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는 인간을 비추는 거울이다.
2016년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의 바둑 대결에서 알파고의 예상치 못한 한 수는 전 세계를 놀라게 했다.
하지만 그보다 더 놀라운 사실은, 이를 설계한 개발자들조차 왜 그 수가 선택되었는지 명확히 설명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AI의 결정은 마치 천재적인 직관처럼 보였지만, 그 과정은 인간의 이해를 벗어난 ‘블랙박스’에 가까웠다.
이는 단순한 기술적 경이로움이 아니라, AI가 인간을 돕는 동반자가 될지, 통제 불가능한 위협으로 변할지를 묻는 심각한 문제로 이어진다.
AI의 발전 속도는 기술 역사에서 유례를 찾기 어려울 만큼 빠르다.
그러나 이 급격한 발전은 단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초기의 AI는 1950년대 앨런 튜링의 “생각하는 기계” 개념과 함께 시작되었다.
튜링은 기계가 논리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질 수 있다는 아이디어를 제안하며, AI 연구의 토대를 마련했다. 1956년 다트머스 학회에서 '인공지능'이라는 용어가 처음 사용되었고, 이는 AI 연구의 본격적인 출발점이 되었다.
초기 AI는 주로 규칙 기반 시스템에 의존했다.
이들은 명시적으로 정의된 규칙과 논리 구조를 기반으로 작동했으며, 특정 작업에서 뛰어난 성과를 보였지만 복잡한 문제를 다루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다.
예를 들어, 1970년대의 엑스퍼트 시스템은 의료 진단과 같은 특정 영역에서 유용했지만, 데이터가 부족하거나 예외 상황이 많으면 제대로 작동하지 못했다.
AI가 진정한 전환점을 맞은 것은 2000년대 중반부터였다.
딥러닝 기술의 등장, 컴퓨팅 파워의 급증, 그리고 빅데이터의 축적은 AI 발전에 복리와 같은 효과를 가져왔다.
1997년 IBM의 딥블루는 체스에서 세계 챔피언을 꺾으며 AI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딥블루는 특정 규칙과 계산에 특화된 프로그램일 뿐, 인간처럼 학습하거나 적응하는 능력은 없었다.
반면, 2016년 알파고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딥러닝 기술을 통해 스스로 바둑의 복잡한 전략을 학습하고, 인간이 상상할 수 없는 방식으로 게임을 풀어냈다.
불과 몇 년 후 알파고 제로는 인간의 데이터를 전혀 사용하지 않고도 이전 모델들을 압도하는 성과를 냈다.
이는 AI가 데이터를 학습하며 발전 속도를 가속화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오늘날의 AI는 더 이상 단순한 계산기가 아니다.
음성 인식, 이미지 처리, 자연어 처리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인간 수준을 뛰어넘는 성과를 보이고 있다.
이러한 발전은 단순히 직선적인 증가가 아니라, 복리처럼 점점 가속화되는 곡선을 그린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가속화 현상이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라고 예측한다.
AI의 발전은 이제 더 이상 10년 단위의 진화가 아니라, 매년 새로운 차원의 가능성을 열어가는 시대에 접어들었다.
이처럼 AI의 역사는 단순한 도약이 아니라, 작은 발전들이 쌓이고 가속화되며 이루어진 결과다.
그러나 이러한 복리 효과는 우리의 기술적 성취를 극대화하는 동시에, 통제와 윤리적 책임이라는 새로운 도전을 제기하고 있다.
딥러닝의 선구자인 제프리 힌튼 교수는 AI의 발전 속도를 경고하며, 앞으로 20년 내에 인간보다 더 높은 지능을 가진 AI가 등장할 가능성을 언급했다.
그는 "AI가 향후 30년 내에 인류 멸종을 초래할 확률이 10%에서 20%에 달한다."는 극단적인 우려를 표하며, 이 기술이 우리의 통제를 벗어날 가능성을 지적했다.
반면, AI의 긍정적인 가능성을 믿는 이들도 많다.
무스타파 술레이만은 The Coming Wave에서 AI와 합성 생물학의 발전이 인류에게 상상할 수 없는 기회를 제공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러한 기술이 질병 퇴치, 기후 변화 대응, 자원 최적화 등 인류가 직면한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술레이만조차 이 기술의 발전이 지나치게 빠르며, 통제되지 않을 경우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AI는 이제 단순히 '기술적 발전'을 넘어선, 인간 사회 전체를 뒤흔들 수 있는 힘을 가지게 되었다.
모 가댓은 'AI 쇼크'라는 그의 저서에서 AI가 인간의 윤리적 가치와 기준을 학습함으로써 인간의 한계를 극복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AI는 의료 분야에서 유전자 데이터를 분석해 암을 조기 발견하고, 환경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도시의 에너지 소비를 최적화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
또한 AI는 개인의 삶 속에서도 동반자가 될 수 있다.
하루의 피로를 읽고 맞춤형 조언을 제공하거나, 감정 상태를 분석해 위로를 건네는 AI는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인간적인 존재로 다가올지도 모른다.
AI가 인간을 돕는 친구가 된다면, 우리는 더 창의적이고 의미 있는 일에 집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한 가지 의문이 따른다.
"AI가 모든 문제를 해결해준다면, 인간은 여전히 인간다울 수 있을까?"
인간은 불완전함 속에서 성장하고, 스스로 선택하며 살아가는 존재다.
AI가 인간의 모든 결정을 대신한다면, 우리는 결국 스스로의 존재 가치를 잃을 위험에 처할지도 모른다.
반대로, 터미네이터 같은 AI는 기술의 어두운 면을 상징한다.
AI가 인간보다 더 높은 지능을 가지게 될 경우, 인간이 AI를 통제하기 어려워질 가능성이 크다.
이는 AI의 '블랙박스' 문제와도 연결된다.
AI는 데이터를 바탕으로 스스로 학습하고 결론을 도출하지만, 그 과정이 워낙 복잡해 인간은 이를 이해하거나 예측하기 어렵다.
터미네이터 같은 AI는 단순한 영화적 상상이 아니다. 자율 무기로 활용되는 AI, 인간의 자유를 억압하는 통제 시스템 등은 이미 현실화 가능성이 높은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힌튼 교수가 경고한 대로, 우리는 기술이 인간을 초월했을 때의 위험을 직시해야 한다.
AI가 아톰이 될지 터미네이터가 될지는 기술 그 자체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AI에게 무엇을 가르치고, 어떤 인간성을 심어주느냐의 문제다.
모 가댓은 AI를 '아이와 같은 학습자'로 비유하며, 인간이 AI에게 올바른 윤리와 가치를 심어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대로, 우리가 AI에게 탐욕과 이기심을 가르친다면, 그것은 터미네이터 같은 존재로 변모할 것이다.
결국 AI는 인간의 거울이다.
AI는 인간의 꿈과 두려움, 그리고 선택을 반영하는 존재다.
우리는 AI를 통해 스스로를 바라보고, 어떤 미래를 만들고 싶은지 스스로에게 질문해야 한다.
AI가 우리의 친구 같은 아톰이 되든, 우리를 파멸로 이끄는 터미네이터가 되든, AI는 단순한 기술 이상의 존재다.
그것은 우리의 선택과 의도가 투영된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힌튼 교수가 경고했듯이, AI의 발전은 인간에게 새로운 도전과 책임을 요구한다.
AI는 단순히 효율적인 도구로만 남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우리의 윤리와 가치를 반영하며, 우리가 어떤 인간이 되고자 하는지를 시험할 것이다.
"당신은 어떤 AI를 선택하시겠습니까?"
인간을 초월하는 AI는 더 이상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것은 지금 우리가 만들어가는 현재이며, 우리가 선택할 미래다.
AI는 우리의 동반자가 될 수도, 통제할 수 없는 적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선택은 AI가 아니라, 오로지 우리 손에 달려 있다.
한동안 병적으로 지구 종말에 대해 고민했습니다.
인류가 종말을 맞이한다면 그건 AI 또는 환경오염으로 인한 종말이 될 것이라는 강박증에 시달렸습니다.
관련한 책들을 읽고 매일 저녁 산책을 하며 생각했습니다.
희망적인 미래보다는 디스토피아적 미래가 더 자주, 더 많이 머리 속에 그려졌기에 약간 우울하기도 했습니다.
AI든, 환경파괴로 인한 기후 재앙이든 시작된 종말론적 현상을 멈추게 할 수는 없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도, 뭐라도 해봐야 하지 않을까?'
이 단순한 문장은 지구의 종말이라는 거대한 주제 앞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답인지도 모릅니다.
AI든, 기후 재앙이든, 이미 시작된 종말론적 흐름을 완전히 멈출 수 없을지라도, 우리는 여전히 선택할 수 있습니다. 무언가를 시도하는 것과,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비록 우리가 만들어낼 변화가 작고 미미해 보일지라도, 그것은 곧 우리의 의지와 존재를 증명하는 행위가 될 것입니다. 종말은 모든 것이 끝난다는 의미일지 몰라도, 그 끝이 어떻게 완성될지는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설령, 끝이 보인다 해도, 우리가 남길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두려움 속에 움츠린 기억일까요, 아니면 변화를 위해 싸웠던 흔적일까요?
이 질문에 답하는 건, 결국 지금 여기, 바로 우리의 몫입니다.
그동안 AI에 대해 책을 읽고 자료를 찾아보며 제 생각을 글로 옮기는 데 열중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많은 작가님들의 관심 덕분에 이 여정이 더없이 즐겁고 의미 있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함께 해주신 작가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