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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자와 모과 Jun 29. 2020

20. 둘이서 라면 하나 - 쇠고기면

쇠고기면

내 친구 용만이는 몇 안 되는 소중한 친구 중 한명이다. 대학교 1학년 때 처음 만났는데 지금까지 연락을 하는 유일한 대학 친구이기도 하다. 용만이 고향이 횡성이라 사람들은 종종 그에게 말한다.


"횡성 한우 많이 먹겠네."


그때마다 용만이는 대답한다.


"횡성 한우 비싸서 횡성 사람들도 못 먹어."


난 횡성 한우를 한 번도 못 먹어봤기에 언젠가 용만이 한테 그게 진짜 맛있긴 하냐고 물은 적이 있다. 그때 용만이는 이렇게 대답했다.


"가족끼리 삼겹살이랑 소고기랑 둘 다 꿔서 먹은 적이 있는데, 삼겹살을 먹다 횡성 한우를 딱 먹었거든. 그리고 다시 삼겹살을 먹었는데 삼겹살이 고기로 안 보이더라."


그만큼 횡성 한우가 맛있다는 소리다.


그런데 왜 한우는 횡성이 유명할까? 강원도 횡성은 논농사가 발달해 한우에게 필요한 볏짚이 풍부하고 소들이 뛰어다닐 수 있는 들판이 넓게 펼쳐져 있다. 또한 횡성은 산간지역에 위치하여 쌀쌀한 기후를 유지하기에 한우의 체내 지방축적률이 높고 이것이 육질을 부드럽게 한다고 한다. 부드러운 고기에 향미까지 뛰어나니 사람들이 좋아할 요소를 다 갖추었다. 횡성 한우는 혈통등록 관리 시스템까지 있어 우수한 품질의 고기를 생산하고 유지할 수 있다고 한다. 


삼양에서 만든 쇠고기면을 살펴 보니 100% 횡성 한우를 사용한다고 표지에 적혀 있다. 왼쪽 하단에는 ‘횡성 군수가 품질을 인증한 횡성 한우고기입니다’라고 동그란 인증마크 모양까지 있다. 라면이 담긴 그릇 위로 ‘한우의 고장 횡성군이 인정한’이라는 글도 적혀있다. 라면 표지가 온통 횡성 한우 얘기뿐이군. 오른쪽에는 소 한마리가 바지 없이 흰 저고리만 입고 똑바로 서서 엄지를 치켜세우며 미소 짓고 있다. 이 소는 횡성군 마스코트인 한우리라고 작은 글씨로 적혀 있다. 한우리야. 너에게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고는 웃는 거니?


어쨌거나 나도 39년 만에 횡성 한우를 먹어보게 되었다. 스프 중 쇠고기가 1.08% 함유되어 있다고 하니 미약하게나마 맛을 느껴볼 수는 있을 것이다. 건더기 스프도 들어 있지 않은 저가 라면인데 회사가 너무 무리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다. 라면을 뜯는다. 면발이 스낵면만큼 가늘다. 스프를 넣고 라면을 끓인다. 금방 끓었다. 호로록. 남편이 먼저 한 입 먹어본다. 소고기 맛이 나냐고 물었더니 잘 모르겠다고 한다. 나도 한 입 먹어본다. 소고기 맛이 나지 않는다. 국물을 한 입 떠먹어 본다. 고기 맛이 나는 것 같기도 하다. 맵지 않은 순하고 소박한 라면 맛이라 내 입에는 잘 맞는다.


올해는 6월 초부터 더위가 몰려왔다. 갑작스레 여름이 시작되니 입맛도 없고 시원한 수박 생각만 난다. 남편에게 점심으로 과일 샐러드와 빵을 먹자고 했더니 자기는 라면을 먹겠단다. 라면 프로젝트 한다고 사다 놓은 쇠고기면 유통기한이 며칠 안 남았다는 것이다. 이 더위에 라면이라니. 나는 맛 평가를 위해 한 젓가락만 먹은 후 과일을 먹기로 했다. 하지만 라면을 아예 안 먹을 수는 있지만 한 젓가락만 먹을 수는 없는 법. 라면은 사람의 마음을 바꾸는 강력한 힘이 있다. 게다가 맵지도 않고 고소하니 자꾸 라면에 시선이 간다. 남편은 혹여 내가 더 달라고 할까봐 냄비를 끌어안고 맹렬한 속도로 라면을 흡입한다. 흥. 치사해서 안 먹어.


근데 왜 소고기면이 아닌 쇠고기일까? '쇠고기'의 ‘쇠’는 ‘소의’를 줄인 말이야.같은 말인데 서로 다른 단어를 사용한다면 아무래도 불편함이 생기겠지? 그래서 각 나라에서는 표준어를 정해 사용한단다. 우리나라의 표준어는 ‘교양 있는 사람들이 두루 쓰는 현대 서울말’을 기준으로 해. 그러다 보니 원래는 표준어가 아니었는데, 사람들이 점차 많이 사용하면서 나중에 표준어가 되는 경우도 있단다. ‘소고기’와 ‘쇠고기’처럼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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