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라 챠오(Bella Ciao)
제2차 세계대전에 대해 일반인들이 흔히 알고 있는 사실 중의 한 가지는 유럽에서 이탈리아와 독일은 한 편에서 서서 싸웠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것이 틀린 말은 아니지만 2차 대전 내내 그랬던 것은 아닙니다. 1940년 6월에 독일 편에 서서 2차 대전에 참전했던 이탈리아는 1943년 9월이 오면 연합군과 휴전 협정을 맺습니다. 당시 연합군은 이탈리아 남부의 시실리 섬을 점령하고 이제 막 이탈리아 본토에 발을 들여놓기 시작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리고 아직 이탈리아의 수도인 로마에는 도달하지 못한 상황이었지요.
그런데 전장에서 독일군들과 나란히 서서 싸우고 있던 이탈리아 군대에게는 전혀 알리지 않은 채 이탈리아 정부는 휴전을 선언하였습니다. 아울러 국왕을 비롯한 고위 인사들은 휴전을 선언함과 동시에 로마를 몰래 빠져나가 연합군이 있는 남부 이탈리아로 탈출합니다.
정부는 휴전을 선언했지만 당시 이탈리아 반도에는 많은 독일군들이 주둔하고 있었으므로 연합군이 아직 진주하지 않은 이탈리아의 지역들은 졸지에 독일군의 점령지가 되고 말았습니다. 어제까지는 동맹군이었지만 하루아침에 점령군이 된 것이지요. 또한 이탈리아 밖에서 독일군들과 같이 주둔하고 있던 이탈리아군은 졸지에 독일군의 포로가 되고 무장을 해제당하는 수모를 겪습니다.
그중에는 무장 해제를 거부하고 독일군들과 전투를 벌이고 포로가 되었다가 학살된 군인들도 있었지요. 그런 역사적인 사실을 배경으로 한 작품이 루이 디 베르니니르(Louis De Bernieres)의 소설 "캡틴 코렐리의 만돌린"이었고 그 작품은 다시 니콜라스 케이지가 나오는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했습니다. 영화 자체는 그리 좋은 평을 받지는 못했지만 그리스 케팔로니아 섬의 아름다운 풍경을 만끽할 수 있는 영화였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xjjGrxipPGQ
이렇게 하루아침에 독일군들과 적이 된 상황에서 이탈리아 중북부를 중심으로 본격적인 저항 운동이 시작되었습니다. 그 후 1945년 4월까지 30만 명 이상의 이탈리아인들이 독일군과 남은 파시스트들에 대항해 치열한 전투를 벌입니다. 파시스트와 독일군이라는 공동의 적을 두고 좌, 우익이 모두 모여 저항 활동을 하다 보니 내부적으로 충돌이 있기도 했습니다만 결국 독일군이 물러나고 이탈리아는 해방이 됩니다. 그래서 나중에 1948년 이탈리아 공화국이 정식으로 시작되면서 헌법에는 이러한 저항 활동의 결과를 인정하기도 했습니다.
이와 같은 이탈리아의 레지스탕스 활동을 통해 나중에 전 세계에 널리 알려지게 되는 노래가 한 곡 탄생합니다. 사실 오늘 이탈리아 현대사를 길게 이야기 이유는 비로 이 노래를 소개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말로 번역을 하자면 '안녕, 이쁜이(혹은 내 사랑)." 정도가 될까요. "Bella, Ciao(벨라, 차오)라는 이 노래는 당시 저항 운동에 참여했던 게릴라 부대(파르티자노, partigiano, 빨치산)들이 부른 노래라고 알려지면서 1950년대 후반부터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는데 한번 들으면 쉽게 잊히지 않는 간단한 멜로디와 누구나 따라 할 수 있는 후렴구가 이 노래의 매력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원래의 가사는 이러합니다.
Ciao Bella
Una mattina, mi son svegliato, o bella ciao bella ciao bella ciao ciao ciao
Una mattina mi son svegliato e ho trovato l'invasor
어느 날 아침 눈을 떴어. 안녕 이쁜이. ~~~
어느 날 아침 눈을 떴어 그리고 침략자들을 발견했어.
O partigiano portami via, o bella ciao bella ciao bella ciao ciao ciao
O partigiano portami via ché mi sento di morir
오. 빨치산들이여 나도 데려가주오. 안녕 이쁜이. ~~~
오. 빨치산들이여 나도 데려가주오. 이대로는 죽어버릴 것 같소.
E se io muoio da partigiano, o bella ciao bella ciao bella ciao ciao ciao
e se muoio da partigiano, tu mi devi seppellir
그리고 만일 내가 빨치산으로 죽으면, 안녕 이쁜이. ~~~
그리고 만일 내가 빨치산으로 죽으면, 당신이 나를 묻어주어야 해.
E seppellire lassù in montagna, o bella ciao bella ciao bella ciao ciao ciao
e seppellire lassù in montagna, sotto l'ombra di un bel fior
저 산 위에 나를 묻어줘. 안녕 이쁜이. ~~~
저 산 위에 나를 묻어줘, 한 송이 아름다운 꽃그늘 아래에.
E le genti che passeranno, o bella ciao bella ciao bella ciao ciao ciao
e le genti che passeranno mi diranno che bel fior
그리고 그곳을 지나는 사람들은, 안녕 이쁜이. ~~~
그리고 그곳을 지나는 사람들은, 나에게 한 송이 아름다운 꽃이라 말하겠지.
È questo il fiore del partigiano, o bella ciao bella ciao bella ciao ciao ciao
è questo il fiore del partigiano morto per la libertà
이것은 빨치산의 꽃이라고. 녕 이쁜이. ~~~
이것은 자유를 위해 죽은 빨치산의 꽃이라고 하겠지.
이 노래의 기원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흥미로운 이야기가 있습니다. 가사를 만든 사람은 저항 활동에 참여했던 의사라고도 전해지는데 정확하지는 않고 그 멜로디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 설이 있습니다. 최근에는 20세기 초반 미국에서 녹음된 유태인 전통 음악 악단의 음반에 벨라 차오의 모티브가 되는 음악이 실려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보면 이 멜로디의 역사는 2차 대전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지요. 그리고 가사에 대해서도 게릴라들의 이야기가 그 시작이 아니라 2차 대전 전 이탈리아 북부 포강 유역의 농촌에서 일하던 여성 노동자들의 삶을 담은 가사가 그 시작이라는 이야기도 전해집니다.
이 노래가 처음 사람들에게 소개되기 시작한 1950년대 말에는 게릴라들이 부르던 노래라고 알려졌는데 실제 당시 게릴라 활동을 했던 이들 사이에서 자신들은 그 노래를 부르지 않았을 뿐 만 아니라 들어보지도 못 했다는 이야기가 나중에 나왔습니다. 이 노래를 불렀다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실제 이탈리아 게릴라 운동가들이 더 많이 불렀던 노래는 러시아의 민요인 카츄샤(Katyusha)에 이탈리아어 가사를 붙여서 부른 "바람은 불어도(Fischia il Vento)"라는 노래였다고 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yUkfADn5u-I
그런데 이 노래의 가사를 보면 "붉은 봄"과 "붉은 깃발" 등 파시스트에 저항했던 좌익, 특히 공산당의 영향이 강하게 느껴집니다. 실제 이탈리아 공산당은 서유럽에서 가장 강력한 공산당 조직이었습니다. 일찌감치 불법화되었고 전쟁까지 치렀던 한국과 달리 이탈리아 공산당은 제도권 정당의 하나로 1990년대까지 정치권에서 그 명맥을 유지했습니다. 1948년 이탈리아가 공화국으로 탄생했을 때 공산당도 선거에 참여했지만 정권을 얻지는 못하고 강력한 야당으로 존재했습니다.
그래서 당시 탄생한 중도 좌파 정부의 아래에서 러시아의 영향이 강하게 남은 "붉은" 게릴라의 노래보다는 침략군과 파르티자노(게릴라)들의 이야기를 담은 벨라 차오가 정치적으로는 훨씬 더 중립에 있는 것으로 느껴졌고 결국 이 노래가 게릴라들을 대표하는 노래로 소개되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기원에 관계없이 이 노래는 60년대 유럽 전체를 휩쓸었던 젊은이들의 저항 운동을 통해 전 세계에 알려집니다. 그리고 공산권 국가들을 중심으로 '세계청년학생축전"에 참가한 이탈리아 공산당의 젊은 당원들이 이 노래를 부르면서 공산권을 중심으로 더욱더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영어는 물론이고 러시아어 중국어로도 불리고 그런 과정에서 가사가 지역에 따라 달라지기도 했습니다. 초기에 이 노래를 녹음하여 매체를 통해 알린 사람 중에는 이탈리아 출신으로 프랑스에서 활동한 가수 겸 배우 이브 몽탕(Yves Montand) 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mv3iY4v9EOc
슬프고 비장한 듯한 멜로디이지만 천천히 불릴 때와 빠르게 불릴 때 그 느낌이 모두 다릅니다. 아래에는 2008년 경에 이 노래를 다시 녹음하여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이탈리아 포크 락 그룹인 "모데나 시티 램블러즈(Modena City Ramblers)"가 라이브로 부르는 벨라 차오입니다. 노래에 이용된 악기와 리듬이 마치 아일랜드의 민요를 부르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dtBEdSpD6as
그리고 아래에는 6.70년대 한국에서도 많은 사랑을 받았던 이탈리아의 가수 밀바(Milva)가 부른 벨라 차오를 옮겨봅니다. 특히 밀바의 노래는 빨치산의 이야기가 아니라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노래로 이 노래의 원래 가사였다고 이야기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gpKLSyYAE-w
이 노래는 저항 운동의 상징적인 노래로 전 세계에서 불렸는데 최근에는 넷플릭스 시리즈 "종이의 집(La Casa de Papel)"에서 이 노래가 나오면 사람들의 관심을 더 많이 받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 작품을 관통하는 '저항'의 의식이 이 노래가 상징하고 있는 것과 연결이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한국에서 김민기 님의 "늙은 군인의 노래"가 "늙은 투사의 노래"가 되고 또 "늙은 노동자의 노래"로 바뀌는 것처럼 이 노래는 이제 전 세계의 여러 곳에서 다른 가사를 가지고 불리고 있습니다. 그중에는 농민들의 저항 운동을 다루는 펀잡어 버전이 있는데 그 가사는 원곡과 완전히 다릅니다. 하지만 자세히 들어 보시면 이 노래의 상징적인 가사라 할 수 있는 벨라 차오 중에서 "차오"에 해당되는 부분을 이것과 비슷한 소리가 나오는 펀잡어로 대치하여 원곡의 느낌을 살리면서도 의미가 연결이 되는 펀잡어 가사를 만들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yOH7BDvOzxY
그리고 이처럼 비슷한 소리가 나는 자국어의 단어를 이용한 가사는 팔레스타인의 저항을 이야기하는 아랍어 버전에서도 그대로 적용이 되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BX-OBBnqxBw
저항과 시위의 현장에서 참여한 사람들의 의사를 표현하고 그들을 하나로 모아주는데 노래만큼 더 큰 힘을 가진 것도 드물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래서 벨라 차오 같은 노래들은 합장으로 여러 사람이 부를 때 전율이 느껴질 정도로 비장하게 그리고 때로는 참여한 이들의 흥과 열정을 끓어오르게 만들어 줍니다. 칠레의 시위에서 연주되는 이 노래와 여기에 참여하는 시위대의 모습이 그 예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XVQ5oSrt3go
이 노래가 불렸던 그리고 아직도 불리는 저항의 현장들을 보면서 왜 한국에서는 7,80년대에 이 노래가 불려지지 않았는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어쩌면 불려졌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우리에게는 이 노래가 아니었더라도 사람들을 하나로 모아 주는 노래들이 많이 있었지요.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이 노래가 북의 동포들 사이에서도 "빨치산 처녀"의 노래로 불렸다는 점이, 물론 그때는 몰랐겠지만, 혹시라도 영향을 미치지는 않았나 하는 근거 없는 상상도 해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BS47q_cz67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