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 그리고 평화 ④

그렇게 끝이 난다

by 김코알라

올림픽 등 세계적인 스포츠 대회 취재에는 특별한 풍습이 있다. 그것은 바로 기자 간에 소속사 배지를 교환하는 것이다. 세계 규모의 대회에는 그에 걸맞게 전 세계의 언론사 기자들이 수 천명 씩 모여드는데, 서로 대화를 트는 수단으로 소속사 배지 교환을 이용하곤 한다. 처음 만나는 사람들끼리 우글우글 모여 있는 가운데 어색함을 깨고 첫마디를 던지기에 이보다 더 적절한 수단이 있을까?

기자들은 취재 기간 내내 'AD 카드'라 불리는 일종의 출입증을 목에 걸고 다니는데, 목 끈이 적당히 넓어 작은 배지를 달기에 아주 안성맞춤이다. AD 카드에 배지를 주렁주렁 달고 다니는 것은 내가 얼마나 많은 사람과 대화를 나누며 활발하게 교류했는지를 보여주는 일종의 '인싸' 보증수표와 같다.

희귀한 배지를 찾아 나서고 중복되는 배지를 또 다른 배지로 교환하는 모습이 마치 어린 시절 '포켓몬 딱지'를 모으는 것과 같았다.


20180210_211324.jpg 「2018년 2월 10일 오후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의 첫 경기가 한창이다」


필자는 평창 올림픽 기간 중 여자 아이스하키 경기를 주로 취재했다. 올림픽 사상 최초로 결성된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은 한반도 평화의 상징으로 여겨졌으며, 그 첫 경기를 문재인 대통령 내외와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여동생인 김여정 씨, 김영남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등이 직접 관람하는 등 세계적으로 큰 주목을 모았다.

한편으로 남북 단일팀 구성이 남측 선수들의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했다거나, 스포츠를 정치 슬로건에 이용했다거나, 남북 선수 간의 기량 차이 문제 등 따가운 질책을 피할 수 없었다. 4년간 올림픽만을 바라보고 피 땀 흘려 노력해온 한국 선수들의 엔트리를 박탈해 북한 선수단에게 할애하는 결정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이었으며, 옳은 선택이었을까? 작은 의문이 남는다.


당시 경기 자체는 본사 스포츠부에서 담당했기에 필자는 경기장의 전체적인 분위기와 관중이 무어라 소리치고 있는지를 중점적으로 살폈으며, 경기 종류 후 '믹스드 존'에서 선수들이 어떤 발언을 하는지를 취재했다. 아이스하키 관람은 난생처음이었고 룰조차 몰랐지만 굉장히 재미있었다. 선수들이 빙판 위에서 재빠르게 움직이며 거친 몸싸움까지 불사하고 몸을 내던지는 모습에 따라가기에도 눈이 어지러울 정도의 속도감과 박진감을 느낄 수 있었다. 남북 단일팀이 첫 골을 기록하는 순간 경기장이 무너질 듯 터져 나온 관중의 함성은 아직도 잊지 못한다.


대회 전의 논란과 아쉬운 경기 결과는 묻어두도록 하자. 매 경기 후 믹스드 존과 프레스룸에서 마주했던 남북한의 젊은 선수들의 상기된 얼굴에서 엿볼 수 있었던 그들의 열정과 지난날의 노력에 박수를 보낸다.


「2018년 2월 25일 값진 은메달을 거머쥔 여자 컬링 국가대표팀 선수들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평창 올림픽은 뜻밖의 스타를 낳았다. 바로 '안경 선배'와 '영미!'로 대표되는 여자 컬링팀이다. 그동안 비인기 종목으로 크게 주목받지 못하였으나, 한국 대표팀 주장 김은정 선수의 "영미! 영미!"라는 특유의 외침이 인터넷에서 큰 화제로 떠올라 단숨에 전 국민의 주목을 한 몸에 받게 됐다.


당시 일본에서도 후지사와 사츠키 선수를 비롯해 여자 컬링의 인기가 솟구치고 있었고, 준결승전에서 펼쳐진 '한일전'에 양국의 기대가 모아지고 있었다. 필자 또한 한일전 현장에 있었는데, 경기 내내 목이 터져라 "영미! 영미!'를 외치던 김은정 선수의 열정에 감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일전인 만큼 응원단의 열기 또한 대단했고, 결승 진출을 확정 짓는 순간 서로를 얼싸안고 기뻐하던 한국 대표팀과 관중의 모습에 괜스레 가슴이 뜨거웠다.


이번에는 북한 이야기를 해보자.2월 8일 오전 11시 자신들만의 울타리에 꼭꼭 숨어있던 자들이 세상 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평창 동계 올림픽 개회를 하루 앞두고 북한 대표팀 선수단의 선수촌 입촌식이 열렸다. 필자를 포함해 전 세계 언론들은 입촌식을 취재하기 위해 이른 아침부터 구름같이 몰려들었다. 의장대의 연주에 맞춰 붉은색 롱 패딩을 맞춰 입고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북한 선수단의 모습을 보고 있으니 익숙한 듯 어딘가 이질적인 오묘한 기분이 들었다.


「강릉 올림픽 선수촌 입촌식을 위해 대기 중인 북한 선수단과 '미녀' 응원단」


그날의 주인공은 비단 북한 선수단뿐만 아니었다. 이른바 북한의 '미녀' 응원단 또한 주목을 받았다. 붉은 제복을 맞춰 입은 응원단은 경쾌한 음악을 연주하며 흥을 돋우었으며 때때로는 작게 율동을 섞기도 했다.

현장에 있던 북한 매체(아마도 조선중앙텔레비죤이었으리라) 기자에게 '지금 연주하는 곡이 무엇이냐'라고 물으니 "무도회에서 자주 연주하는 아주 유명한 곡이다"라고 설명해 주었다. 곡의 이름도 말해줬는데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응원단의 흥겨운 연주 덕분인지 북한 기자는 필자를 크게 경계하지 않았고 편안하게 몇 마디 주고받을 수 있었다. 맛깔나는 사투리를 섞어 말하는 모습이 영락없이 동네 아저씨였다.


여담이지만, 북한 기자들은 하나 같이 스포츠 스타일로 깎아 올린 머리에 군밤 색 패딩 점퍼를 입고 있었다. 점퍼에는 은방울(?)이라는 자수가 놓여 있었는데 북한 브랜드 중 하나일 것이라 생각한다.


북한 응원단의 모습은 여러 경기장에서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말이 응원단이지, 딱히 무어라 정의하기 힘든, 그저 지도자의 구령에 맞춰 정해진 함성을 내지르는 '기계'와 같은 느낌을 받았다. 아이스하키 경기장 관중석 한편에 빼곡히 자리한 북한 응원단은 지도자로 보이는 여성의 지휘에 맞춰 "힘내라!", "우리는 하나다!", "와아아!" 등 몇몇 패턴의 구호만을 외치고 있었다. TV 뉴스에서나 보던 북한 특유의 매스 게임, 집단 체조를 보는 기분이었다.

「북한 '미녀 응원단'이 한반도기를 손에 들고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을 응원하고 있다」

한편으로, 남북 공동응원단을 구성하려 했던 한국의 '6.15 공동선언 실천 남측위원회' 회원들이 힘차게 한반도기를 흔들며 북한 응원단의 경직된 구호에 호응하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매 경기, 매 시간, 몇 번이고 서로 구호를 주고받는, 멀지만 가까운 교류의 현장이었다.


북한계 재일교포 집단인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의 회원들 또한 응원을 위해 경기장을 방문했다. 필자는 일본 오사카에서 단체로 평창을 방문했다는 A 씨의 코멘트를 따기 위해 몇 마디 나눌 수 있었는데, 한국인도 아니고 일본인도 아니고 북한 사람도 아닌, 정체성을 정의할 수 없는 느낌을 받았다. 능숙한 일본어 사이로 드문드문 섞여 나오는 북한 말씨가 익숙한 듯 우리말과 달랐다.


A 씨와의 인터뷰를 마치고 자리로 돌아가려 하는데, 검은 점퍼 차림의 한 남성이 앞길을 막아섰다. 큰 키에 평범한 얼굴을 하고 있었는데 낮고 조용한 목소리로 다짜고짜 "무슨 대화를 나누었느냐"라고 물었다. 누구냐 되물으니 되려 "어디 소속의 누구이며, 왜 저 사람과 대화를 했느냐"라며 몰아세웠다. 필자는 AD 카드를 내밀며, 외신기자이고 조총련 재일교포 취재를 위해 몇 마디 나누었을 뿐이다, 취재하는 것도 문제냐, 필요하면 메모장과 음성 녹음을 다 들어보라며 따졌다. 그들은 그제야 본인들이 '경찰'임을 밝혔고 필자의 신분증과 기자증을 확인한 뒤 자리로 돌려보냈다. 간첩이라 의심받은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 크지 않은 경기장 안에, 같은 지붕 아래, 한국 북한 일본의 시민들과 선수단이 함께하며 스포츠로 하나 되는 가운데에서도 대공 안보는 철저하게 지켜지고 있었다, 라고 해야 좋을까.


이렇듯 평창 올림픽을 취재하는 한 달간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다. 더 쓰고 싶은 이야기가 많고 작고 소중한 에피소드가 한가득 남아있지만 분량을 생각하여 이 정도로 끝맺고자 한다.


한 달간 추가 근무만 162시간, 체중 7kg 감소, 한 없이 새카매진 다크서클... 필자에게 있어 평창 올림픽이란, 매일 아침을 08시 'IOC정례브리핑'으로 시작하여 경기 취재, 인터뷰, 번역, 본사 백업 등을 거쳐 심야 셔틀버스로 숙소로 돌아가는, 틈만 나면 앉아서 졸았던 고통과 인내의 시간이었다. 밥 먹을 시간 조차 제대로 확보하기 어려워 MPC에서 제공하는 공짜 컵라면과 쿠키, 커피로 근근이 하루를 버텨냈다.

「'모루겟소요'로 알려진 김지현 작가의 '총알맨들'」

그럼에도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환희와 열정의 현장을 함께 할 수 있었던 영광의 시간이었다. 북한 사람과 대화를 나누어 봤다. 북한 '미녀 응원단'을 눈 앞에서 보았다. '인면조'가 실제로 보면 얼마나 기괴한지 아는가? 알펜시아 리조트의 '모루겟소요'를 도대체 무어라 설명하면 좋을지 그 곤란함을 아는가? 생전 처음 보는 외국인 기자들과 아침부터 밤까지 부대끼며 어쭙잖은 외국어 실력으로 농담을 주고받고, 배가 찢어져라 웃고, 때로는 몰래 맥주 한 캔 마시며 늘어지기도 하고... 평생의 안주 거리는 다 챙겼으리라.


20180225_220300.jpg 「'2018 평창 동계 올림픽'은 2018년 2월 25일 폐회식을 끝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2018년 새해를 장식한 인류 모두의 축제. 문재인 정부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의 공식적인 첫 발자국. 남북을 넘어 동북아 나아가 전 세계의 정치 판세를 뒤흔든 역사적 사건. '2018 평창 동계 올림픽'은 필자에게, 동료 기자들에게, 전 세계 시민들에게, 그렇게 기억될 것이다.


*이 글은 필자 개인의 생각이며 소속사 및 특정 집단과 관계가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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