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시 30분부터 퇴원이 가능하다.
병원 주차장에 차를 대고 올라가니 오른손에 붕대를 감은 엄마가 3층으로 내려와 있다.
어서 집에 가고 싶나보다.
병원비를 계산하고 관련 서류를 받은 후 병원을 나선다.
잘 잤냐고 물으니 지난번에 입원했을 때보다 잘 잤다고 한다.
그때는 엄마가 반깁스를 해서 손목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간병인이 상시 대기하는 병실에 머물렀는데 그분이 환자들 수발을 다 들었다.
수술 첫날 밤 엄마는 밤새 화장실을 들락날락 거리는 아줌마 한분 때문에 잠을 설쳤다.
“내 옆에 있는 아줌마가 변비였거든.
밤새 변기를 붙잡고 있어도 똥이 안 나오신대.
허리에 힘을 줘야 하는데 허리 수술을 해서 힘 주기도 힘들고.
간병인이 옆에서 시중들면서 ‘애 낳는 것보다 더 힘드네요’ 그러더라.
옆에서 보는 우리도 힘든데 둘 다 얼마나 힘들었겠어.
결국 나중에는 볼일을 보셔서 아침에 보니 배가 홀쭉해지신 거 있지.
커다랗게 부풀었었는데. 다행이지 뭐니.”
이번에는 두 명의 아줌마를 만났는데 한 분은 성당, 한 분은 교회를 다닌다고 한다.
운전하는 10분 동안 엄마는 그분들이 다치게 된 경위, 현재 상태,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찬찬히 이야기한다.
엄마는 남의 말을 끝까지 잘 들어주고 맞장구를 잘 쳐 줘서 누구든 금방 친해진다.
그 중 한분이 서로 연락하고 지내자며 단체 카톡방도 만들었다고 한다.
엄마는 카톡을 거의 하지 않지만 싫다는 말은 차마 하지 못했다.
부모님 댁에서 점심을 먹고 집에 갈 준비를 한다.
아빠는 산에 운동을 하러 가신다고 한다.
엄마도 일월 공원을 한 바퀴 돌고 오겠다고 한다.
놀라운 발전이다.
6개월 전 반 깁스(부목)를 하고 퇴원했을 때 엄마는 운동하러 나가는 걸 주저했다.
누가 손목을 칠까봐 두려워 그러는 거냐고 묻자 그게 아니라 부끄러워서 그런 거라고 했다.
뜻밖이었다.
처음 든 생각은, 깁스하고 운동하는 게 뭐가 부끄럽지? 였다.
좀 더 생각해보니 그럴 수도 있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한쪽 팔을 깁스하고 팔걸이까지 한 채 운동하는 자신을 누군가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
손상된 몸에 대한 좌절.
휠체어를 타거나 지팡이를 짚고 한발 한발 내딛는 사람을 무심코 바라보는 시선처럼, 엄마는 타인의 시선이 두려웠던 거다.
질병 때문에 머리가 빠져 삭발하는 사람들이 떠올랐다.
그를 위해 함께 머리를 박박 밀어버리는 가족이나 친구가 있다.
그가 소외감을 느끼지 않도록 동참하는 마음.
그 행동이 그에게 말할 수 없는 위로와 힘이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러려면 우선 팔에 붕대를 감아야 할까 공상을 하는 사이에 엄마는 마음을 바꿔 홀로 운동을 하러 나갔다.
그리고 다음날 내게 말했다.
용기내어 나가니 아무것도 아니더라고.
사람들은 내 팔을 신경도 쓰지 않는다고.
엄마 손목에 난 수술 자국은 끝내 희미한 흉터를 남길 것이다.
가끔 손목이 저리고 통증을 느끼겠지.
지금까지 그래왔듯, 엄마는 아픈 몸을 보듬으며 씩씩하게 살아갈테니 안심이 된다.
나도 그렇게 살아야지.
한쪽 손목에 붕대를 칭칭 감은 채 운동을 하러 나가는 엄마를 배웅한다.
엄마, 잘 다녀오세요. 저도 이제 집에 가려고요. 또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