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에는 0이라는 숫자가 없었다. 사람들은 아무것도 없을 때 그것을 수학적으로 표현하지 못했다. 지금 우리에게는 너무 당연한 숫자 ‘0’은 인류 역사상 가장 창조적인 발상 중 하나이다.
로마 시대에는 0이 없었기에 숫자를 표시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 1,2,3을 로마 숫자로 표현하면 I, II, III이다. 따라서 로마 사람들은 11을 2로 인식했다. 그러다 0이 생겨남으로 1과 10은 단위가 다른 수라는 인식이 가능해졌다. 0이라는 숫자의 탄생으로, 1과 10은 단위가 다른 수를 나타내는 ‘자릿수’라는 개념이 만들어지게 되었다. 이전까지 ‘둘’을 ‘11’로 표시했던 방식은 ‘2’ 라는 이름으로 바뀌게 되었다. ‘셋’을 ‘111’라고 표현했던 방식 또한 ‘3'이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다. 0이라는 숫자가 생김으로써 십진법 표현이 가능해진 것이다.
코딩을 배우면서 숫자 0의 중요성을 알게 되었다. 파이썬 코드를 짤 때 카운트는 무조건 0부터 시작이다. 예를 들면 ‘Hello’라는 단어의 첫 번째 알파벳은 H이다. 이걸 숫자로 인덱스를 매길 때는 1이 아니라 0부터 시작해야 한다. 반면 일상에서는 기본 값이 1이다. 예를 들면 1등은 있지만 0등은 없다. 1층은 있지만 0층은 없다. 하지만 코딩을 할 때는 모든 코드가 0부터 시작되기에 0이라는 숫자를 새삼스럽게 인식하게 된다. 태초에 0이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 초코파이가 있었다.
1974년 오리온 제과에서 만든 초코파이는 내가 태어나기 이전부터 존재했던 과자다. 모임에서뿐만 아니라 TV나 영화에서도 종종 보던 국민 과자라 한 번도 눈여겨 본적 없다. 그동안 주변 남성들에게 군대에서 먹은 초코파이 에피소드를 얼마나 많이 들었던가. 훈련소 시절 초코파이를 받으러 이번 주는 기독교, 다음 주는 불교, 그 다음 주는 천주교에서 예배를 드렸다는 지인들의 증언을 종종 들었다.
살이 찐다며 마시멜로만 분리해 먹거나, 초코파이를 봉지 채 주물러 초코똥 모양으로 만드는 친구도 보았다. 마시멜로 때문에 초코파이 한 개를 먹으면 지구 한 바퀴를 돌아도 살이 빠지지 않는다는 괴담도 여러 번 들었다. 초코파이는 너무 익숙한 과자였고, 익숙했기에 곁에 있어도 눈에 보이지 않던 과자였다. 그러다 러시아, 베트남, 중국, 인도, 북한, 미얀마, 몽골 등의 나라에서 사람들이 초코파이에 열광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몇몇 나라에서는 초코파이를 제사상에 올릴 정도로 귀한 대접을 한다는 기사도 읽었다. 응? 내가 아는 그 초코파이가? 그제야 초코파이가 새롭게 보였다.
초코파이의 모태는 1917년 미국의 한 빵집에서 출시한 문파이(Moonpie)라고 한다. 문파이는 미국 경제공황 시기에 노동자들이 식사대용으로 먹던 간편식이었다. 1951년을 배경으로 한 영화 <마제스틱>에서 주인공 짐 캐리는 작은 극장을 운영하는데, 이때 매점에서 불티나게 팔려나가던 간식 역시 문파이였다.
초코파이도 약간 출출할 때 선택하기 좋은 과자다. 빵처럼 부드러우면서도 묵직한 맛이 허기를 달래준다. 오리온에서 나온 초코파이가 인기를 끌자 다른 제과회사들이 너도나도 초코파이 제품을 내놓았다. ‘크라운 쵸코파이’, ‘해태 초코파이’, ‘롯데 초코파이’가 바로 그것이다. 복제가 복제를 낳고 또 다른 복제를 낳는 세상이다.
초코파이 후예들인 오예스, 빅파이, 몽쉘도 있다. 모두 빵 위에 초콜릿 코팅을 입혔다.
여기서 첫 번째 퀴즈. 빅파이에서 빅의 뜻은 무엇일까? 공정성을 위해 20~30대 청년 스무 명과 40대 지인 열 명에게 물어보았다. 한명도 빠짐없이, 설마 너는 그것도 모르냐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big” 틀렸다. 정답은 victory의 vic이다. 빅파이가 담긴 종이박스에는 승리를 향한 ‘Victory pie'라고 적혀있다. 마케팅팀은 빅파이 네이밍을 진지하게 다시 고려하길 바란다.
두 번째 퀴즈. 몽쉘의 원래 이름은 무엇일까? 정답을 맞혔다면 미리 축하한다. 당신은 나와 친구일 테니. 정답은 몽쉘통통. 프랑스어로 ’나의 친애하는 아저씨(Mon Cher Tonton)‘라는 뜻이다. 하지만 ’통통‘이라는 단어가 살이 찐다는 느낌이 든다고 판단한 회사는 1999년 ’통통‘을 버리고 ’몽쉘‘만 남겼다. 인터넷에 떠도는 실화 하나. 여자 친구에게 몽쉘통통 먹을까 했더니 “어머, 몽쉘통통이 뭐에요? 너무 귀여워요. 오빠가 애칭 붙인 거에요?” 라는 답변이 돌아왔다고 한다. 통통을 버린다고 해서 몽쉘의 고칼로리를 숨길 순 없다. 그러니 몽쉘통통 이름을 다시 돌려주길 바란다.
세 번째 퀴즈. 오예스는 방부제가 들어갈까 들어가지 않을까? 놀랍게도 오예스는 다른 파이보다 유통기간이 절반인 6개월 밖에 되지 않는다. 방부제를 사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촉촉한 빵 오예스는 방부제를 넣지 않아 곰팡이가 필 가능성이 존재한다. 오예스가 담긴 박스 측면에는 굵은 글씨로 이렇게 적혀있다. ’오예스는 고수분 제품으로 유통 중에 곰팡이가 발생할 우려가 있습니다. 제품에 이상이 있으면 바로 연락해 주세요.‘ 곰팡이가 핀 오예스를 발견했다면 즉시 고객센터에 알려라. 누리꾼들의 증언에 따르면 진심어린 사과와 함께 과자 선물세트를 선물로 받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