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웅산 수치
출생 : 1945.06.19. 미얀마
소속 : 미얀마 외무부(장관), 미얀마(국가자문역)
가족 : 아버지 아웅 산
수상 : 2012년 국제사면위원회 양심대사상
2005년 올로프 팔메상
경력 : 2016.04.~ 미얀마 국가자문역
정치의 세계를 보면 가끔 자연 다큐멘터리가 생각난다.
겉보기에 우아한 백조도 물밑에서는 미친 듯이 발을 휘젓는다.
그리고 때로는 백조인 줄 알았던 무언가가 시간이 지나면 그냥 오리였다는 게 드러나기도 한다.
어쩌면 아웅산 수치, 그녀가 바로 그런 케이스일지도 모른다.
수치는 태생부터 스토리가 완벽했다.
독립 영웅의 딸, 영국 유학, 엘리트, 온화한 미소,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동네 중 하나인 미얀마에서 “민주주의 하러 왔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담력까지.
국제사회는 그녀를 거의 ‘동양의 만델라에 디즈니 프린세스’을 엎어 놓은 인물로 포장했다.
아무리 현실 정치가 냉혹해도, 사람들은 항상 예쁜 서사를 좋아한다.
그리고 수치는 그 서사의 완벽한 주인공이었다.
적어도... 초반에는 말이다.
문제는 그녀가 배운 민주주의 메뉴판이 미얀마 주방에서는 제공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영국에서 가르쳐준 건 자유, 평등, 선거, 법치, 인권...
그러나 미얀마의 현실은 군부, 군부, 그리고... 군부였다.
민주주의라는 요리를 미얀마에서 주문하면 “품절”이었다.
군부가 ‘오늘은 민주주의 안 나갑니다’라고 말하면 그걸로 끝이었다.
수치는 이 격차를 어떻게든 메우려 애썼다. 그러다 보니 정치철학은 자연히 변질됐다.
초기에는 “진리는 반드시 이긴다.”라는 철학이 점차 군부의 총 소리는 진리보다 크다.”로 변했다.
그래서 결국 “일단 살아남는 게 우선이다.”라는 생존 철학으로 완성되었다.
그녀가 배운 민주주의는 원본이었고, 그녀가 해야 했던 민주주의는 ‘미얀마 군부 버전 3.0 β테스트판’이었다.
2016~17년, 세계가 충격에 빠졌다.
군부가 로힝야를 향해 잔혹한 폭력을 자행하는 동안 모두가 수치의 입만 바라봤다.
그리고... 그녀의 입은 열리지 않았다.
열린 건 국제사회의 입뿐이었다.
“아니... 넬슨 만델라 포지션이잖아?”
“평화주의자는 어디 갔지?”
“입력 오류인가?”
그녀의 발언은 늘 똑같았다. “정보가 부족합니다.”, “상황을 파악 중입니다.”, “지금은 언급하기 어렵습니다.”
즉, 외교적 언어로 번역하면 “군부의 기분이 나빠질까 봐 무섭습니다.”가 된다.
그리고 결정적 장면. 그녀는 국제형사재판소(ICJ)에 직접 나가 미얀마를 옹호했다.
국제사회가 “당신네 군부가 민간인 학살했어요!”라고 말하자 수치는 “그 정도는 아니거든요!”라고 답했다.
그 순간, 세계는 ‘민주주의의 공주님’을 ‘침묵의 여왕’으로 재명명했다.
수치를 옭아맨 건 독재가 아니라, 그 독재와 공존해야 했던 현실 정치였다.
그녀의 정치 스타일은 군부랑 정면 대결은 회피, 민족주의 여론은 그냥 따라가기, 헌법 개헌은 나중에… 나중에... 정말 나중에, 국제사회 요구는 적당히 필터링, 말보단 포지션 유지.
이건 그녀가 나빠서가 아니라 군부가 너무 무서워서였다.
그녀의 모습은 마치 “원래 산타를 믿었지만, 회사 다니면서 아직도 산타를 믿을 순 없는 어른” 같았다.
수치는 영웅이 되고 싶었지만, 군부 아래서는 영웅보다 생존의 법칙에 충실한 것이 우선이었다.
2021년 군부는 다시 쿠데타를 일으켰다.
수치는 또 체포되었다. 또 재판받았다. 또 감금됐다.
하지만 이번 감금은 과거와 의미가 완전히 달랐다.
첫 번째 감금에서 세계는 “수치를 구하라!”라고 외치며 그녀를 희망의 아이콘으로 만들었지만,
두 번째 감금에서 국제사회는 “음...이거 일단 복잡하네.”라는 반응이었다.
이쯤 되면 수치는 영화 시리즈 주인공이 아니라 정치판에서 끝없이 리부트되는 지적재산 같은 것이었다.
수치를 완전히 비난하기도 어렵고, 완전히 옹호하기도 어렵다.
그녀는 영웅이었고, 동시에 실망스러웠고, 군부의 피해자이자 나라의 리더였고, 또 침묵으로 인해 상처를 남긴 인물이었다.
수치는 민주주의의 상징이었지만, 동시에 “민주주의가 왜 이렇게 어려운가”를 보여주는 사례 연구이기도 했다.
그녀는 패배자도, 배신자도 아니고 그냥 정치라는 깊고 어두운 숲에서 길을 잃은 인간이었다.
지금 그녀는 다시 감금되어 있다.
하지만 이번엔 자유의 투쟁이 아니라 자유의 한계를 상징하게 되었다.
아웅산 수치는 한때 전 세계가 가장 사랑한 정치인 중 한 명이었다.
군부가 그녀를 가두었을 때 세계가 울었고, 그녀가 침묵했을 때는 세계가 당황했다.
자유를 위해 싸운 영웅이었지만, 정작 다른 이들의 자유 앞에서는 등을 돌렸다.
그리고 미얀마는 여전히 묻는다.
“우리는 수치를 어떻게 기억해야 하는가?”
아마 가장 솔직한 답은 이거일 것이다.
“그녀는 신화적인 영웅도 아니고, 완벽한 악당도 아닌, 정치라는 괴물에게 너무 많은 것을 기대했던 우리 모두의 거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