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경기장에 올라야 할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어쩌면 인생은 수많은 게임의 반복일지도 모릅니다.
경기 자체만을 정석적으로 바라보는 것도 스포츠를 즐기는 재미있는 일이지만 경기의 이면에 숨어 있는 이야기들을 조금은 자세하게 들여다보는 것 또한 경기를 더욱 흥미롭고 풍성하게 바라보며 이해하게 되는 좋은 방법이 되기도 합니다. 인생 또한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경기장에서 승리라는 영광의 순간은 이긴다는 단순함 일 수 있지만 그곳에 올라가기 위한 치열한 과정은 때론 그 기간이 길고 복잡하기 때문이겠지요.
감독을 선택하는 건 선수의 몫이 아니다.
룰이 존재하는 것은 그곳에 반칙이 있기 때문이다.
관객은 야속하지만 마지막 골을 넣을 사람을 더욱 높게 평가한다.
실력이 받쳐주지 않는 정신력은 허상이다.
기억에 각인되는 패자는 오직 최선을 다한 패자일 뿐이다.
감독을 선택하는 건 선수의 몫이 아니다.
선수가 선택할 수 있는 것과 선택할 수 없는 것을 마음속으로 분명하게 구분 지어 놓는 것은 중요한 문제일 것입니다. 누구나가 실력 있고 현명한 리더를 원하지만 선수 선택의 권한은 대부분 감독에 의해 행해지는 고유권한일 확률이 높죠. 선수가 리더를 바꾸는 경우들도 종종 존재하지만 하나의 팀에 주기적으로 리더가 변경되는 것은 좋은 성과를 이뤄내기 어려운 환경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물론 가치와 기준점이 달라 갈등과 반목이 생기는 경우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파괴적 갈등은 팀에 와해를 불러들일 뿐이죠. 분명한 사실은 경기의 또 다른 한축을 맡고 있는 관객은 내부의 갈등이나 외부적 요인에 대하여서는 전혀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는 점이죠. 갈등과 반목을 변화의 수단이나 창조의 양분으로 변혁하여 분위기를 이끌어간다면 팀의 변화를 받아들일 수 있는 좋은 방법이 될 것입니다.
룰이 존재하는 것은 그곳에 반칙이 있기 때문이다.
공정한 게임은 누구나가 바라는 이상적 상황이지만 그것이 어떤 종류의 게임이든 반칙이 존재하지 않는 경우는 없습니다. 축구에서 공격의 흐름을 끊어 놓는 태클이나 바둑에서 상대의 집중력을 흐트러트리게 하는 흡연과 부채질, 야구에서 상대의 기세를 꺾고자 하는 빈볼성 투구들도 분명한 반칙이지만 경기의 내용 중 일부가 되는 경우들이지요. 사전에 반칙의 상황을 인지하지 못하거나 특정 상황에 대한 경험이 부족하다면 반칙으로 인하여 경기의 주도권이 상대에게 넘어가는 경우들도 생깁니다. 인생에 반칙을 권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 때의 충격은 때론 정신적 불안과 혼란을 야기하기도 하죠. 경기중의 다양한 반칙과 수단을 이해하고 있는 것은 돌발의 상황에도 굳건한 정신적 안정을 도모할 수 있는 현명한 방법이 될 것입니다.
관객은 야속하지만 마지막 골을 넣을 사람을 더욱 높게 평가한다.
경기에서 승리의 흐름을 만들어가는 것은 누가 뭐래도 첫 번째의 인상적인 발자국입니다. 그 발자국은 계단을 이끌어가는 힘이 되어주고 희망이라는 감정을 통해 분위기를 만들어가고 고조된 감정 속에서 흐름을 주도해 나아가기 때문이죠. 야속하지만 승자에게만 모든 스포트라이트가 돌아가듯 관객은 때론 마지막 순간의 결정력만을 기억하기도 합니다. 인생에서 과정을 분명 중요한 것입니다. 즐거운 과정은 경기를 흥미롭게 만들고 인생을 풍요롭게 만들어주며 경기 자체에 대한 열정을 불러오기도 하죠. 많은 사람들의 감정은 부자를 동경하지, 부자였던 사람을 동경하지는 않죠. 과정을 풍요롭게 만들어가는 것은 분명 중요한 것이지만 오직 성실한 과정만을 바라보다가 막판의 스퍼트에서 과정의 흐름을 역전당하는 드라마틱한 경기들은 너무나도 많습니다. 많은 문제에 있어서도 과정의 성실함을 위해 꾸준한 준비의 과정을 그릇에 담아 두는 것은 분명 중요한 일이지만 그 그릇의 한편에 결과에 대한 염두와 전략을 세워 놓는 것은 다음 경기를 위한 보증수표로써 충분한 역할을 해낼 것입니다.
실력이 받쳐주지 않는 정신력은 허상이다.
물론 모든 경기에서의 정신력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경기장 안에서 수많은 변수들이 발생하는 것은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일이겠지만 아마추어의 경기력이 프로를 이길 수 있는 확률은 그리 높지 않죠. 정신력으로 커버할 수 있는 경기력이라는 것은 분명 한계가 있습니다. 인생에서도 특정한 경기장이라는 박스 위에 오르는 것은 분명 실력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겠지요. 스스로에게 있어서도 강인한 정신력을 앞세우는 것 이전에 단단하고 튼튼한 실력을 밑바탕에 깔아 놓아두는 것은 자부심과 자만심, 여유로움을 경기장에 들고 갈 수 있는 가장 풍성한 정신력의 기반이 되기도 하죠. 비슷한 경기력의 실력을 가지고 있다면 정신력은 실력의 우위를 점하는 강력한 무기가 되기도 하지만 그 근간이 되는 것은 언제나 실력이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기억에 각인되는 패자는 오직 최선을 다한 패자일 뿐이다.
어니스트 섀클턴은 남극점을 찍지 못한 실패한 탐험가이죠. 하지만 그의 이름 앞에 붙어 있는 수식어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실패자'라는 수식입니다. 그의 평가에는 남극점을 찍지 못한 실패에 방점이 닿아 있는 것이 아닌 식량, 장비, 극한의 상황 등 모든 것이 생존에 불가능한 상황에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자신을 포함한 탐험대원 전원을 무사 귀한시켰기에 붙여진 수식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패자이지만 특별한 패배자들을 기억하는 이유는 모든 조건이 경기장에 갖춰져 있는 것이 아님에도 자신의 역량과 한계를 그곳에 내던지는 사람들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물론 관객에게 꼭 기억되어져야만 하는 경기는 없습니다. 하지만 관객의 입장으로 스스로를 바라보았을 때 '후회'라는 단어를 가슴에 남기지 않을 유일한 방법은 그 상황과 경기장에 모든 것을 쏟아 붙는 '최선'이라는 단어 속의 행동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