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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찬 Jun 06. 2024

임시보호가 이런 것이라니…

Part 1. 안락사 당일에 구조된 아이

안녕하세요!  다솜이의 두 번째 이야기로 돌아왔습니다.

다솜이는 아픈 곳이 참 많은 강아지였습니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만지지 말라’는 특명이 떨어졌으니까요.

강아지를 키워본 적이 없기에 난생처음 가 본 동물병원의 첫 이미지!  그리고 동물구조와 임시보호의 이야기!

제가 느낀 그 당시의 이야기를 적어보았어요. :)




점차 연락이 되지 않던 구조자는 몇 달 후 뜬금없이 전화가 와선 우리를 ‘잊고 있었다’고 고백했다.
나에게 다솜이를 입양 보내려는 구조자의 계획이었을까? 그렇다면 성공이었다.



“이 아이가 다솜이예요. 곰팡이성 피부병이 있으니 절대 맨손으로 만지지 마시고 케이지 안에만 두세요.”


기대 반, 걱정 반의 마음을 안고 동물병원에 도착한 나는 어리둥절했다. 내가 생각했던 유기견 구조를 돕는 수의사의 이미지는 이보다 따뜻했던 것 같은데… 원장님은 내 눈도 마주치지 않고 사무적인 설명을 이어 나갔다. 공고에 언급된 10개도 넘는 질병 외에도, 피부병, 중이염, 기관지염이 있고 심장도 좋지 않은 것 같다고.


짧지만 강렬한 설명을 듣고 나니, 원장님의 장갑 낀 손에 들린 작은 강아지가 질병 덩어리처럼 보였다. 흔한 표현 중 너무 소중해서 만지면 부서질 것 같다고들 하는데, 이 아이는 ‘너무 약해서’ 만지면 바스러지지 않을까 염려됐다. 강아지를 내게 넘기려는 원장님의 손놀림에, 미리 준비해 간 케이지 문을 재빨리 열어 직접 케이지에 넣도록 유도했다. 사진에서 본 것보다 더 작아 보이는 강아지가 케이지 안에서 혀를 날름거리며 희뿌연 눈으로 원장님과 나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나는 평소 질문이 많은 스타일은 아니지만, 오늘만큼은 궁금한 게 많았다. 유기견을 임시보호할 때 주의 사항이 있는지, 노견의 건강관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니, 그보다도 이가 하나도 없는데 사료는 어떻게 먹는지, 만질 수 없는데 목욕은 어떻게 시키는지, 산책은 얼마나 해야 하는지, 등등.


백 가지 질문들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처치실로 들어가 버린 원장님의 뒷모습은 더 이상 아무 대화도 하고 싶지 않아 보였다. 멍청하게 기다렸다가 그중 몇 가지를 기어코 물었지만, 속 시원한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음. 이런 질문들은 수의사가 아니라 구조자에게 해야 하나? 강아지를 키워본 적이 없고 유기견 구조 생태계를 잘 모르니 내가 번지수를 잘못 찾은 것일지도. 이번엔 구조자에게 사진을 찍어 보내며 전달받은 각종 질병에 대해 얘기하고 질문을 쏟아냈다. 잠시 후, 웬 뚱딴지같은 동문서답이 왔다.


“아이가 웃네요^^ 이제 살았다!”


잠깐만, 내가 톡을 잘못 보냈나? 아니, 근데 이게 웃는 건가? 아리송했다.


구조자는 다음 톡을 읽지 않았다. 전화도 받지 않았다. 몇 번의 시도 끝에 간신히 구조자와 통화를 했다. 전반적인 상황을 정리해 보니 이러했다.


경험 많은 본인에게 물어보면 되지만, 이미 50마리가 넘는 임시 보호 강아지들이 있고 구조할 대상도 넘쳐나서 시간이 없다는 것. 원칙상 임시 보호 기간 중 구조 동물이 아프면 치료비를 일정 부분 지원해 줘야 하지만, 후원자들의 기부금으로 지불하는 것인데 충분치 않다는 것. 특히 심장 초음파 등 비용이 많이 드는 진료는 노견에게 지원하기 힘들다는 것. 즉, 강아지를 임시보호하기로 하고 넘겨받은 이상, 입양 가기 전까지 모든 생활과 건강에 대해 임시보호자가 알아서 케어해야 한다는 것.


최소한 질병에 대해서는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현실은 달랐다. 케이지 안에 든 다솜이가 짖었다. 가뜩이나 아픈 데가 많은데 제대로 된 치료도 못 받는다고 생각하니 한층 더 측은해졌다. 왠지 다솜이와 함께 동물병원 한복판에 버려진 기분이었다. 다솜이를 만난 것은 한 시간 남짓이었지만, 한 배를 탄 것 같은 동지애가 느껴졌다.


나는 성격에도 없는 고집을 부려 원장님께 추가 진료를 해달라고 귀찮게 해댔다. 결국 청진에만 그쳤던 심장에 대해 엑스레이를 찍어 초진과 달리 아무 이상 없다는 소견을 받아내었고, 방금 전에 처방해 준 피부약과 더불어 염증약도 받아냈다.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하고 케이지 안에서 짖어대던 다솜이가 추가 진료를 받는 동안에는 얌전했다. 약봉지를 받아 들고, 다솜이를 위해 무언가 한 것 같은 묘한 뿌듯함이 느껴졌다. 다솜이와 내가 처음으로 함께 이뤄낸 일이었다.


그래. 기왕 함께 버려진 거 갈 데까지 한번 같이 가보자! 다솜이가 짖고 있는 케이지에 대고 중얼거렸다.


점차 연락이 되지 않던 구조자는 몇 달 후 뜬금없이 전화가 와선 우리를 ‘잊고 있었다’고 고백했다. 나에게 다솜이를 입양 보내려는 구조자의 계획이었을까? 그렇다면 성공이었다. 구조자가 우리를 잊어간 시간 동안 다솜이는 우리 가족의 우두머리가 되어버렸다. 내가 정식 입양을 할지 말지 고민할 필요도 없이 다솜이가 우리 집을 ‘선택’ 한 것이다. 나는 그저 다솜이의 선택에 따랐다. 다솜이는 언제나 옳은 판단을 하기에 그 선택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다솜이를 데리고 집으로 가는 길. 우리는 한 팀이 되어, 퇴근길 서울의 교통체증을 뚫고 집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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