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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찬 Jul 11. 2024

솔직한 게 좋아, 다솜이처럼

Part 2. 10살 강아지와 함께한 빛나는 600일

안녕하세요!

오늘 연재분부터는 파트 2로 넘어가서, 다솜이와의 소중한 일상들을 되짚어보려고 합니다.

첫 번째로 풀어낼 이야기는 다솜이가 수많은 질병들을 어떻게 이겨냈는지와 동물병원에서의 자세(?)를 적어보았습니다.

다솜이가 견생 경험이 풍부하다 보니 웬만한 일에는 눈하나 꿈쩍 안 하는데,

유독 동물병원에만 가면 진동모드가 되어서 덜덜덜덜 떨곤 했어요 ㅎㅎㅎ

다른 강아지들도 그런가요?

그래도 다솜이의 ‘솔직함’ 덕분에 병원치료 기간이 많이 짧아졌답니다.




보호소에서 갓 나온 다솜이가 진단받은 병은 무려 9가지. 결막염, 중이염, 곰팡이성 피부염, 슬개골 탈구, 기관지염, 네다리 탈모, 이빨 없음, 턱뼈 없음, 심장병 의심 …


지난 글에서, 어쩌면 내가 생이 다한 아이를 무리해서 살려 나온 것은 아닌지 잠시 후회했다고 고백한 것처럼, 처음 집에 왔을 때 다솜이는 그저 기력이 없는 나이 든 강아지였다. 그러나 다음 순간, 다솜이가 생면부지 나에게 의지하는 것을 보며, 생각을 고쳐먹고 다솜이를 지키리라 다짐했다.


집에 온 지 이틀째쯤이었나. 그때까지만 해도 구석에 자리 잡고 밥도 잘 안 먹던 다솜이가 갑자기 기침을 하더니 코피를 쏟았다. 나는 강아지도 코피가 나는지 그제야 처음 알았다. 큰일인가 싶어 얼른 다솜이를 둘러메고 2시간 거리의 동물병원에 갔다. 구조자와 연계되어 있는, 처음 다솜이를 픽업한 곳이다.


원장님은 이리저리 검사를 해보더니 단순 감기라며 기관지가 건조해지지 않게 관리하라고 했다. 감기?! 감기라면 병원에 가면 일주일, 병원에 안 가면 7일이라 하지 않았던가? 초보 보호자인 내가 호들갑을 떤 것 같아 얼굴이 붉어지려는데 원장님이 한마디 거들었다.


“그렇게 맨손으로 안으면 피부병 옮을 수도 있다고 말씀드렸죠? “


갑자기 팔뚝이 따가운 것 같았다. 그렇지만 다솜이를 케이지 안에만 가두어 두면 계속 짖는 통에 자유롭게 다니도록 둘 수밖에 없는데, 언제까지고 비닐장갑과 고무장갑으로 무장할 수도 없는 일. 나는 그냥 피부병에 맞서기로 결심한 터였다.


“네… 옮으면 약 바르죠 뭐!”


감기에는 호들갑 떨던 내가 갑자기 쿨한 고수인척 눈짓을 날리고 병원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일주일 뒤, 경과를 보러 다시 찾은 병원. 원장님이 눈이 동그래져 나를 보고 물었다.


“도대체 어떻게 관리하셨어요? 다솜이 피부병이 싹 나았어요!!”


3일에 한번 약욕을 시키고 꼬박꼬박 약을 챙겨 먹였을 뿐인데, 마치 정말 내가 관리를 잘한 것처럼 어깨가 우쭐댔다. 사실은 다솜이가 잘 이겨낸 것인데!


다솜이는 생전 약이라곤 먹어본 적이 없는 것처럼, 무슨 약을 먹든 약 성분을 쏙쏙 흡수하는 듯했다. 흰 도화지에 무슨 색의 물감을 쓰든 본래 색을 발하는 것처럼. 의사 선생님도 놀랄 만큼 금방 좋아진 피부병과 감기 외에도 빠르게 호전되어 ‘건강한 강아지’로 거듭나는 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 후로 집 근처 병원으로 옮겨 한 달에 한번 맞는 사상충 예방접종 및 일반진료를 이어나갔다. 동물병원의 진료와 치료라는 게, 대인 진료와는 다르게 문진이 어려워서 한계가 많다는 걸 알게 되었다. 게다가 동물들은 병원에만 가면 아파도 안 아픈 척 연기를 하니 더욱 질병의 본질에 접근하기가 어려운 것 같다.


다솜이도 병원에만 가면 딴 강아지가 된듯했다. 어떻게 병원에 가는지 알고선 병원으로 들어서는 길목부터 사시나무 떨듯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내 팔을 꽉 부둥켜 잡으며 “누.. 누나! 나.. 너무.. 무서워!!”라고 말하는 것만 같았다. 나는 그런 모습이 너무 귀여워서 일부러 모른 척하며 놀리기도 하고 평소보다 더 꽉 안아주기도 하였다.


이럴때만 나에게 안기는 다솜이


처음엔 강아지 질병과 치료과정에 대해 잘 몰랐기에, 가장 원론적인 방법으로 치료를 부탁드렸었다. 다솜이가 가진 질병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기 위해 검사를 의뢰하고, 병명이 확인되면, 다시 피검사를 통해 맞는 약을 찾고, 약을 복용하다가 호전되는 것 같으면 완치판정을 위해 또다시 검사를 하는 프로세스를 거쳤다. 이 방법은 정확하고 안전하긴 했지만 시간과 돈이 많이 들었다. 그래서 몇 달 후에는 집 근처 병원의 선생님과 얘기를 나누고 진료 방법을 바꾸었다. 바로 다솜이에게 직접 확인하는 것이다.


다솜이는 여느 말티즈와 마찬가지로, 사나워져야 하는 순간에는 참는 법이 없었다. 그 순간들이 조금 잦은 것이 문제이긴 했지만, 이런 다솜이의 ‘참지 않는’ 성격은 곧 다솜이의 ‘솔직함’이기도 했다.


다솜이에게 중이염이 심하게 온 어느 날. 이 날도 어김없이 다솜이는 선생님에게 화를 내며 “절대 귀 사수!” 원칙을 고집하고 있었다. 선생님은 익숙한 듯 두툼한 장갑을 끼고 (다솜이는 이빨이 없는데도 물면 무척이나 아팠다) 귀에 연고를 넣고는 약을 처방해 주었다. 언제나처럼 다솜이는 귀신같이 약을 골라내려고 했지만, 알약을 작게 잘라 고구마로 감싸서 경단으로 만들어 냄새를 차단하고 놀이하듯 주면 ”이번 한 번만 속아줄게!“하며 잘 받아먹곤 했다.


며칠간의 투약 후에 경과를 보러 병원에 갔다. 다솜이가 먹는 약은 항생제가 들어있어 일정기간을 반드시 투약해야 하는데, 이번 결과로 인해 일주일을 더 연장해야 할지 여부가 결정되었다. 선생님은 다정하게 “확인하고 올게요~ 다솜아 가자!” 하고는 처치실에 다솜이를 데리고 들어갔다. 평소처럼 두툼한 장갑에 안긴 다솜이는 처치실로 사라지는 그 순간까지도 애타게 나를 쳐다본다. “다솜아 잘 다녀와!”라고 인사하지만 속으론 안쓰럽기 그지없다.


잠시 후, 선생님이 밝은 표정으로 다솜이를 데리고 왔다.


“오늘은 다솜이가 짖거나 물지 않네요!”


나는 “다행이에요” 하면서 그동안 다솜이가 범했던 무례한 행실들에 대신 미안함을 표현했다. 정작 당사자는 사과를 하지 않기에.


“다솜이는 솔직한 성격이라 아프면 아프다고 표현하는데, 오늘은 얌전한 걸 보니 더 이상 아프지 않은가 봐요! 이제 치료를 중단해도 되겠어요 :)”


의사 선생님의 말을 듣는데, 다솜이는 편안한 표정으로 혀를 날름거리며 내 품으로 파고들었다. 아! 다솜이가 말을 하진 않지만, 모든 걸 표현하고 있었구나. 다솜이는 ‘이제 아프지 않아요’라고 온몸으로 표현할 줄 아는 솔직한 강아지구나. 나는 표현하는 다솜이가 뿌듯하고 심지어 자랑스럽기까지 한 기분이 들었다. 동시에 지금까지의 모든 짖음과 으르렁에도 이유가 있었겠다는 것을 깨달으며 다솜이의 언어를 더 잘 관찰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솔직한 강아지, 다솜이는 그 후로도 컨디션이 안 좋으면 어김없이 화장실 구석으로 들어가서 “나 기분 안 좋으니까 건드리지 마!”라고 표현하기도 하고, 계단을 너무 뛰어올라서 허리를 삐끗한 날은 “아이고 허리야~~”하면서 하루 종일 허리를 구부리고 다녀 걱정을 하게 하기도 했다.


반려견이 단 한가지 말을 할 수 있다면 했으면 하는 말 1위로 “나 아파”가 꼽혔다고 한다. 우리 다솜이는 직접 말로 하지는 않지만 “나 아파”를 솔직하게 표현하니 얼마나 기특하고 고마운 일인지! 걱정할지언정 제때 관리를 해줄 수 있다는 게 말 못하는 강아지를 둔 보호자로서 가장 필요한 일이지 않을까 싶다.


무엄하도다!!! (주사맞는 게 아니라 그냥 연고만 바르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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