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에 화장지 있나요?”
“네 있어요. 그런데 화장실이 많이 지저분해요.”
엄마는 평창 국민의 숲길 5코스 출발지에 있던 간이 화장실 문을 열고 나오는 중이었다. 임시로 만든 재래식 화장실이었다. 요즘에도 이렇게 엉망인 곳이 있나 싶을 정도로 참혹한 수준이었다. 화장실로 올라가는 계단은 단이 두 개였고 폭이 좁았다. 엄마는 화장실 문을 열자마자 밖에서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길을 비켜주려고 옆으로 물러섰다. 좁은 계단 사이를 뒷걸음치다 계단 턱에 다리가 걸렸다. 엄마는 균형을 잡지 못하고 비틀거리다 계단 옆 담벼락으로 쓰러졌다. 머리를 부딪치지 않으려 오른손을 땅에 디뎠다.
사고는 기습적으로 일어난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장소에서, 예상하지 못했던 시나리오가 펼쳐진다. 어버이날 주간을 맞아 부모님과 1박 2일 평창 여행을 가기로 했다. 그날 우리는 평창에 막 도착하여, 본격적으로 구경을 하려던 참이었다. 겨우 엄마를 설득해서 왔는데 사고라니. 엄마는 손목이 너무 아파 움직일 수도 없었다. 손목이 뒤로 살짝 꺾인 것처럼 보였다. 담벼락과 계단 사이에서 엄마는 엉덩방아를 찐 상태로 한참을 앉아 있어야 했다. 폴더 폰처럼 반쯤 접혀 있는 엄마를 보며 제발, 손목이 부러지지 않았기를 기도했다.
나는 곧 괜찮아질 거라고, 몸이 놀라 그런 거라고 말했다. 내 말을 비웃듯 엄마 손목은 점점 부풀어 올랐다. 간신히 몸을 일으킨 엄마를 차에 태우고, 가까운 병원으로 달려갔다. 병원 문 앞에 종이 한 장이 붙여져 있었다. ‘간호사 파업으로 오후 진료 없습니다.’ 평창 시내에 문을 연 유일한 병원이었다. 다시 병원을 검색해야 했다. 손목이 아파 끙끙거리는 신음소리를 들으니 심장이 쿵쾅거렸다. 차를 타고 20분을 달려 다른 병원에 도착했다. 엑스레이 사진을 보며 의사가 말했다.
“손목뼈에 금이 갔어요. 5주 정도는 깁스 해야 돼. 지금은 부목으로 해줄 테니, 부기 빠지면 병원 가서 깁스하세요.”
절망에 빠진 우리를 보며, 의사는 그래도 뼈가 어긋나지 않고, 그대로 금이 가서 다행이라고 했다. 철심 박는 수술은 안 해도 된다며 우리를 위로했다. 우리는 그 말에 위로받았다. 엄마는 오른팔에 붕대를 칭칭 감고 보호대를 착용했다. 병원 밖을 나온 우리는 길을 잃은 것처럼 두리번거렸다. 여기가 어디지? 5월답게 파랗고 청명한 날이었다. 그제야 여행 중이라는 사실을 떠올렸다. 숙소로 가야겠구나. 체크인을 하고 짐을 풀고 침대에 눕자 뜻밖에 밀려오는 감정은 감사였다. 다리가 부러지지 않아서, 머리를 부딪치지 않아서 얼마나 감사한가.
나이가 들어가며 골밀도는 감소한다. 뼈가 약해지기에 낙상으로 인한 후유증이 무섭다. 골절환자 60%가 정상적인 보행이 불가능할 정도이다. 특히 고관절 골절이 무섭다. 고관절은 다리와 엉덩이를 이어주는 부분이다. 이 부분이 골절되면 죽음까지 이를 수 있다. 뼈가 붙기까지 오랜 시간 누워 있어야 해서 근육이 빠지고, 혈액 순환이 나빠진다. 정신적으로도 힘들기에 우울증이나 불면증이 생길 수도 있다.
65세 이상 노인 세 명 중 한명이 넘어지는 사고를 당한다. 대부분 가정에서 일어난다. 자리에서 일어나다 갑자기 어지러움을 느껴 넘어지기도 하고 문턱에 걸리기도 한다. 낙상 사고가 빈번한 장소는 화장실이다. 근육에 힘이 없는 노령자가 욕조에서 일어나려다 미끄러질 수 있다. 안전 손잡이를 욕조 벽과 변기 옆 벽에 설치하면 좋다.
동선이 오가는 공간의 바닥에는 잡동사니가 없어야 한다. 무심코 물건이나 전자제품의 전깃줄을 밟아 미끄러질 수 있다. 현관도 깨끗하게 치워야 한다. 집안에서 사용하는 의자는 신중히 골라야 한다. 등받이가 없거나 바퀴 달린 의자는 뒤로 넘어가거나 엉덩방아를 찧을 수 있다. 집안 정돈은 고령자 뿐 아니라 가족 구성원 모두의 안전을 위해서도 필요하다.
부기가 빠지자 엄마는 집 앞 병원에 깁스를 하러 갔다. 먼저 엑스레이를 찍었다. 사진을 보더니 의사는 뼈가 비틀어진 것 같다며 좀 더 큰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으라고 했다. 2차 병원에서 다시 사진을 찍었다. 골절 수술을 해야 한다는 진단을 받았다. 끝날 것 같지 않은 날들이 이어졌다. 입원을 하고, 수술을 하고, 퇴원을 하고, 재활 치료를 받았다. 힘든 시간이었지만 그 또한 지나갔다. 보호대를 푸는 날 엄마가 말했다.
“내가 화장실 지저분하다고 불평하다 다쳤잖니. 낫게 해주시면 다시는 불평 안하겠다고 기도했어.”
“진짜? 손목 부러지길 잘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