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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새우깡

by 유자와 모과


“엄마, 주면 안돼!”


이미 늦었다. 엄마가 무심결에 던진 새우깡 하나가 허공에서 포물선을 그린 후 바닥에 툭 떨어졌다. 해변에 있던 갈매기들이 하나 둘 엄마 근처로 뒤뚱거리며 모이기 시작했다. 겁 없는 새 한마리가 엄마 머리 위를 맴돌며 과자를 달라고 소리를 질렀다. 당황한 엄마는 새우깡 몇 개를 힘껏 바다 쪽으로 던지며 갈매기를 쫒아냈다. 하지만 더 많은 새우깡은 더 많은 갈매기를 불러 모으는 법. 저 멀리 바다를 향해 날아가던 새들까지 방향을 틀어 우리가 있는 숙소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신두리 해변 바로 앞에 있는 ‘하늘과 바다 사이 리조트’ 204호 베란다가 갈매기 떼로 포위되기까지 걸린 시간은 단 10초. 이러다 히치콕의 영화 <새 2>를 찍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몸은 움직이지 않고 손만 등 뒤로 옮겨 조심조심 거실 문을 열었다. 엄마 손을 잡고 재빨리 방으로 들어오자마자 창을 닫았다. 베란다 밖은 이제 갈매기로 가득 찼다. 용감한 갈매기 몇 마리가 통유리에 부리를 콕콕 쪼아댔다. 창문에 부딪치는 소리가 섬뜩했다. 엄마는 다짐했다. 다시는 갈매기에게 새우깡을 주지 않겠다고.


원래 갈매기의 꿈은 멋지게 날아오르는 것이었다. 하지만 1971년 농심에서 새우깡을 출시한 이후 갈매기는 본연의 꿈을 잊어버리고 새우깡에 집착하게 되었다. 사람이 먹으라고 만든 과자를 새들이 더 좋아하니 회사 입장에서도 난감하겠지. 을왕리에 사는 갈매기도, 해운대에 사는 갈매기도 새우깡 냄새만 맡으면 정신을 잃는다. 새우 향이 나는 새우깡을 새우로 착각해 달려드는 거다. 새우깡에 생새우가 8.5% 들어있긴 하지만 주 성분은 밀가루다. 갈매기는 물고기나 해조류를 먹고 살아야 할 조류이니, 갈매기 건강을 생각한다면 새우깡을 던져주지 말자.


새들도 좋아할 만큼 새우깡은 잘 만든 과자다. 아이 손도 어른 손도 자꾸만 손이 가게 만들었다. 요즘은 무인 시스템으로 된 동전 노래방이 대세지만, 옛날 노래방에는 항상 주인이 지키고 있었다. 친구들끼리 우르르 노래방에 몰려가면 1시간 이용권을 끊었다. 끝날 때쯤 말 잘하는 친구가 카운터로 가서 서비스를 달라고 부탁했다. 보통 종료 전에 주인이 알아서 20분 정도 추가 시간을 주었다. 한가한 시간에는 30분, 40분도 서비스로 주었는데 그때마다 우리는 환호성을 질렀다. 노래를 부르고 또 부르다 지쳐 서비스 시간을 채우지 못하고 나올 때도 있었다. 음료나 맥주를 시키면 기본 안주가 나왔는데, 바로 노래방 새우깡이었다. 지금은 사라진, 노래방 새우깡은 일반 새우깡보다 큰 봉지에 들어 있었고 지퍼백이라 보관도 쉬웠다. 마트에도 팔았기에 모임이나 단체 여행을 갈 때는 항상 대용량인 노래방 새우깡을 챙겼다.


국민과자 새우깡은 오리지널 외에 매운맛과 쌀 맛이 있다. 아무리 파생 상품이 많이 나온다 해도 결국 오리지널이 최고라며 되돌아오게 되는데, 새우깡은 좀 다르다. 매운 새우깡도, 쌀 새우깡도 자신만의 개성을 잘 살려 오리지널 새우깡만큼 인기가 많다. 그리고 2021년 10월, 농심에서 새우깡 판매 50주년을 맞아 새우깡 블랙을 출시했다. 새우 17%, 트러플 분말이 0.017% 들어있는 새우깡 블랙 포장지를 처음 봤을 때는 비웃었다. 과자 생김새가 오리지널 새우깡과는 전혀 다른 모양이었기 때문이다. 트러플(송로버섯)이 들어 있다고 하니 속는 셈치고 한 봉지 샀다. 봉지를 뜯는 순간 풍겨 나오는 트러플 향기, 새우깡 하나를 입안에 넣었고 천천히 씹었다. 아니 이건 코스트코에서 판매하는 바시론 트러플 치즈 맛이 아니던가!


새우깡은 과자계에 또 한 번의 혁명을 일으켰다. 그동안 가장 좋아하는 과자는 새우깡이었지만, 그날부터 새우깡 블랙으로 바뀌었다. 지난 일 년 간 만나는 지인마다 새로 나온 새우깡 블랙을 소개했다. 혹시 먹어 보았냐고. 최고의 과자이니 꼭 한번 먹어보라고. 아직까지 만족할 만한 피드백을 받은 적은 없으나 멈추지 않을 거다. 좋은 건 함께 하고 싶은 마음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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