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겨운 병원 생활이 시작되었다.
나는 그녀의 손을 놓치지 않고, 그날 밤 병원 복도를 걸어 나왔다.
복도는 조용했고, 간간이 들려오는 발소리와 간호사들의 낮은 목소리만이 들렸다.
그녀의 동생이 나를 따라왔다.
"오빠, 언니가 힘들어하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으려고 해요. 오빠 덕분이에요. 고마워요."
그녀의 동생은 눈물 글썽이는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그럼, 그럼. 함께 힘내자."
나는 그녀의 동생에게 따뜻하게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나는 매일 퇴근을 하자마다 병원을 찾아갔다.
그녀의 얼굴은 여전히 창백했지만, 내가 온 것을 보자마자 환하게 웃어 주었다.
나는 그 미소에 용기를 얻었다.
"오늘은 어때?"
나는 그녀의 침대 옆에 앉으며 물었다.
"그럭저럭 괜찮아요. 오빠가 와줘서 더 나은 것 같아요."
그녀는 나를 보며 말했다.
그녀의 치료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위암 2기라는 진단은 무겁게 다가왔지만, 우리는 함께 이겨내기로 했다.
항암 치료를 시작하면서 그녀의 몸은 점점 더 힘들어졌다.
구토와 체력 저하로 고생하는 그녀를 보며 나는 마음이 아팠다.
며칠 후, 그녀가 항암 치료 후 지쳐있던 어느 날이었다.
나는 병실에서 그녀의 곁을 지키고 있었는데,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문이 열리고 대니가 병실 안으로 들어왔다.
"대니 오빠!" 그녀는 놀란 표정으로 대니를 바라보았다.
"안녕, 나 왔어." 대니는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
그는 꽃다발을 건네며 그녀의 침대 옆에 앉았다.
"치료는 어때? 힘들지?"
"괜찮아요. 오빠가 올 줄은 몰랐어요. 정말 고마워."
그녀는 대니에게 미소 지었다.
"왜 나에게 알리지도 않은 거야? Mr. 정이 나에게 전화해서 알게 되었어."
"정 오빠가요? 미안해요. 괜히 나 때문에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았어요."
대니는 잠시 우리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는 그녀의 상태를 걱정하며 진심 어린 위로의 말을 건넸다.
그리고는 그는 대만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나 이제 고향으로 돌아가려고. 회사에도 이미 사표를 냈고 정리도 대충 끝났어. 난 이곳에서 많은 것을 배웠어. 이제는 고향으로 돌아가 새로운 시작을 하려고 해."
대니는 그녀를 보며 말했다.
"정말요? 잘 됐어요. 새로운 시작을 응원할게요." 그녀는 아쉬워하면서도 축복하는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보다는 네가 더 힘을 내야 할 거야. 나도 빨리 건강이 회복되도록 응원할게."
대니는 그녀의 손을 잡고 힘내라고 말했다.
그의 진심 어린 말들이 그녀에게 큰 위로가 되었다.
잠시 후, 대니는 그녀에게 작별을 고하며 병실을 떠났다.
그가 떠나며 나의 손을 잡으며 부탁했다.
"호아를 부탁합니다. 그리고 그녀가 건강을 회복하면 여기 이메일로 알려주세요. 비록 저는 호아를 떠나지만 멀리서 호아의 행복을 빌겠습니다."
떠나는 그의 뒷모습은 쓸쓸해 보였지만 망설임은 없는 발걸음으로 사라져 갔다.
그는 고향으로 떠나기 전 마지막 인사를 남기기 위해 한번 더 그녀를 찾아왔었다.
항암 치료는 점점 더 그녀의 몸을 지치게 했지만, 우리는 서로에게 힘이 되려고 노력했다.
그녀가 힘들어할 때마다 나는 작은 웃음을 주기 위해 노력했다.
어느 날, 나는 병실에 작은 고무닭을 가지고 갔다. 그 고무닭은 눌리면 "꼬꼬댁!" 소리를 냈다.
"이건 또 뭐야?" 그녀는 피곤한 눈으로 웃으며 물었다.
"이건 웃음 치유용 고무닭이야. 한 번 눌러봐." 나는 고무닭을 그녀에게 건네며 말했다.
그녀는 고무닭을 눌러보았고, "꼬꼬댁!" 소리에 웃음을 터뜨렸다.
그 소리는 병실을 가득 채웠고, 우리는 함께 웃음을 나누었다.
그런 순간들이 그녀에게 큰 힘이 되었다고 느꼈다.
며칠 후, 담당 의사가 병실로 찾아왔다. 그는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항암 치료로 종양의 크기는 줄었지만, 이제 수술이 필요합니다. 수술 날짜는 다음 주 월요일로 잡혔습니다."
그녀는 잠시 말을 잃었다가, 차분하게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준비할게요."
수술 날짜가 다가오면서 그녀는 점점 긴장했다.
나는 그녀의 손을 잡고 말했다.
"네 옆에 있을게. 괜찮을 거야."
수술 당일 아침, 그녀의 어머니도 병원을 찾았다.
그녀의 부모님은 워낙 먼 곳에 있었고 대도시로 나오는 것이 어려웠다. 그녀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집을 비울 수 없어 교대로 한 번씩 올라왔지만 지독한 멀미로 병원에 오는 것을 그녀의 항암치료만큼 힘들어했다. 나는 그녀의 부모님에게 내가 그녀 곁에 있을 테니 무리해서 올라오실 필요는 없다고 했다. 그래서 낮에는 그녀의 동생이 저녁과 주말에는 내가 그녀의 곁을 지켰다.
수술 당일에 나는 휴가를 내서 그녀 곁을 지켰다.
그녀는 수술복을 입고 침대에 누워 있었고, 나는 그녀의 손을 꼭 잡았다.
"오빠, 무섭지만 이겨낼 거예요. 나 자신을 위해서, 그리고 오빠를 위해서." 그녀는 담담하게 말했다.
"그래, 걱정하지만 잘될 거야. 빨리 끝내고 나와. 내가 기다리고 있을 테니."
나는 그녀의 손을 더 꽉 쥐며 대답했다.
수술실로 이동할 때, 나는 그녀를 따라가며 계속해서 위로의 말을 건넸다.
수술실 문 앞에서 우리는 마지막으로 손을 맞잡았다.
"여기서 기다리고 있을게." 나는 그녀에게 용기를 북돋우며 말했다.
"고마워요, 오빠. 곧 다시 만나요." 그녀는 힘겨운 미소를 지으며 수술실로 들어갔다.
몇 시간이 지난 후, 의사가 나와서 말했다.
"수술은 성공적이었습니다. 환자는 회복실로 옮겨질 것입니다."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가 회복실로 옮겨진 후, 나는 그녀를 보러 갔다.
그녀는 아직 마취에서 깨어나지 않았지만, 얼굴은 평온해 보였다.
그녀가 깨어났을 때, 나는 그녀의 손을 잡고 말했다.
"수고했어. 수술 잘 끝났데. 이제 다 잘 될 거야."
그녀는 힘겹게 눈을 뜨며 미소 지었다.
"고마워요, 오빠. 이제부터는 더 건강해질게요."
병원 생활은 힘들었지만, 우리는 그 안에서 작은 행복을 찾으려 노력했다.
그녀와 함께 병원 카페테리아에 가서 차를 마시던 날이 있었다.
그날은 날씨가 좋았고, 그녀는 휠체어를 타고 병원 정원에서 산책을 할 수 있었다.
"여기, 오빠." 그녀가 나에게 작은 꽃을 건네주었다.
"이 꽃을 보면 생각나는 게 있어?" 나는 웃으며 물었다.
"그럼, 예전에 오빠랑 산책하던 공원에서 본 꽃과 비슷해요. 기억나죠?"
그녀는 나를 보며 환하게 웃었다.
"물론 기억나지." 나는 꽃을 받아 들며 말했다.
그 순간, 우리는 함께 한 추억을 떠올리며 웃음을 나누었다.
그런 소소한 순간들이 우리의 힘이 되었다.
치료가 진행될수록 그녀의 몸은 더욱 지쳤다.
하지만 그녀는 언제나 나에게 감사하며 미소 지었다.
어느 날, 그녀는 나에게 말했다.
"오빠, 내가 이렇게 힘들 때마다 오빠가 있어줘서 정말 고마워요. 내가 이런 상황에서도 웃을 수 있는 건 오빠 덕분이에요."
나는 그녀의 손을 꼭 잡으며 대답했다.
"너와 함께 있을 수 있어서 나도 정말 행복해. 빨리 건강해져서 우리 같이 맛난 것도 먹으러 가고 여행도 가자."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눈물을 글썽였다.
우리는 서로의 손을 꼭 잡고, 앞으로의 시간을 함께할 것을 다짐했다.
몇 달이 흘러, 그녀는 통원치료가 가능하다는 진단을 받았다.
치료 과정은 힘들었지만, 우리는 함께 그 과정을 견뎌냈다. 그
녀는 여전히 약하고 피곤했지만, 희망을 잃지 않았다.
"오빠, 이제 나는 다시 일어설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녀는 병원 침대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그럼, 이제 새로운 시작을 할 시간이야." 나는 그녀의 손을 잡고 함께 병실을 나섰다.
병원 밖으로 나가자, 우리는 맑은 하늘 아래서 새로운 희망을 느낄 수 있었다.
그녀의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했고, 우리는 함께 새로운 시작을 맞이할 준비가 되었다.
"오빠, 고마워요. 나에게 힘이 되어줘서." 그녀는 나를 보며 말했다.
"나도 고마워. 힘든 시간들 잘 견뎌줘서." 나는 그녀의 손을 꼭 잡으며 대답했다.
2023년 베트남 의료 상황은 한국의 1990년대 후반 상황과 비슷한 수준에 머물러 있다.
한국과 달리 인구가 계속 늘고 있으며 경제도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있어 국민들의 의료 수준에 대한 기대감도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의료 관련 예산이 적어 의료기기 및 시설이 낙후되어 있으며 인구 대비 병원이 적고 포화 상태며 대도시에 편중된 의료 시설 등 해결해야 할 문제점들이 있다.
베트남 정부와 보건부는 의료 부문에 대한 민관협력 투자를 장려하고 있다. 지역별로 격차가 심한 의료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해서 2023년까지 인구 1만 명당 10명 이상의 의사를 확보하는 것을 목표하고 있다.
베트남의 전반적인 의료 시설과 수준이 생각보다 낙후되어 있지 않다는 게 의료 관련 한국인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특히 전쟁을 겪으면서 쌓은 외과부문의 수술 기술은 상당히 뛰어나다는 의견도 보인다.
베트남의 의사를 비롯한 외과전문가 대다수가 미국, 유럽 등의 의료 선진국에서 교육받았기 때문에 다양한 의술을 보유하고 있다는 평가도 있다.
단지 아직 한국이나 기타 선진국에 비해 시설에서 차이가 나는 것은 사실이다.
베트남 정부의 의료 부문에 대한 적극적인 투자 유치로 현대식 시설을 갖추고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하는중대형 규모의 병원이 속속 문을 열고있다.
어디서든 마찮가지지만 가지 말아야 할 곳이 경찰서와 병원이다. 특히 외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병원이나 한국 의사가 있는 병원의 진료비는 상상을 초월한다. 기본적으로 10만원 이상의 비용이 든다고 생각하면 된다.
그러고보면 한국의 의료보험 시스템은 세계 최강이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