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1. 안락사 당일에 구조된 아이
다솜이는 그냥 짖고 싶어서 짖는 거다. 그것이 유일하게 자신이 살아있음을 증명하는 것이기에.
난 아직 살아있어요! ‘에오!’ 짖을 만큼의 힘이 남아있어요! 나를 안락사시키지 말아요.
다솜이와의 이야기를 매주 연재하기로 결심한 후
매주 한 편의 글을 써내기 위해 매일 다솜이 생각을 하고 글을 쓰고 있네요.
다솜이와 있었던 일을 생각할수록 흐렸던 기억들이 선명해지며 웃음 짓는 일이 많습니다.
우연히 이 글을 보시게 된 분들께서도, 사랑하는 누군가(강아지? 고양이? 사람?)를 떠올리며 웃음 짓게 되시길 바라봅니다 :)
보호소에서 갓 나온 다솜이를 동물병원에서 만나 데리고 오는 길. 파란 케이지를 뒷자리에 단단히 고정하고 집으로 오는 두 시간 동안, 다솜이는 잠시도 쉬지 않고 짖었다. 좁은 차 안을 울리는 큰 목청에 머리가 아팠다. 잘한 선택인 걸까, 어제의 결심이 의심되기 시작했다. 작은 몸을 울려 온몸으로 내는 짖음에 적응이 되자, 다솜이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다솜이는 “에오!”하고 짖었다. 때로는 “에!”했고, 때로는 “오!”했다. 뭐야? 강아지는 “멍멍” 짖는 거 아니었어? 뒷자리를 돌아보니, 케이지 안의 작은 강아지는 입구를 등진 채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서 목을 가볍게 위로 튕기며 소리를 내고 있었다. 입 밖으로 소리가 남과 동시에 귀와 꼬리가 팔락거렸다. 다솜이의 목소리는 꽤 허스키했다. 아니, 쉬어있었다. 그간 얼마나 많이 짖어댄 것일까? 다솜이의 목소리에서 작은 강아지의 고단함이 여실히 느껴졌다. 다솜이의 짖음엔 나름의 리듬도 있었다.
“에오! 에! 오! 에! 오! 에오! 에! 오! 에! 오!”
오, 박자 좀 타는데? 4/4박자? 6/8박자? 다솜이의 규칙적인 짖음은 묘하게 나를 안정시켰다. 강아지와 단 둘이 집에 오는 차 안, 다솜이는 계속 짖었고 나는 가만히 들었다. 시간은 어느덧 6시를 넘어 퇴근하는 차들로 꽉 찬 도로가 평소보다 느리게 움직였다. 다솜이는 내가 자기를 유괴라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짖는 것일까? 아니면 창 밖의 자동차를 보고 짖는 것일까? 다솜이의 눈에는 쌩쌩 달리는 차들이 표범처럼 보일지도 모르겠다. 아니다. 다솜이는 그냥 짖고 싶어서 짖는 거다. 그것이 유일하게 자신이 살아있음을 증명하는 것이기에. 난 아직 살아있어요! ‘에오!’ 짖을 만큼의 힘이 남아있어요! 나를 안락사시키지 말아요. (다솜이와 오랜 시간 지내며 깨달은 사실이지만, 아마도 다솜이는 존댓말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나의 결정에 따라 어쩔 수 없이 ‘임시보호’ 임무에 동참하게 된 동생이 일찍 퇴근하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곰팡이성 피부염 때문에 절대 맨손으로 만지지 말고 케이지 안에만 두라”는 수의사 선생님의 말을 떠올리며, 거실 한편에 쉰 목소리로 가득 찬 파란 케이지를 놓아두었다. 다솜이는 그 후로 네 시간이나 더 짖어댔다. 다솜이의 짖음이 멈춘 것은 케이지 문이 열린 후였다. 도무지 조용해지지 않는 다솜이를 보다(듣다) 못해, 나와 동생은 (일단 얘를 만지지는 말고) 이 문을 열면 어떻게 되나 지켜보기로 한 것이다. 케이지 문이 열렸는지 모르고 몇 번을 더 짖던 다솜이는 그제야 장장 6시간 동안의 목청대회를 마치고 코로 슬며시 문을 열고 한 발짝 한 발짝 걸어 나왔다. 비로소 집안의 공기가 불안정한 대류를 멈추고 제 자리를 찾아가는 듯했다.
다솜이는 응당 해야만 하는 일을 하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온 집안을 걸어 다녔다.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구석구석을 누비는 당당한 발걸음에 오히려 나와 동생이 당황할 뿐이었다. 숨겨둔 사탕이라도 찾는 듯 옷방, 베란다, 주방, 현관까지 꼼꼼히 살펴본 다솜이는 이윽고 거실 한가운데 몸을 웅크리고 자리를 잡았다. 동생이 그 옆에 담요를 놓아주니 그 위로 올라가 두 바퀴를 돌고 같은 자세를 취했다.
혹여나 피부 곰팡이가 떨어졌을까 다솜이가 지나간 자리를 복기하며 걸레질을 하는데, 어디서도 맡아보지 못한 찌린내가 코를 찔렀다. 그러고 보니 거실 한복판에 누워있는 다솜이가 공고 속 하얀 털이 아니라, 누런 털을 하고 있는 게 보였다.
“언니, 아무래도 얘를 씻기는 게 먼저인 것 같아”
“그러다 피부병 옮으면 어떡해?”
“아… 장갑을 끼고 씻기자!”
생각해 보니 피부병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보호소에서 2주, 그전에는 며칠이나 이어졌을지 모르는 노숙을 겪었을 다솜이의 털은 온갖 오물이 비바람을 맞아 뒤엉켜 있었다. 서울역 어디쯤에서 맡아봄직한 냄새를 내뿜고 있는 누런 털을 씻겨내는 게 먼저였다.
고무장갑에 비닐장갑까지 더해 완전무장을 하고 다솜이의 몸에 천천히 샤워기를 가져다 댔다. 그나마 얼마 없는 털이 홀딱 젖자 몸이 더욱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반나절 동안 쉬지 않고 짖어대던 호기로운 다솜이는 온데 간데 없고, 앙상하게 뼈가 드러난 나이 든 강아지가 떨고 있었다. 얼핏 보아도 갈비뼈가 몇 개인지, 골반이 어떻게 생겼는지 알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제 가죽을 지키려고 버티고 있던 털들이 숨을 죽이자 더욱 처참한 맨살이 드러났다. 그야말로 가죽만 남은 듯했다. 탄력 없이 늘어진 살은 나이를 말해주는 듯, 내가 만지는 대로 저항 없이 흐늘거렸다. 나 역시 다솜이의 털과 함께 축 처지는 기분이었다. ‘임시보호’라는 명목 하에 다솜이를 데려오게 되었지만, 기왕이면 더 어리고 예쁜 강아지를 원하는 마음이 있었는 지도 모르겠다.
“공고된 10살보다 더 나이가 많은 것 같아..”
“너무 기운 없어 보여…”
올근볼근 뼈만 앙상한 작은 몸을 마주하니 이 모든 게 인간의 욕심은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이 아이는 이미 나이가 많다. 아픈 곳도 많다. 어쩌면 자연스레 운명의 끝을 향해 가고 있는 아이를 데려온 것은 아닐까? 나는 새삼 ‘순리’라는 단어를 떠올리며, 늙고 병든 강아지를 안락사시키는 것과 구해오는 것 중 어느 쪽이 더 이치에 맞는 것인지 혼란스러웠다. 미끄러운 욕조 안에서 다솜이는 몸을 잘 가누지도 못했다. 뒤엉킨 털을 잘라내고 비누칠을 하며 괜히 다솜이 몸에 거품을 내어 더 큰 강아지로 만들어 보았다. 흰 거품이 마치 다솜이를 살 찌우고 털을 샘솟게 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물에 젖은 채로 거품을 둘러싼 다솜이는 여전히 덜덜 떨고 있었다. 나와 동생은 난생처음으로 강아지 목욕을 해보는 터라 서툴게 다솜이를 이리저리 돌리고 털을 뒤적거리며, 후에는 10분이면 끝냈을 과정을 30분 넘게 지속했다. 여전히, 이 나이 많고 아픔 많은 강아지를 잘 돌볼 수 있을지 마음의 결심이 서지 않은 채로 비누칠을 하고 있을 때였다. 다솜이가 갑자기 빠른 걸음으로 내게 달려들었다. 아니, 안겼다. 비누 거품으로 인해 더욱 미끄러워진 욕조 위에서 발이 계속 미끄러지는데도 비틀비틀 내게 걸어와 안겼다. 찰나의 순간, 나는 장갑으로 채 가리지 못한 팔에 다솜이의 피부병이 옮으면 어떡하나 걱정했다. 그러나 걱정도 잠시, 두려움에 가득 찬 눈으로 나를 올려다본 다솜이와 눈이 마주쳤고, 다솜이의 떨림이 나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졌다. 어느새 다솜이는 내 팔을 앞발로 꽉 움켜쥐고 있었다. 다솜이는 나에게 의지하고 있었다.
다솜이는 지금 무섭구나. 이전에 어떤 과거가 있었는지는 몰라도, 전혀 다른 곳에 와 낯설겠구나. 처음 보는 사람들이 대뜸 물을 끼얹고 이리저리 만지는 것도 불편하고 당황스럽겠구나.
사람의 마음이 움직이는 것은 단 한순간이다. 오랫동안 내리지 못한 결정을 예기치 못한 계기로 인해 한순간에 하게 되기도 한다. 다솜이가 두려운 눈으로 내 팔에 매달려 안긴 그 순간이, 나에겐 마음이 움직인 한순간이다. 나는 지금껏 느껴보지 못한 떨림을 느꼈다. 오로지 나에게 의지하고 있는 이 작은 생명체를 지켜주고 싶다는 마음이 생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