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6월 12일, 전 세계의 눈이 아시아의 작은 도시 국가 싱가포르에 집중됐다. 자유진영의 리더이자 세계의 경찰을 자처하는 미국의 대통령과 '3대 세습 왕조' 북한의 최고지도자가 역사상 처음으로 마주 앉은 날이었다.
조금 시계를 돌려 앞선 3월 초,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김정은 국무위원장과의 면담 등 방북 성과를 공유하기 위해 워싱턴을 찾았다. 이날 정 실장은 백악관 앞마당에서 가진 브리핑에서 미북정상회담의 개최를 발표했다. 이후 곧장 열린 북중정상회담과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의 방북 그리고 '2018 판문점 남북정상회담'의 성공적 개최 등 호재가 잇따르며 미북정상회담을 분위기 조성은 순조롭게 진행됐다.
물론 실무 협상 간에 북한의 비핵화 수준을 둘러싸고 'CVID냐 PVID냐'하는 신경전이 오갔고, 미국이 일방적으로 '이란 핵협정'을 탈퇴하며 비핵화를 담보하지 않는 합의는 헛수고라는 간접적 경고 메시지를 발신하는 등 싸늘한 국면 또한 있었다. 그러나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2차 방북과 납북 미국인 전원 석방 등 가시적인 성과들이 쌓이며 미북정상회담의 개최를 향한 기대감은 부풀어갔다.
그렇게 협상이 한창이던 5월 중순, 트럼프 대통령은 개인 트위터에 "김정은과의 회담이 6월 12일 싱가포르에서 열릴 것"이라고 밝혔다. 여태껏 수많은 정상회담을 보아왔지만, 대통령 본인이 트위터를 통해 정상회담 일정을 발표하는 모습은 난생처음 봤다. 그의 트위터 사랑을 다시금 느끼게 하는 대목이었다.
「미북정상회담의 날짜와 장소를 공개한 트럼프 대통령의 트위터 메시지」=웹사이트 갈무리=
줄곧 훈훈했던 분위기에 별안간 찬물을 끼얹은 것은 북한이었다. 회담을 보름 앞둔 5월 말, 북한 외무성의 최선희 미국 담당 부상이 담화를 발표했다. 최 부상은 담화에서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의 언론 인터뷰 당시 발언을 문제 삼으며 "북조선에 대한 군사적 선택 안은 배제된 적이 없다느니(...) 횡설수설하며 주제넘게 놀아댔다"라고 맹비난했다. 그는 코앞으로 다가온 미북정상회담에 대해서도 "재고려할 데 대한 문제를 최고지도부에 제기할 것"이라 말하며 파기 가능성을 시사했다. 주도권을 빼앗길 것 같으면 선제적으로 판을 엎어버리는 늘 보아왔던 익숙한 수법이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북한이 담화를 발표한 지 하루도 채 지나지 않아 김정은 국무위원장과의 만남이 "부적절하다"라며 김 위원장에게 보낸 서한을 공개했다. 취소 이유로 앞서 발표한 최 부상의 담화가 '엄청난 분노와 적개심'에 근거해 있기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아울러 최 부상이 '핵 대 핵 대결장'을 언급한 것에 자존심이 상했는지 "우리의 핵 능력이 더 크고 강력하다. 그것들이 사용되지 않기를 기도한다"라고 덧붙였다. 애초에 주도권은 미국이 쥐고 있으니 괜히 취소니 핵이니 헛소리 하며 까불지 말라는 뜻으로 해석됐다. 트럼프 대통령 본인이 공들여 준비한 이벤트를 걸고 배짱을 부리는 북한에 대한 따끔한 회초리였다.
미국의 강경한 태도에 화들짝 놀란 북한은 기민하게 반응했다. 즉시 김계관 북한 외무성 제1부상 명의의 담화를 발표해 "우리는 아무 때나 어떤 방식으로든 마주 앉아 문제를 풀어나갈 용의가 있다"라며 하루 만에 스스로의 입장을 뒤집은 것이다. 대화 테이블을 걷어차고 적당히 겁박하면 스스로 납작 엎드리던 한국 정부와는 다르게 미국 특히 트럼프 대통령에게는 협박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제대로 학습한 모양이었다. 북한과 교섭할 때에는 미국처럼 강경한 자세로 밀고 나가야 한다는 것과 누구든 결국엔 더욱 절실한 쪽이 숙이고 들어간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북한의 발 빠른 대처와 트럼프 대통령의 긍정적인 반응으로 상황은 일단락되었으나 남북의 지도자의 불안감은 좀처럼 사그라들지 않았다. 미북정상회담 취소 소동이 한창이던 5월 26일,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판문점에서 비밀 회담을 가졌다. 대대적으로 홍보했던 한 달 전과는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문 대통령은 사후 질의응답에서 김 위원장으로부터 만남 요청이 있었음을 밝혔다.
「문재인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5월 26일 오후 판문점 북측 통일각에서 정상회담을 마친 뒤 헤어지며 포옹하고 있다」=남북정상회담 준비위원회=
준비 절차 없이 속성으로 개최된 '2018 2차 남북정상회담'의 바탕에는, 미북정상회담이 취소될 경우 꼭 쥐고 있던 '운전대'가 통째로 뽑혀버릴 위기에 놓인 문재인 대통령과 딱! 한 번 배짱을 부렸다가 대화 테이블이고 밥그릇이고 전부 뒤집어져버린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불안감이 깔려 있었다. 두 정상은 손을 마주 잡고 미소를 지으며 애써 덤덤한 척했지만 타들어가는 속내를 모르는 이가 없었다.
(계속)
*이 글은 필자 개인의 생각이며 소속사 및 특정 집단과 관계가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