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자존감이 낮은 것일까

by 호랑냥이

영감이 필요했습니다. 열망 또한 절실하게 필요했습니다. 긍정적 자극과 에너지, 행복감도 필요했죠. 한 번뿐인 인생을 불안과 걱정 따위에 휘말려 주변의 누군가와 항상 비교하여 자괴감에 사로잡히는 것이 너무나도 싫었고 특정한 무언가에 사로잡혀 의지하게 되는 강박 따위를 버릴 수 있다면 분리수거통에 세차게 버리고 싶었습니다. 긍정적인 마음으로 불안과 우울, 걱정을 떨쳐내 버리고 자신을 신뢰하기 않고 타인에게 예민함과 짜증, 과민반응을 보이는 스스로를 변화시키기를 원했습니다. 심리적 자료를 찾아서 해답을 얻고 싶어 하는 대다수의 사람들처럼 무언가의 해답을 원했는지도 모릅니다. 나는 자존감이 너무나도 낮아져 있기 때문이었죠.


대부분의 사람들이 너무 그 이유를 잘 알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저도 잘 알고 있거든요. 매사에 비판적인 성향이 강하고 타인과의 비교를 많이 하며 새로운 인간관계를 두려워하며 누군가에게 비난받는 것을 걱정하고 실행보다는 부담감을 앞세우며 변죽은 바람 곁의 갈대처럼 갈피를 잃어버리고 성공의 경험을 인지하는 감각기관의 인지도가 낮기 때문입니다. 물론 파악하지 못하는 더 원인들이 난지도의 버려진 물건들처럼 보기도 어려울 정도의 높은 산을 만들며 산적해 있을 겁니다. 그것들은 끊임없이 마음의 갈등을 부채질하고 때론 괴롭히고 때론 불안의 감정을 증폭시키고 깊은 우울의 바다로 나를 이끌어 갑니다.


뻔한 해법도 어느 정도는 알고 있습니다. 강한 의지를 가져야 하고 비교는 절대 금물이며 많은 것들에 있어서 긍정적인 사고력을 확장시켜야 하고 두려움을 떨쳐버리고 걱정과 불안을 이겨낼 수 있는 용기를 가져야 한다. 그러하지 못했을 경우에 마음에 깃드는 감정의 변화도 대부분 인지하고 있습니다. 불안감에 도전을 회피하게 되고 행동력은 저하되며 많은 것들에 있어 과민반응을 야기하고 음주와 흡연에 더욱 의존성을 높여갈 것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지속적인 심리적 문제의 관심을 통해 어느 정도의 문제점을 파악하고 변화의 필요성을 인지하고 있음에도 나는 잘 변화되지 않더라는 사실입니다. 문제점을 파악하고 결과물과 해결점을 도출해내는 방식으로 해법을 찾아보고자 하였음에도 마음은 여전히 끊임없이 비교를 앞세우고 불안을 키우며 걱정을 동료처럼 곁에 두어 마음의 안정을 찾으려고 하더군요. 왜일까요? 저는 제 자신이 너무나도 궁금했습니다. 때론 한심하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눈앞에 펼쳐져 있는 행복의 만찬을 두고서도 '이것이 과연 내 행복을 위한 음식인가?'라는 의구심을 떨쳐내지 못했기 때문이죠. 나에 대한 정보와 해법을 알고 있다는 심리 편향적 사고를 하고 있음에도 자존감은 낮아지고 자괴감을 깊어져 가더군요. 그러다가 나의 문제점을 시원하게 환기시키는 새로운 관점이 눈에 쏙 뜨이더군요. ' 내가 나의 부정적 요인에 대해서만 에너지를 집중시키고 있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입니다. 사고력과 의지력, 감각기관에 대한 인지력도 분명 제한적인 에너지를 가지고 있을 텐데 나는 왜 행복감, 만족감, 즐거움과 기쁨에 집중할 에너지를 방안의 화초처럼 신경 쓰지 않은 체 보이지도 않을 마음의 구석 자리에 내던져 놓치는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바꿔 보기로 했습니다. 제한된 에너지를 행동을 통해 행복을 느낄 수 있는 마음에 더욱 집중해 보기로 말이죠.


핑계의 마음을 버리고 시각적 감각을 자극해보자.
사회적 공감능력을 키우자.
실패할 수도 오류가 발생할 수도 있음을 인정하자, 그리고 용기를 내자.
건강식품, 운동하기, 거울보기, 깔끔 떨기, 미소 짓기 그리고 그것에 대해 스스로 칭찬하기
'하지 마라!'는 단어를 버리고 가능성이라는 단어의 힘을 믿어보자.


핑계의 마음을 버리고 시각적 감각을 자극해보자.

지평선이 드넓게 펼쳐진 넓은 바다, 파랗다는 표현으로는 그 깊이를 가늠하기도 어려움 청명한 하늘, 녹색의 푸르름이 주변을 뒤덮고 수많은 생명체가 곳곳에서 생존을 위해 그 아름다움을 뿜어내는 신선한 수풀, 피부에 따스함을 남기고 새포 하나하나에 노란 생명력을 부여하는 태양, 말랑한 호흡기관을 지나 패속 깊은 곳까지 시원함을 전해주는 바람, 핑계는 많았습니다. 태양에 그을리는 피부색은 촌스럽다고 생각했고 먼 곳을 여행하는 것은 피로감을 증가시키는 행위라고 기피하였으며 그깟 마음을 위해 장시간의 개인 시간을 할애하는 것은 낭비라고 여겼습니다. 자존감을 높일 수 있는 해법은 알고 있었지만 부정적 견해와 성향은 여전했기 때문이죠. 무언가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릅니다. 결과물이 도출되는 무언가가 아니라면 의미는 반감되는 것이라 생각이 나의 사고의 대부분이라 할 수 있는 주도적 부분이더군요. 주변에 너무나도 많이 산적되어있는 행복감들의 의미를 펌해하고 놓치면서 말입니다. 핑계로 점철된 좁혀진 시야에서 벗어나 조금이나마 크게 눈을 떠 보기로 했습니다. 행복은 무언가에 또는 누군가에 의해 주어지는 것은 아닌 것만 같습니다.


사회적 공감능력을 키우자.

저는 서점을 굉장히 좋아하고 서점 속의 아이들을 굉장히 싫어합니다. 원천적으로 배려심이 낮은 것이 이유이기도 하겠지만 질서와 원칙에 대한 강박을 가지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가장 큰 이유는 퍼스널 스페이스( 버스나 지하철에 앉게 되었을 때 자기만의 보이지 않는 영역을 확보하고자 끝자리에 앉는 심리)라고 하는 나의 공간을 침해당하고 방해받고 싶지 않은 심리 때문이겠지요. 아이들은 그 공간을 침범하는 것을 때론 무리하지 않게 생각하거든요. 며칠 전의 일이었습니다. 여전히 새로운 해법을 궁금해하며 심리학 서적을 뒤적거리고 있는데 대여섯 살쯤 되어 보이는 아이 하나가 자신의 키보다 높은 책 서랍의 한 곳에 시선을 고정하여 깨끔발을 새우고 온몸으로 하나의 책을 내려보려 애쓰고 있더군요. ' 아저씨가 도와줄까? 무슨 책이 보고 싶어? ' 그 얘기를 내뱉은 저로써도 자신이 좀 이상했습니다. 위에서 언급한 대로 전 아이들을 좋아하지도 않으며 배려심이 넘치지도 않고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선뜻 손을 내밀 정도로 용기 있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죠. 잠시 머뭇거리며 부끄럽다는 듯 수줍은 표정을 지은 아이는 조심스럽게 ' 저~ 저 위에 파란 책이요.'를 말했고 ' 이거?'라며 몇 권의 책을 손끝으로 가리키다 녀석이 원하는 책을 조심스럽게 꺼내어 건네주었습니다. 잠시 머뭇거리는 아이는 소중한 듯 두 손을 책을 꼭 안으며 ' 고.. 고맙습니다.'라는 말을 건네고 손살같이 다른 곳으로 달려갔습니다. 묘하게 행복한 기분이 들더군요. 그 아이의 귀염성 때문에 그 기분이 더욱 넓어졌는지도 모르지만 만족감이라고 정의하기에는 조금 이상한, 능력 밖의 것이 아닌 별것 아닌 것에 대한 행위가 묘하게 기분의 파동을 가져다주더군요. 굳이 커다란 대의에 의한 행위가 아니라고 한들, 능력의 범위 안에서 받고 건넬 수 있는 소소한 도움과 호의는 제가 생각했던 이상의 감정적 변화를 가져오는 것만 같습니다. 그렇지 못하였기에 부끄럽지만 긍정적인 무언가의 감정을 느껴보기 위해서는 사람을 향한 공감능력은 더욱 키워야만 할 것 같았습니다.


실패할 수도 오류가 발생할 수도 있음을 인정하자, 그리고 용기를 내자.

' 완벽주의 '라는 단어는 꽤나 긍정적인 단어인 듯하지만 심리적 부분에 있어서는 부정적 요인으로 많이 해석되기도 합니다. 실패나 오류를 두려워하여 계획을 다시 수정하고 자주 내용을 보강하고자 노력하며 결과물의 도출할 수 있음에도 그것에 대한 확신보다는 행동과 결과를 미루는 행위를 반복하기 때문입니다. 미술의 회화 부분에 있어서도 초기 작품에 대한 구성과 결과물에 대한 예상과는 달리 반복되는 덧칠과 과한 수정으로 인하여 최초의 의미를 상실하게 되는 과정으로 발전될 수 있기 때문이겠지요. 저에게 있어서는 어쩌면 단어를 통한 도피처가 되어버렸는지도 모릅니다. 편하고 진솔하게 작성하여야겠다는 초기의 의도는 조금씩 사라져 가고 생각했던 심리적 아이디어의 가설을 증명하기 위해 유명 대학 교수의 실험이나 명사들의 행동들을 첨언하여 그 의미를 확대시키고자 하는 추가적 의도에 더 많은 에너지를 낭비하기 때문입니다. 확신이 있다면 그 아이디어를 증명시킬 수 있는 예시를 드는 것도 좋은 방법이겠지만 혹시나 다른 부분들을 배재한 체 또는 또 다른 해법이 없는지를 너무 많이 고민한 체 글을 쓰고자 하는 경향을 보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러한 핑계로 더 많은 글들을 발행하지 못한 체 사장시켜 버리는 경우들도 많이 있고요. 스스로가 만족할 때까지 하나의 주제에 깊이를 더해야만 하는 것만이 진정한 장인의 정신이겠지만 수많은 혁신이 더 많은 수정을 통하여 이뤄내어졌듯 미지의 영역인 평가와 비판을 두려워하지 않은 체 소신을 밝힐 수 있는 용기가 저에게도 필요한 것만 같습니다.


건강식품, 운동하기, 거울보기, 깔끔 떨기, 미소 짓기 그리고 그것에 대해 스스로 칭찬하기

어쩌면 작은 부분일 수도 있습니다. 신체적 결점을 운동으로 보완하고 외모적으로 출중하지는 않지만 하루에 30초 정도 웃는 얼굴을 거울로 바라보며 '이 정도면 괜찮구나!'라는 자기암시를 반복하는 행위 말이죠. 비정기적으로 마음의 고통이라고 할 수 있는 불안과 걱정이 또다시 마음의 한편에 둥지를 틀려고 하면 운동과 스트레칭으로 기분을 전환해 보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비타민이 어떠한 과정을 통해 육체를 활성화시키는지는 정확하게 알지 못하지만 플라시보(위약) 효과가 얼마나 커다란 심리적 영향력을 발휘하는지는 어느 정도 인지하고 있습니다.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정리되지 않는 방안의 상태보다는 정돈되고 안정적인 형태의 구도가 가져오는 심정적 안정에 대하여서도 잘 알고 있습니다. 역시나 문제는 이것을 습관화하여 안정화시키는 실행력을 보이지 못했다는 점이겠지요. 글을 쓰는 많은 사람들처럼 아침형 인간에 반대되는 저녁형 인간을 탈피해보기로 했습니다. 아침형 인간이 다른 부분들에 비해 자긍심이 높아진다는 건 분명한 사실이기 때문이죠. 하루의 일과를 잠시 정리한 후 하나하나 작은 칭찬을 동반시켜보기로 했습니다. 작은 행위가 끝이 나면 시원한 물 한잔을 마신다던지, 작은 초콜릿이나 사탕을 먹는 형식의 직접적 보상도 동반시키면서 말이죠. 단기간에 습관이 들었다고 말씀드릴 수는 없기에 결과를 단언할 수는 없지만 하나가 마무리된 후 스스로에게 보내는 '잘했어!'라는 작은 단어 하나가 왠지 모를 작은 뿌듯함을 전해주는 것은 분명한 듯합니다. 제가 초기에 가졌던 의지를 잃어버리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작은 칭찬이 주는 행복을 여전히 저는 즐겁게 만끽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 마라!'는 단어를 버리고 가능성이라는 단어의 힘을 믿어보자.

그건 글을 써왔던 패턴을 되돌아보면 '해보자! 또는 하자!'라고 하는 긍정적인 동사들보다 '이렇게는 하지 마라, 저렇게는 하지는 마세요.'등의 부정적 행위를 억제하고자 하는 문장들을 제가 많이 사용했더군요. 어렸을 적 하지 말라고 억제시켰던 어른들의 간섭을 정말 싫어했던 아이였음에도 말이죠. 인식의 습관일까요? 인식의 흐름을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긍정의 사고를 덧대어 즐거움과 행복감을 확장시켜가는 방향으로 마음가짐을 가져온 것이 아니라 비판적 사고를 하여 절제하고 억제하며 사고의 흐름이 불분명할 경우 그것을 차용하지 않고 버리는 방식으로 살아왔습니다. 사실 조금은 편하기도 했습니다. 새로운 것에 대한 창의나 행동은 어렵고 비판하여 행동력을 옮기지 않는 것은 다양한 핑계를 대어 실행하지 않고 버릴 수 있는 편한 마음의 상태였기 때문입니다. 비판적 사고는 분명 인생에서 필요한 것이겠지만 분위기를 무겁게 만들고 판단력을 경직되게 하며 사고를 확장시켜가기보다는 축소의 과정으로 마음의 한 부분을 이끌어가더군요. 즐거운 가능성에 대해서도 '하지 마라!'라는 단어를 머릿속에 맴돌게 하며 말이죠. 마음이 항상 즐거움 만으로 가득할 수는 없겠지만 마음 역시 내 것이기에 그간 살아왔던 방식을 잠시 접어두고 가능성이 던져주는 미묘한 설렘을 즐겨보기로 했습니다. 한주에 1000원짜리 복권 한 장이 가져다줄 수 있는 줄 수 있는 설렘을, 앞으로의 삶에서 즐거움을 가져다줄 수 있는 인간관계를 만들 수 있다는 즐거움을, 내일도 즐거운 일이 기다리고 있을 거다는 기대감을, 지금보다도 아주 조금 더 행복해질 수 있다는 가능성의 힘을 믿어보며 말입니다.


비록 돈이나 실질적인 현물이 아닐지언정 행복함을 위한 계획을 세워본다는 것으로도 이번 글을 쓰며 굉장히 즐거워하고 있습니다. 기존의 글들과의 양식이 조금은 다를지언정, 다른 전문가들의 글들처럼 멋진 필력을 자랑하지는 못하지만 개인적으로 이번 글을 굉장히 즐겁게 작성한 것만 같습니다. 한때는 많은 스트레스를 받으며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가졌었거든요. 좋은 재능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이 부러웠고 그들의 재능을 나와 비교하여 질투하였으며 '어떻게 하면 그들처럼 글을 멋지게 쓸 수 있을까!'를 고민하였던 것만 같습니다. 재능 있는 사람들의 방식이 어쩌면 정답에 가까울련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것은 제가 원했던 방식의 글은 아니었던 것만 같네요. 성공했다는 일컫어지는 많은 사람들의 하나의 방식만을 가지고 그것들을 일궈낸 것은 아님이 분명하기 때문이겠지요. 위의 글들은 분명의 저에 대한 방식을 찾아가는 과정일 것입니다. 그리고 저는 그것을 찾아가는 과정이 굉장히 즐거워지고 있습니다. 좋은 영감이 될지는 모르겠으나 글을 읽는 분들께도 나름의 방식과 영감을 찾아가는 계기가 되는 글이 되었으면 합니다. 자연스럽지 않은 문장력과 표현력에 불편함을 드려 죄송하고 더욱 편안한 글이 되도록 정진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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