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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네타냐후’인가 ‘또타냐후’인가

벤자민 네타냐후

by 한자루
출생 : 1949.10.21. 이스라엘
소속 : 이스라엘(총리)
수상 : 2012년 미국 타임지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
경력 : 2022.12.~ 이스라엘 총리
2009.03.~2021.06. 이스라엘 총리
2006.03.~2009.03. 이스라엘 제1야당 대표


텔아비브 근처에서 태어난 네타냐후는 애초부터 일반인은 아니었다.

아버지는 강경 시오니스트 역사학자, 형은 전설적 특수부대 장교, 심지어 가족의 대화 소재는 축구가 아니라 국가안보였다.
어쩌면 그는, 유치원에서 블록 놀이 대신 ‘시오니즘과 중동지형’ 얘기를 들으며 자랐을지도 모른다.
미국으로 잠시 건너가 MIT 유학생이 되기도 했고, 다시 돌아와 특수부대 ‘사예렛 마트칼’에 들어가 작전 참가까지 했다.
그 과정에서 그는 깨달았을 것이다.

“왕이 되려면 왕관보다 먼저 총, 지형, 대중의 공포를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그 깨달음은 그를 단순한 정치인이 아닌 시리즈의 주연으로 만들었다.

이쯤 되면 그의 인생에서 평범함은 태어나기 전에 이미 파기된 옵션이었다.




중동 국제정세를 이야기할 때 이란이란 단어 옆에는 거의 자동으로 “네타냐후”가 붙는다.

그의 정치 철학 요약은 사실 간단하다.

“이란은 위협이다. 그 외의 모든 접속사는 필요 없다.”

그는 매년 유엔 총회에 나타나 이란의 핵 개발을 그래프와 그림판 수준의 도표로 설명하며 심각한 표정으로 말한다.

“이란은 곧 핵을 완성할 것이다.”

문제는… 그 말을 10년째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쯤 되면 이란 핵 개발은 지구상 가장 운영 오래된 ‘준공 임박’ 프로젝트다.
네타냐후는 이 프로젝트의 비공식 홍보대사 같은 존재다.

한국에 비유하자면, “곧 완공될 GTX”와 비슷한 느낌이다. 올 듯 말 듯, 긴박한 듯 아닌 듯. 하지만 그의 전략은 매우 효과적이었다.

정치적으로 어려울 때마다 이란을 언급하면 이스라엘 국민의 불안감과 결집은 자동으로 상승했다. 어떻게 보면 그는 중동판 위기 마케터였다.


2023년, 하마스의 대규모 기습 공격 이후 네타냐후 정부는 전쟁에 돌입했다.
이스라엘은 국가적 충격을 받았고 국민은 분노했다.

하지만 동시에 커다란 물음표들도 생겼다.

“어떻게 이렇게 큰 공격을 사전에 못 막았지?”, “사법 개혁으로 나라가 분열된 게 문제 아닌가?”

“정부가 경고를 무시한 것 아닌가?”


많은 국민이 비판했지만 네타냐후의 정치적 생존 능력은 이미 일반 인간의 범주를 벗어난 지 오래였다.

그는 위기의 순간마다 “전쟁을 이길 사람은 나”라는 메시지를 밀어붙였고 그 결과 그의 지지층은 다시 결집했다.

물론 반대 세력은 말한다.

“위기를 관리한 게 아니라 위기와 동거하는 법을 터득한 사람이다.”

네타냐후는 일관되게 외쳤다.

“적이 핵을 갖기 전에 우리가 먼저 행동해야 한다.”
그는 ‘후퇴’보다는 ‘선제공격’, ‘협상’보다는 ‘위협의 압박’을 선택했다.
그의 정치철학 요약하자면 안보 위협을 강조하면, 리더로 인정받는다. 그리고 리더로 인정받으면, 권력이 굳건해진다.

한마디로 권력이 요구하는 건 위기다.
따라서 그는 위기를 부르기보다 위기를 유지하는 전략가처럼 보인다.


그에게 안보 위기와 권력 유지는 마치 연료와 엔진처럼 서로를 밀어주는 구조였다.
그에게 정치란 ‘위기를 관리하는 예술’이었고, 국민에게 그는 ‘불안하면 나를 찾아라’라는 매우 직관적인 메시지를 던졌다.

이쯤에서 그는 자연스럽게 별명을 갖게 된다.
이스라엘에서는 본명 벤야민에서 나온 애칭 비비(Bibi)로 불렸고, 뉴스만 켜면 등장하는 덕분에 마치 국제정치판 카톡 알림 창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더 정교한 별명이 탄생한다.

바로 ‘또타냐후 (또 + 네타냐후)’. 이 별명이 그에게 붙은 이유는 간단하다.

그의 정치 경력을 시즌제로 나누어 보면 충분히 이 별명에 공감하게 될 것이다.

시즌 1: 집권
시즌 2: 퇴진
시즌 3: 부패 혐의
시즌 4: 복귀
시즌 5: 연정 붕괴
시즌 6: 또 복귀


퇴장하고, 기소되고, 몰리고… 여기까지만 해도 충분히 다이내믹한데, 문제는 그가 매번 다시 등장한다는 것이다.

엔딩 크레디트가 다 올라가는데 그 뒤에 쿠키 영상처럼 다시 나타난다.
그래서 사람들은 말한다.

“정치판의 프랜차이즈다. 시즌은 결코 끝나지 않는다.”


그는 이란 핵 개발을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줄거리”라고 선언했고, 언제나 강경하고, 언제나 확신에 차 있고, 때로는 국제사회의 심장 박동수를 올리는 발언을 한다.
그래서 이란의 농도가 높아지면 네타냐후는 반드시 등장한다.
누군가 알림을 꺼도 다시 뜨는 정치적 푸시 알림처럼.

그리고 2025년 6월, 결국 일이 터졌다. 이스라엘은 이란 핵시설을 공습했다.

네타냐후의 발표문은 마치 대중 공연이었다.

"오늘 우리는 이란의 핵 능력에 중대한 타격을 가했다. 그리고 분명한 것은… 오늘이 끝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의 말 뒤에는 대기하는 레이더 화면처럼 긴장감이 흐르고 있었다.
이 말이 나오고 나서, 이란의 미사일, 드론 반격도 이어졌다.

물론 국제사회는 ‘또 시작이군’이라는 표정을 지었다.

공습과 반격이 이어지며 중동 하늘이 뜨거워지던 그때, 뜻밖의 인물이 난입했다.
미국의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

국제정세가 고조된 와중에도 그는 마치 한 시즌 쉬고 돌아온 특별 게스트처럼 등장했다.
트럼프는 양측 지도자들에게 전화를 걸어 “이 싸움, 잠깐 스톱!”을 외쳤고, 놀랍게도 이스라엘과 이란은 일단 “그렇게 하자”는 듯한 합의에 도달했다.

전 세계는 순간 의아했다.
“아니, 진짜 이렇게 멈춘다고?”

그러나 이 휴전은 평화협정이라기보다는 정지 화면에 가까웠다.
양측은 총구를 거두었지만, 손가락은 여전히 ‘재생 버튼’ 위에 얹혀 있는 형국이었다.

네타냐후는 즉각 성명을 냈다.
겉으로는 “휴전을 환영한다”라고 했지만, 표정은 마치 “일단 멈추지만, 다음 에피소드는 이미 찍어놨다”라고 말하는 듯했다.

한편 트럼프는 휴전 성과를 대대적으로 알렸다.
자신의 플랫폼에 “전쟁 멈춤. 내가 했다.”라는 식의 메시지를 올렸고, 지지자들은 “역시 트럼프형!”을 외쳤다.

그러나 진짜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휴전 직후에도 일부 지역에서는 드론이 날아가고, 미사일 경보음이 울렸고, 양측은 “상대가 먼저 깼다”며 서로를 비난했다.

이쯤 되면 이것은 ‘평화의 시작’이 아니라 “폭풍 앞의 버퍼링”, 혹은*“광고 스킵이 안 되는 국제정치”에 가까웠다.

이 상태를 가장 잘 나타내는 국제사회의 표정은 이랬다.

“일단 멈춘 것 같긴 한데… 잠깐만, 정말 멈춘 거 맞아?”

중동 전문가들은 말한다.
이번 휴전은 전쟁의 끝이 아니라 전쟁의 새로운 막간일 뿐이라고.
그리고 이 막간은 언제든 다음 장면으로 넘어갈 준비가 되어 있다.

결국 네타냐후에게 이 휴전은 그가 다시 ‘국가의 수호자’로 등장할 기회이자, 트럼프에게는
자신의 정치적 영향력을 과시할 수 있는 이벤트였고, 세계에게는 “또 시즌 넘어가나?” 하는 피로와 불안의 혼합이었다.

이 모든 가운데, 한 가지 사실만은 분명해 보인다.

지금은 휴전이 아니라, 비비와 트럼프의 ‘일시정지’ 일뿐이다. 다음 회차는 이미 대기 중이다.


그럼 이스라엘 국민은 네타냐후를 두고 어떤 감정일까?

지지층에서는 “이 정도 지도력 있는 사람 없다.”라는 평이지만 반대층은 “이 정도로 오래 버티는 사람도 없다.”라는 반응이다.

해외 반응도 비슷하다. 미국과 유럽은 그를 ‘중동에서 가장 다루기 어려운 친구’ 정도로 본다.

문제는 그 친구가 문제아라는 것이지만.

국제사회는 그 문제아가 나타날 때마다 “또 무슨 일이 생기는 건가?”라고 긴장한다.


그렇다. 벤야민 네타냐후 역시 단순히 총리가 아니다.
현대 정치사에서 유일하게 “퇴장 없는 시즌제 캐릭터”로 살아남은 인물이다.

위기 때 등장하고, 위기가 사라지면 새로운 위기를 만들어내고, 국민이 피곤해하면 “이란!”이라는 단어로 긴박감을 재부팅하는 남자.

이건 그를 좋아하든 싫어하든 모두가 인정하는 사실이 있다.


그는 중동 정치의 블랙코미디를 가장 진지하게 연기하는 배우다.
그리고 아마 다음 시즌의 첫 대사는 이럴 것이다.
“이스라엘 여러분, 제가 돌아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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