워하며 살아온 강아지란 존재에 빠르게 적응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점점 다솜이에게 스며들었다. 처음 만났을 때는 다솜이를 먼발치에서만 바라보다가, 두 번째 만났을 때에는 슬쩍 털을 쓰다듬어 보았고, 세 번째 만났을 때에는 무릎에 올라오려는 다솜이를 애써 마다하지 않았다. 그러다 네 번째 만났을 때에는 다솜이의 밥을 직접 챙기고 다정하게 “다솜아~ 밥 먹어야지~”라고 말을 건넸다. (다솜이가 먹는 소고기 수비드는 약간의 조리가 필요하다.)


어느새 우리 가족의 카톡방은 “다솜이 산책시켰니?”란 질문이 매일 오갔고, “뭐해?”라고 물으면 나는 당연하다는 듯 다솜이의 사진을 올리며 나의 안부를 대신했다. 다솜이도 우리 가족 단톡방의 일원이 된 것 같았다. 그리고 그렇게 다솜이도 우리 가족의 일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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