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웠다. 정말 정말 정말 추웠다.
평창 올림픽의 개회를 한 달 여 앞둔 1월 12일. 필자는 성화 봉송 취재를 위해 인천을 찾았다. 그날의 성화 봉송 주자로 일본의 원조 피겨스케이팅 간판스타 아라카와 시즈카 선수와 다카하시 다이스케 선수, 스즈키 다이치 일본 스포츠청 장관까지 3명의 일본인이 예정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일본 국내에서도 크게 이슈가 된 건이라 한겨울 추위에도 불구하고 이른 아침부터 야외 취재를 준비했다.
성화 봉송이라는 게 말 그대로 횃불을 들고 달리는 것이 전부였기 때문에 행사 자체는 단순했고 순식간에 끝났다. 필자를 포함한 취재진은 주자보다 몇 걸음 앞서 뒷걸음으로 달리며 주자 사진을 찍고, 다음 주자에게 성화를 전달하는 30초 남짓 여유 시간에 소감 코멘트를 따고, 또 쫓아가 달리며 사진 찍고 또 코멘트를 따고의 반복이었다. 주자마다 2분 정도로 정해진 시간 안에 다음 주자까지의 구간을 빠른 속도로 달려야 했기에 1월의 인천 고가도로 한복판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땀이 날 정도였다. 겨울바람을 가르는 술래잡기였다.
해가 뜨기 전부터 서울을 출발해 몇 시간이고 준비했던 취재가 10분 남짓의 초고속 행사로 끝났을 때 느낀 허무함이란... 그럼에도 이날 필자가 취재한 사진과 코멘트는 소속사 웹사이트의 메인 기사로 등록되어 한겨울의 우당탕탕 소동이 나름대로 보람찬 성과로 돌아왔다.
강원도의 추위는 장난이 아니다. 얕봐서는 안 된다. 한 달이 넘는 장기 출장으로 깨우친 진리다.
필자는 평창 올림픽 개회 열흘 전 메인프레스센터(MPC) 내 소속사 부스의 시설 정비와 취재 준비를 위해 일찌감치 평창 생활을 시작했다. 전년도에 진행된 프레스투어 당시에는 아직 공사가 한창이었던 진부역과 메인 스타디움, 미디어센터 등 기본적인 공사는 모두 끝나 있었다. 이제 남은 것은 추위와의 싸움, 취재 전쟁뿐이었다.
출장 첫날 이른 아침 숙소를 떠나며 확인한 온도계는 -22.9도를 가리키고 있었다. 군 복무 이후 처음 느껴본 영하 20도 추위는 들숨에 콧구멍이 얼어버릴 정도로 강력했다. 숙소와 MPC는 30분 간격의 셔틀버스로 연결돼 있었는데 앞차를 놓치면 선채로 얼어 죽어야 했다. 그야말로 매일매일 지옥과도 같은 출근길이었다.
그 와중에 눈이라고는 본 적도 없는 따뜻한 일본 도쿄 본사의 여러분들은 강원도 추위를 얕봐도 한참 얕보고 있었다. 이들은 그 흔한 핫팩 조차 준비해오지 않았다. 거듭되는 혹독한 강원도 추위에 벌벌 떨며 며칠을 고생하더니 "혹시 성능 좋은 핫팩 아느냐"라며 SOS를 쳤고, 필자가 군대에서 사용했던 '마이 핫 보온대'를 몇 박스 주문해주었더니 하루 종일 따뜻하다며 '군납품'의 성능에 혀를 내둘렀다. 포장지에 그려진 군인 캐릭터의 미소가 너무나도 든든했다.
추위를 논하자니 개회식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개회식 당일이 가장 추웠던 것 같다. 심리적 추위 말이다. 두어 시간 남짓인데 뭐가 그리 춥다고 호들갑이냐 할 수 있겠지만 실상은 달랐다. "오늘 저녁 개회식이 진행된다"라는 석간 기사를 내기 위해서는 아침 일찍부터 야외 취재를 해야 한다. 개회식장 주변의 분위기부터 관광객은 얼마나 모여있는지, 리허설 등 준비 상황은 어떠한지, 조직위원회 관계자를 비롯해 개회식장을 찾아준 관광객들의 목소리를 하나하나 수집하며 유의미한 취재 기록을 남겨야 했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개회식 시작 전에 지정된 자리를 확보해 노트북과 카메라를 설치해두고, 개회식 중에는 어느 동선에서 누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국가별 선수단의 표정은 어떠한지, 지금 펼쳐지는 퍼포먼스에는 어떤 의미가 있는지, 관객들은 무어라 외치고 있는지, 사전 배포 자료와 현장의 실제 상황을 비교하며 하나도 놓치지 않고 글로써 그림을 그려야 한다. 만에 하나 발생할 수 있는 돌발상황도 염두에 두어야 했다. 아무리 핫팩을 이곳저곳 붙이고 털모자에 담요까지 둘렀다고 한들 한겨울의 칼바람을 맞으며 손가락을 놀린다는 게 마음처럼 쉽지 않았다. 노트북도 강원도 추위에 화들짝 놀랐는지 온도 경보 메시지가 수시로 뜨고 꺼졌다 켜졌다 보통 난리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일생 다시는 없을지도 모를 한국에서 열린 동계 올림픽의 개회식을 내 눈으로 직접 볼 수 있었다는 사실은 여전히 영광스럽다. 개회식장에 입장하며 환희에 가득 찬 얼굴로 결의를 다지던 선수단의 모습에서 뜨거운 열정을 느낄 수 있었으며, 심혈을 기울여 준비한 퍼포먼스와 스토리텔링, 화려한 드론 쇼와 폭죽 쇼는 황홀하기 그지없었다. 그리고 올림픽 내내 컬트적 인기를 누렸던 논란의 '인면조'를 마주했을 때의 충격까지. 인면조가 날개를 흔들며 개회식장을 누비자 눈을 의심하며 웅성거리던 외신기자들의 모습은 영원히 잊지 못할 것 같다. 한국인인 필자도 그 기괴한 모습을 어떻게 받아들이면 좋을지 감조차 오지 않았는데 외국인의 눈에는 오죽했을까. 그날 밤 악몽이나 꾸지 않았으면 다행이다.
한편으로 가짜 트럼프와 가짜 김정은이 허가 없이 취재구역에 난입하는 일도 있었다. 몰려든 기자들 앞에서 너스레를 떨던 그들은 얼마 버티지 못하고 곧장 쫓겨났는데, 결국에는 개회식장 밖에서 관광객들과 사진을 찍으며 유명세를 누리고 있었다. 필자 또한 개회식이 끝나고 철수하던 중에 그들과 같이 사진을 한 장 찍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모두들 트럼프와 김정은이 나란히 걷는 모습을 보고 우스꽝스럽다 웃어넘겼는데... 그게 현실이 될 줄은 아무도 몰랐을 것이다.
*이 글은 필자 개인의 생각이며 소속사 및 특정 집단과 관계가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