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샤르 알 아사드
출생 : 1965.09.11. 시리아
소속 : 시리아(대통령)
가족 : 배우자 아스마 알 아사드, 아버지 하페즈 알 아사드
수상 : 2012년 미국 타임지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
경력 : 2000.07.~ 시리아 대통령
사람마다 인생의 궤적이 있다.
누군가는 길가다 100원을 줍고, 누군가는 스타벅스에서 자기 이름이 '승룡'으로 잘못 적힌 것을 평생 못 잊는다.
그리고 누군가는 런던에서 평범하게 치과의사 하다가 갑자기 나라를 다스리게 된다.
바샤르 알 아사드 그는 그 '누군가' 중에 한명이였다.
아사드는 1965년 다마스쿠스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하페즈는 장군이자 나중에는 국가원수가 되었고, 큰형 바셋은 '아버지의 후계자'라는 표식이 이마에 새겨진 채 자랐다.
키는 크고 마른 편이며, 말수만큼 사교성이 낮았으며, 단체활동 부적응과 축구 경기하면 구석에서 혼자 끈 묶는 타입의 바샤르는 그렇게 조용히 인생을 즐기고 있었다.
가족들은 말했다.
“얘는… 그냥 의사나(?) 시켜야겠어요.”
실제로 그는 어릴 때부터 정치적 재능이 전혀 없었다.
토론 수업에서는 늘 마지막에 "저는… 방금 친구가 말한 의견을 지지합니다"만 반복했고, 학교 반장 선거에서는 단 한 번도 표를 얻지 못했다. 자기 표도 못 받은 날이 있었다.
그러나 큰형 바셋은 정반대였다. 말도 잘하고, 운동신경 좋고, 군대 좋아하고, 카리스마 넘쳤다.
아버지의 후계자로 키워진 ‘제대로 된 왕자’였다.
바샤르는 그냥 ‘왕자 옆 그늘에서 조용히 뛰어노는 왕자 보조’ 같은 느낌이었다.
1980년대 말, 아사드는 의사가 되기 위해 런던으로 유학을 갔다.
그는 정치적 포부도, 야망도 없다시피 했다.
그저 안정적인 삶, 환자들이 입을 크게 벌릴 때 보이는 고요한 치아 세상을 사랑했다.
그 시절 지인들의 증언을 보면 그의 런던 생활은 거의 힙스터 치과의사에 가까웠다.
일 끝나고 커피숍에서 조용히 책 읽고, 영국식 유머에는 반응 못 하고, 파티 가면 20분 안에 집 가고, 친구들이 정치 얘기하면 몰래 자리 옮기는 것이 일상이었다.
어떤 영국인 환자는 그를 두고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침착하고, 친절하고, 너무 조용해서 좀 불안한 의사.”
또 다른 환자는 그를 치과계의 전형적인 의사라고 평가했다.
완벽한 내향형, 말수 적은, 깊은 생각형 인간.
그에게 런던은 인생의 평온한 챕터였다.
아버지의 그림자도 없고, 군부도 없고, 요란한 아랍 정치도 없었다.
단지 치아와 잇몸만 있었다. 그는 진심으로 행복했다.
그의 꿈은 작은 치과를 열고 평생을 환자와 함께 보내는 것이었다.
세상은 그 꿈을 무참히 부수기 전까지는.
바샤르가 런던에서 레진 충전을 하고 있을 때, 다마스쿠스에서는 청천벽력 같은 일이 벌어졌다.
큰형 바셋이 자동차 사고로 사망.
하페즈 알 아사드에게는 충격이었고, 시리아 권력층에게는 운명적 공백이 생겼다.
왕좌는 텅 비었고, 그 자리에 누가 앉아야 할까?
선택지는 단 하나였다.
런던에서 조용히 치과 진료 중이던, 그 수줍고 내향적이고 정치엔 관심이라곤 1도 없던 바로 그 아들.
그는 급히 소환됐고, 곧바로 군사학교로 들어갔다.
그리고 아버지는 말했다.
“너, 이제 이 나라의 미래다.”
바샤르는 아마 속으로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아빠, 그냥 스케일링 마저 하면 안 돼요?”
하지만 역사란 늘 개인의 소망에는 관심이 없다.
2000년,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고 바샤르 알 아사드는 시리아 대통령이 되었다.
취임식 날, 많은 사람들은 기대했다.
그럴만도 하다. 그는 젊고 서구식 교육 받았으며, 치과의사 출신이다. 그건 뭔가 좀 더 인간적이지 않을까하는 기대감마저 안겨주는 스펙이었다.
사람들은 말했다.
“그래, 이번에는 좀 다르겠지?”
그리고 몇 년이 지나자 그 기대는 이렇게 번역된다.
“우리… 너무 순진했구나.”
치과의사는 기본적으로 침착하고, 정밀하고, 예리하다.
환자가 아파해도 “금방 끝나요”라며 미소를 지어야 한다.
아사드도 정치를 그렇게 했다.
반대 시위가 일어나면? “아프죠? 조금만 참으세요.”
개혁 요구가 터지면? “아- 벌려보세요. 금방 끝납니다.”
국제사회가 비판하면? “이건 염증이 아니고… 반군의 자작극입니다.”
문제는 치과 치료는 사람을 살리지만, 그의 방식은 나라를 아프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의 정치 철학은 놀라울 정도로 단순했다.
“나라가 아프면 신경치료가 아니라… 폭격을 한다.”
이쯤 되면 정치 철학이라기보다, 치과 기구와 전투기 스위치를 헷갈린 것에 가깝다.
사실 치과의사는 집중력이 좋다. 정밀하다. 감정적이지 않고, 냉정하다.
문제는 그 성격이 정권 탄압에 적용되면 끔찍한 효율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바샤르는 환자의 치통을 다루듯, 국가의 분노를 ‘정밀하게’ 다뤘다.
시위가 일어나면 진통제가 아니라 실탄, 개혁 요구가 나오면 교정기 대신 탱크 투입, 국제사회가 항의하면 마취 대신 화학무기...
그의 스타일은 감정적 폭력이 아니라 “너무 조용해서 더 무섭다.”라는 평가를 받는다.
2011년, 시리아에 봄이 왔다. 꽃이 핀 것이 아니라 시위 플래카드가 피어난 봄이었다.
국민들이 요구한 건 단 하나였다. “우리도 좀 사람답게 살게 해주세요.”
그러나 그의 대응은 예상 밖이었다.
처음엔 군인들이 총을 들고 나왔고, 그다음엔 탱크가 굴러왔다.
그리고 어느 순간, 전쟁터에선 “이상한 냄새가 난다.”는 말이 돌기 시작했다.
그 냄새는 치과에서 맡는 국소 마취약도, 병원에서 쓰는 산소 마스크 냄새도 아니었다.
사린(Sarin). 제네바 협약으로 금지된 바로 그 물질.
화학무기는 원래 치과의사에게 가장 익숙한 도구들이 아니다.
취급해봤자 웃음가스(N2O) 정도가 전부다. 그나마도 환자가 과하게 웃으면 당황할 뿐이다.
그러나 아사드는 예외였다.
그의 생각은 “그건 하면 안 된다.”고 써 있는 매뉴얼을 집어 들고 “근데 하면 되긴 되지 않나?”라는 쪽으로 흘렀다.
시리아 구타 지역(Ghouta)에서 아이들과 어른들의 몸이 굳어가는 영상이 전 세계에 퍼졌다.
의사들은 말한다.
“이건 독가스 증상입니다. 근육 경련, 동공 축소, 호흡 정지.”
국제사회는 경악했다.
그리고 아사드는… 아주 침착하게 TV에 나와 말했다.
“그거 우리가 한게 아닙니다.”
UN 조사단이 도착했고, 위성사진, 잔류 물질 분석, 희생자 혈액 샘플, 수십 가지 증거가 쌓였다.
심지어 현장의 콘크리트 벽에서 사린 가스 성분까지 검출됐다.
하지만 아사드의 한마디는 늘 같았다.
“반군이 우리를 모함하려고 스스로 쏜 거예요.”
세계는 순간 멈칫했다. 미국 국무부는 노트를 덮으며 말했다.
“아니… 반군이 자기 마을에 자기 애들한테 화학무기를 쏜다고?”
한 프랑스 외교관은 한숨을 쉬며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역대 최악의 거짓말이다. 프랑스에서 크림빵 훔친 학생도 이보다 변명을 잘하겠다.”
2018년, 두마에서 또다시 화학무기 공격이 발생했다.
현장엔 클로린 냄새가 진동했고, 숨을 쉬지 못해 쓰러진 사람들의 영상이 퍼졌다.
그리고 또다시 그는 카메라 앞에 앉아 말했다.
“그거 반군 자작극입니다.”
기자들은 물었다.
“왜 반군이 이길 수 없는 방식으로, 국제사회가 개입할 수밖에 없는 방식으로 스스로 화학무기를 쓰겠습니까?”
그러자 그는 아주 침착하게 말했다.
“음… 그건… 당신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단순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설명은 끝내 나오지 않았다.
아사드의 화학무기 사용은 21세기의 최악의 정치 범죄로 기록된다.
그러나 그의 통치 스타일은 여전히 차분하다. 사실 그게 더 무섭다.
치과의사 시절, 그는 마취제를 조용히 다뤘다.
대통령이 된 뒤, 그는 국가를 마취시키려 했다. 그 과정에서 잘못된 도구가 선택된 것이다.
세계 최강의 ‘경영진용 변명 스킬’을 가진 남자답게 모든 사건에 ‘아니라고’만 답했다.
아사드는 여전히 왕좌를 지키고 있다.
하지만 그 왕좌는 금장 가구가 아니라 무너진 도시 폐허 위에 놓인 낡은 책상에 가깝다.
그리고 온 세계는 알고 있다.
그의 왕국은 정치적 마취 속에서 천천히 소멸하고 있는 나라라는 것을.
그리고 그는 카메라 앞에서 여전히 말한다.
“시리아는 정상입니다.”
그 모습은 이렇게 들린다.
“사실 내가… 진짜 하고 싶었던 건 충치 치료였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