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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자와 모과 Jul 17. 2023

07. 꼬북칩

얼마 전 정영목 작가의 <프롤로그 에필로그> 라는 소설을 읽었다. 이런 방식으로도 책을 쓸 수 있구나, 왜 난 지금까지 이런 생각을 못했지? 하며 책장을 넘길 때마다 감탄했다. 작가 스스로는 ‘하나마나한 이야기’라고 적어 놓았지만 하나마나한 이야기를 묘하게 연결시키는 기법이 놀랍고 새로웠다.


보르헤스 단편 <끝없이 두 갈래로 갈라지는 길들이 있는 정원>처럼 문장들은 끝없이 두 갈래로 갈라져 미로처럼 반복되고, 읽다보면 그 속에 흠뻑 빠져 여기가 현실인지 소설인지 알 수 없는 지경에 이르고 만다. 보통 이런 책은 재미없기 마련인데 그 편견마저 깨버린 소설이다. 개인적으로 <프롤로그 에필로그>가 한국 소설사에서 새로운 길을 개척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수십 년간 과자를 먹어왔지만 여전히 놀라움을 안겨주는 과자들이 있다. 오사카 시내에서 입안에 닿자마자 사르르 녹아버리는 일본 과자 훈와리메이진 키나코모찌(부드러운 콩가루 떡)를 처음 먹었을 때가 그랬고, 진짜 포도 알처럼 톡 터지는 코로로 그레이프 젤리를 입안에 넣었을 때가 그러했다. 미국 감자칩 레이즈와 호주 비스킷 팀탐을 처음 맛보았을 때 느꼈던 행복은 또 어떠했던가. 


그리고 2017년에 오리온에서 출시된 꼬북칩이 있다. 꼬북칩을 처음 접했을 때가 기억난다. 꼬북칩이라는 과자가 새로 나왔는데 맛있더라는 소문이 자자했던 시기였다.

 남편과 거실 탁자에 앉아 경건한 마음으로 콘스프맛 꼬북칩 봉지를 뜯었다. 고소하고 달콤한 향이 코를 자극했다. 남편은 과자 하나를 들고 유심히 살펴보더니 이런 식의 문장을 내뱉었다.


“겹겹이 쌓아 올린 자태가 심상치 않군.”


과연 그러했다. 대한민국 기술이 이토록 발전했던가. 과자 한 알에 4겹 층이라니. 입안에 넣자 과자는 층층이 부스러지며 임무를 완수했다. 입안에서 팡팡 터지던 진한 옥수수 맛. 우리는 꼬북칩이 과자의 격을 끌어올렸다며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전까지 콘칩을 즐겨 먹던 남편은 자연스럽게 콘스프맛 꼬북칩으로 갈아탔다.



빛이 있으면 어두움도 있는 법. 과자 형상이 거북이 등껍질처럼 생겨 꼬북칩이라는 이름이 붙었던 이 과자는 곧이어 표절 논란에 휩싸였다. 과자의 가장 큰 특징이라 할 수 있는 겹층 구조가 일본 과자 ‘사쿠사쿠콘’과 똑같다는 것이었다.


사쿠사쿠콘은 2009년에 나온 과자였기에 한일 양국에서 표절 의혹이 일었고 꼬북칩은 비난을 면치 못했다. 특히 꼬북칩이 논란이 되었던 건 회사 측에서 오랜 시간 개발 끝에 나온 제품이라고 홍보했기 때문이다. 다른 나라 과자를 카피한 한국 과자들은 꼬북칩 말고도 많았지만, 그 과자들은 적어도 우리가 최초라고 말하지는 않았다.


 태어날 때부터 불명예를 안고 태어난 꼬북칩은 허니버터 칩만큼의 영광을 누리지는 못했지만, 지금까지도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다. 콘스프맛, 인절미맛, 초코 츄러스맛, 바닐라맛, 플레이밍 라임맛 등 다양한 맛이 있지만 내가 제일 좋아하는 건 초코 츄러스 맛. 달콤한 초콜릿을 층층마다 바르고 그 위에 슈가 토핑을 솔솔 뿌렸다. 더군다나 준초콜릿이 24.9%나 들어 있다니 맛있을 수밖에.


하지만 초콜릿을 잔뜩 집어넣어 제품 가격은 만만치 않다. 편의점에서 80g 꼬북칩 한 봉지가 1700원이다. 구운 계란 두 알이 2000원, 3XL 서울식 소불고기 삼각김밥이 1600원인데 과자 따위가 한 끼 식사대용과 맞먹는 가격이라고 화를 낼 수도 있다. 


당신에게 묻고 싶다. 하루 종일 회사 업무 혹은 육아로 시달리다 오후 3시쯤 당신에게 간식 먹을 시간이 주어진다면 무엇을 고를 것인지. 머리를 곱게 딴 거북이가 쵸고 츄러스를 한 아름 안고 당신을 바라보며 미소 짓는 모습을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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