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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찬 Jun 20. 2024

한밤중에 강아지 실종사건

Part 1. 안락사 당일에 구조된 아이

잘했어, 다솜!
지금처럼 낯선 곳에서도 주눅 들지 말고 당당하게 너만의 길을 개척하며 사는 거야!


현관문도, 창문도 닫힌 집 안에서 강아지가 사라졌다?!

다솜이가 집에 온 첫날 밤에 일어난 일입니다 ㅎㅎ

과연 다솜이는 어디에 있었을까요?


이 이야기는 지난 편들과 이어집니다. 제 브런치북의 지난 에피소드도 확인해주세요 :)

매주 한편씩 연재를 하는 것이 쉽지 않네요. 그래도 다솜이와의 소중한 일상을 차분히 정리해나가도록 하겠습니다.




“언니, 다솜이가 없어졌어!”


온갖 풍파를 다 맞은 듯한 누런 털의 다솜이를 목욕시킨 후, 다음 과제는 밥을 먹이는 것이었다. 동물병원 앞 반려용품점에서 추천받아 사온 시니어 전용 사료를 개봉하자 다솜이는 처음으로 눈이 커지며 관심을 보였다. 바스락 봉지를 뜯는 소리, 달그락 사료알이 부딪치는 소리가 익숙했나 보다. 그러나 몇 번 혓바닥으로 간을 보더니, 이내 다시 거실 가운데 담요 위로 돌아가 몸을 둥글게 말았다. 시니어 사료라고 해서 쉽게 으스러지는 부드러운 질감일 줄 알았는데, 내 예상보다 딱딱했다. 사료 한알을 엄지와 검지에 쥐고 세게 힘을 주어보아도 쉽게 부서지지 않았다. 이가 하나도 없는 다솜이가 먹기엔 돌멩이처럼 느껴질 것만 같았다.


이번엔 사료에 물을 타서 적당히 불린 다음 다솜이의 코 앞에 갖다 줘 보았다. 아직 이가 없는 어린 강아지들에게 먹이는 방법이라는 검색결과를 믿으며. 그러나 다솜이는 이마저도 거부했다. 오히려 거실 가운데 펴놓은 담요 위를 빙글빙글 돌더니 몸을 더 둥글고 작게 말아 고개를 몸속에 파묻었다. 유기견이 처음 집에 오면 보통 1~2주의 적응 기간이 필요하다는 글을 어디선가 읽은 기억이 떠올랐다. 그래. 다솜이도 적응이 필요하겠지. 나와 동생은 그렇게 다솜이에게 혼자만의 시간을 주고 임시보호의 첫날밤을 보낸 것이다.


그런데 다솜이가 없어졌다니! 동생이 나를 깨운 건 다음 날 새벽 5시. 자다가 화장실에 가려고 나온 동생이, 전날 다솜이가 자리 잡은 담요가 텅 비어있는 것을 보고 내 방으로 찾아왔다. 거실로 나가보니 영원히 담요 위를 떠날 것 같지 않던 다솜이가 정말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혹시 몰라 전날 밤에 놓아둔 사료와 물은 그대로 있었다. 아니, 조금 줄어들었나? 역시나 혹시 몰라 거실에 넓게 펴놓았던 배변패드는 정렬이 흐트러져있을 뿐 배변의 흔적은 없었다. 베란다, 화장실, 옷방을 둘러보았지만 작은 강아지의 털 한올도 보이지 않았다. 다행히 창문과 현관문은 잘 닫혀있었다. 이 집안 어딘가에 다솜이가 있다.


나는 계속 다솜이를 찾아보기로 하고, 다음날 일찍 출근해야 하는 동생은 1시간이라도 더 눈을 붙이기로 했다. 강아지가 있을만한 곳이 어디일까? 검색해 보니 강아지들은 아늑한 느낌을 주는 동굴 같은 느낌의 집을 좋아한다고 한다. 우리 집에는 강아지를 위한 그런 공간은 없었다. 유일하게 떠오른, 다솜이를 태우고 왔던 케이지도 텅 비어있었다. 혹시 침대 밑? 불현듯 친구네 강아지가 혼날 때면 침대 밑으로 기어들어간다는 말이 생각나, 허리를 굽혀 침대 밑으로 휴대폰 불빛을 비추던 그때.


“언니…!”


잠을 자러 들어간 동생이 상기된 표정으로 조용히 나를 불렀다. 평소와 달리 목소리가 너무 작아, 나를 톡톡 건드린 후에야 고개를 돌렸다. 동생은 조용히 하라는 손짓을 하며 방으로 따라오라고 했다.


“다솜이를 찾았어?”


동생을 따라 들어간 방은 여느 때와 달라진 점이 없어 보였다. 동생이 쪼그리고 앉아 책상 밑을 가리켰다. 책상 밑에는 부모님이 오시면 꺼내는 이불을 개어두었는데, 입구 쪽에서 보면 바닥에 놓인 이불더미의 끝자락이 책상 하부의 가림막과 맞닿아있어, 마치 이불더미와 책상이 연결된 것처럼 보인다. 다솜이는 바로 그 이불더미 위에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자고 있었다. 코까지 골며.


책상 밑에 자기만의 공간을 만든 다솜이


새벽에 누구 때문에 이 난리를 피웠는데, 정작 당사자는 ㅠ자로 뻗어 자고 있다니. (강아지를 키워보신 분들은 알겠지만, 강아지가 옆으로 네 다리를 뻗고 편히 누우면 마치 ㅠ자처럼 보인다.) 당황한 나와 동생의 귓가에 ‘고오오~ 고오오~’ 다솜이의 낮은 숨소리가 맴돌았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어이가 없는 것도 잠시, 그저 이 상황이 귀엽고 마음이 놓이기까지 했다. 강아지는 자는 동안에도 몇 번이나 깨서 자리를 이동한다고 하는데, 거실에서 잠든 다솜이가 새벽에 잠이 깨 더 안락한 공간을 찾아 온 집안을 헤매고 다녔나 보다. 우리 집에는 강아지의 프라이버시를 위한 동굴 같은 곳이 없다 보니, 궁여지책으로 찾은 곳이 책상 밑 공간이었던 것이다. 이 집에 처음 온 강아지가 집주인들도 생각지 못했던 공간을 찾아내서 떡하니 자리를 잡고 자고 있다니 왠지 모르게 대견하게 느껴졌다.


잘했어, 다솜! 지금처럼 낯선 곳에서도 주눅 들지 말고 당당하게 너만의 길을 개척하며 사는 거야!


다솜이는 그날 이후 빠르게 집 생활에 적응해 갔다. 첫 일주일간은 눈도 잘 마주치지 않고 밥도 잘 먹지 않았지만, 다솜이가 점차 이곳을 편하게 인식하고 안정을 찾아간다는 것이 느껴졌다. 다솜이는 자기가 스스로 정한 자리에서 잠을 자고 휴식을 취하는 데에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가끔 자리 정리가 필요하면 두 바퀴를 돌고 앞발로 정교하게 이불을 취향에 맞게 이리저리 옮겨 놓기도 했다. 단연코 다솜이가 가장 좋아한 자리는 동생 방 책상 밑. 그러나 점점 다솜이의 영역은 넓어졌고, 한 달쯤 지나니 더 이상 구석진 책상 밑으로 들어가지 않게 되었다.


밥도 잘 먹게 되었다. 다솜이는 이가 하나도 없는 데다가 턱까지 무너진 상태라 혀로 밥을 들어 올려 먹어야 했다. 문제는 건사료알들은 이리저리 굴러다녀 다솜이 혀에 착 붙지 않는다는 것. 반대로 물에 불린 사료는 너무 묽어서 혓바닥으로 들어 올리기가 어려웠다. 그러다 ‘습식사료’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인간의 편견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건사료는 맛도 없을 것 같고 건강에도 좋지 않을 것 같아서, 여러 종류의 습식사료를 테스트해 보았다. 그중 다솜이가 혀로 먹기 적당한 농도와 질감을 찾아냈다. 최고급 소고기, 브로콜리, 블루베리, 고다치즈, 당근 및 각종 영양성분이 수비드로 조리된 것이었다. 수비드 사료로 바꾼 후, 다솜이는 더 이상 밥을 남기는 일이 없었고 (용케 당근을 골라내기는 했지만), 어느 정도 살도 올라서 더 이상 갈비뼈와 골반뼈가 두드러지게 보이지 않게 되었다.


한밤중에 일어난 강아지 실종사건은 귀여운 결말로 마무리되었지만, 그 사건으로 다솜이의 자주적이고 당찬 성향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묘하게, 이 작은 강아지에게 집을 점령당한 것 같은 기분도 들게 되었다. 다솜이가 집이라는 공간에 적응해 간 만큼, 정서적 거리도 빠르게 좁혀졌다. 아침에 일어나면 제일 먼저 강아지 밥을 챙겨주고 산책을 나가고, 외출에서 돌아오면 현관 앞에 주저앉아 종일 나를 기다린 강아지와 인사를 나누고. 또 주말에는 강아지와 함께 갈 수 있는 곳을 검색하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그렇게 우리는 가족이 되었다.




다솜이는 한동안 책상 밑 이 자리를 제일 좋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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