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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자와 모과 Jul 23. 2023

08. 오징어땅콩


철원이라는 후배가 있다. 철원이 아빠는 의사다. 부유했던 철원이는 크리스마스 때마다 온갖 선물을 풍족하게 받았다고 한다. 어느 해 철원이 아빠는 주식으로 큰 손실을 입었고, 크리스마스는 어김없이 찾아왔다. 성탄절 아침, 눈을 뜨자마자 철원이는 선물을 기대하며 거실로 달려 나갔고,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가까스로 투명 비닐로 포장된 미니폴 두 개를 발견했다. 철원이 한 개, 누나 한 개.


미니폴은 어른 손바닥만 한 네모 상자 안에 담배 크기의 초콜릿이 차곡차곡 들어있는 과자였다. 그 당시 미니폴은 700원이었고 언제든 슈퍼에서 사먹을 수 있던 과자이기도 했다. 당시 초등학생 1학년이던 철원이는 미니폴을 바라보며 진정 산타가 있는지 존재론적 고뇌에 빠졌다고 한다. 그날이 산타를 의심했던 최초의 순간이라며, 아직도 그때의 황당한 순간이 생생하게 떠오른다고 했다.


내 친구 지수는 셋째 딸로 태어났다. 명절 때 어르신들께 용돈을 받아도 셋째라 제일 적게 받았고, 집에서 무언가를 나눌 때도 셋째라 제일 적게 할당되었다. 지수는 초등학생 때 몇 년 간 친할아버지와 함께 살았다. 할아버지는 인쇄소에 다니셨는데 퇴근할 때마다 항상 밀크 캐러멜 세 개를 사서 손녀들에게 나눠줬다고 한다. 한 사람에 하나씩. 늘 동등한 몫을 받아본 적이 없던 지수는 그게 너무 좋았다고. 자신에게 온전히 할당된 밀크 캐러멜에 대한 추억이 너무 따뜻해서 지금도 종종 캐러멜을 사서 먹는다고 했다.


 평범한 과자나 초콜릿이 때로는 누군가에게 큰 의미를 지닐 수 있다. 내게도 그런 과자가 있으니 바로 오리온에서 만든 오징어 땅콩. 어릴 적, 일요일 저녁마다 동생과 나는 집 앞 구멍가게로 달려갔다. 과자 몇 개를 골라 집으로 돌아온 후 작은 방에 과자 봉지를 펼쳐놓고 아빠와 함께 둘러앉아 과자를 먹었다. 과자는 그때그때마다 달랐지만 오징어 땅콩은 매번 그 자리를 지켰다. 아빠가 제일 좋아하는 과자였기 때문이다.


일요일 밤, 셋이 함께 머리를 맞대고 과자를 먹는 시간은 우리만의 의식처럼 굳어져 초등학생 때부터 고등학생 때까지 이어졌다. 나와 동생이 재잘재잘 떠드는 동안 아빠는 오징어 땅콩을 와작 씹어 먹었다. 엄마는 그 옆에서 또 불량식품을 사왔다며, 네 아빠가 얘들 건강을 다 망친다고 잔소리를 했다. 잔소리 역시 엄마만의 의식처럼 굳어졌기에 우리는 단 한 번도 구박을 피할 수 없었다.


 오징어 땅콩을 볼 때마다 그때의 행복한 기억이 떠오르지만, 사실 나는 오징어 땅콩을 좋아하지 않는다. 여기서 분명히 하자면 오징어에겐 죄가 없다. 나는 오징어를 좋아한다. 청년다방에 가서도 튀긴 오징어가 통째로 올라가는 ‘통큰오짱 떡볶이’만 먹는 사람이다.


문제는 땅콩이다. 나는 땅콩 잼은 좋지만 통으로 된 땅콩은 싫다. 아니 도대체 과자 안에 왜 힘들게 땅콩을 숨겨놓은 걸까? 땅콩을 넣고 싶으면 카라멜콘 땅콩처럼 과자와 땅콩을 분리해 넣으면 되지 않나? 아빠는 과자와 땅콩이 함께 어우러져 씹히는 맛이 고소해서 좋다고 하지만, 내겐 어림없는 소리. 오징어 땅콩을 먹을 때마다 조심스레 과자를 씹으며 입속에서 땅콩을 분리한 후 땅콩만 다시 뱉어내었다. 휴지에 모아놓은 땅콩을 아빠가 먹었는지 엄마가 먹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1976년도에 처음 태어난 오징어 땅콩은 우리 아빠가 30년 이상 충성을 바친 과자다. 비록 중국산 땅콩이긴 하지만 땅콩이 30%나 들어 있으니 가히 땅콩과자라 불릴 만하다. 엄선된 땅콩에 코팅 옷을 28번 입혀주면 오징어 땅콩 과자로 변신한다고 한다. 동글동글한 과자 표면에 있는 갈색 무늬는 오징어채다. 포장지에 사람 형상처럼 미소 짓고 있는 갈색 무늬 모양이 있기에 한 봉지를 뜯어 찾아보았더니 과연 비슷한 형상으로 웃고 있는 과자 한 알을 발견할 수 있었다. 오징어 땅콩아, 입맛 까다로운 우리 아빠를 지켜줘서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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