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말하지 않는 부모 마음

by 유자와 모과

평일 저녁, 남편에게 전화가 왔다.

“엄마? 울어? 무슨 일이야?

아빠 사고 났다고?

어디서? 많이 다쳤어?

알겠어. 예약 취소할게.”


아침에 아버님이 차를 몰고 가다 빗길에 바퀴가 미끄러졌다고 한다.

폭우가 쏟아지던 아침이었다.

길가에 있는 나무를 들이받고 멈춰 섰는데 차 앞쪽이 완전히 찌그러졌다.

구조대원이 운전석에 앉은 아버님을 꺼내는데 2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병원 응급실에서 얼굴에 피범벅이 된 남편 얼굴을 본 어머님은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아버님은 오후가 돼서야 깨어났고 그때는 이미 꿰맬 곳은 다 꿰매고 손 쓸 수 없는 부분은 놔둔 상태였다.

다른 곳은 괜찮은데 오른쪽 다리가 심하게 부서졌다.

붓기가 빠져 봐야 수술을 할지 말지 알 수 있다고 했다.

저녁 무렵이 되서야 어머님은 마음이 진정되었다.

그러다 문득 떠올랐다.

단양 여행가기로 했는데 못 가겠구나.

아들한테 전화해서 숙소 취소하라고 말해야겠다.


이 주 뒤가 아버님 생신이었다.

우리는 생신 기념으로 부모님을 모시고 일박 이일 여행을 가려고 했다.

단양 소노문 리조트를 예약해 두었는데 어머님이 전화를 하신 거다.

사고가 나서 여행은 못 갈 것 같다고.

나는 남편에게 물었다.


“숙소 예약 건이 없었으면 어머님은 사고 났다고 전화 안하셨을까?”

왜 많은 부모는 아프거나 다친 걸 자식에게 말하지 않는 걸까?

부모님과 멀리 떨어져 살던 시절 나는 전혀 몰랐다.


아빠가 나무에서 떨어져 허리를 다치고,

엄마가 접촉사고가 나고,

아빠 엄마가 밥숟가락 들 기운조차 없어서 링겔을 맞고,

온갖 사건사고가 일어났지만 나는 알지 못했다.

몇 달에 한번 부모님을 뵈러 가는 게 전부였고, 그분들의 삶을 관찰하기에는 너무 짧은 시간이었다.

부모는 자식이 걱정할까봐 말하지 않는다.

적당히 나이를 먹은 나와 남편은 이제 부모의 마음을 조금은 알 것 같다.


우리는 이제 코로나에 걸려 고열에 시달려도 부모님께 전화가 오면 잘 있다고 대답한다.

목에 화상을 입어도, 허리가 아파 꼼짝하지 못해도 부모님께 잘 지낸다고 대답한다.

큰 사고가 나거나 중병에 걸린다면 몰라도 사소한 일로 마음 쓰게 하고 싶지 않다.

기침만 살짝 해도 부모에겐 큰 고통이 되니까.


아버님은 다리 붓기가 빠질 동안 병실에서 대기 상태?로 여러 날을 보내야 했다.

우리는 그 주에 아버님을 뵈러 대전에 있는 병원을 방문했다.

정해진 시간에 환자 면담실에서만 만날 수 있었다.

아버님이 출석하는 교회 목사님도 시간에 맞춰 오셨다.


오른쪽 다리에 부목을 대고 휠체어를 타고 있는 아버님 얼굴이 평온해 보였다.

아버님은 다리를 똑바로 편 후 수평선보다 조금 높게 올려놓는 게 힘들다고 했다.

어머님은 사고 났을 때 남편 얼굴이 피로 가득해서 너무 무서웠다고 했다.

피를 좀 닦아주기라도 했으면 그렇게까지 놀라지는 않았을 텐데 하며 가슴을 쓸어 내렸다.

차는 완전히 찌그러져 폐차를 시켜야 했지만 그에 비해 다친 부위는 적었다.

기적이었다.


우리는 안도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수술하고 퇴원하려면 한 달은 걸릴테니 그때쯤 다시 오기로 했다.

하지만 역시 세상일은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

일주일 뒤 우리는 대전에 다시 내려가야 했다.

보험 신청서 작성을 어려워 하셔서 대신 해드려야 했기 때문이다.

아버님은 다리 붓기가 빠져 대대적으로 철심 박는 수술을 받았다.

수술 후에도 염증 수치가 내려가지 않아 아버님은 병원에 한참을 입원한 후 퇴원했다.

가족들은 그제야 마음을 놓았다.


이제부터 육체적 고통은 오롯이 아버님이 짊어져야 한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뼈가 잘 붙도록 기도하고 아버님 이야기에 귀 기울이기.

타자의 고통에 참여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그의 목소리를 들어주는 게 아닐까?

눈을 맞추고, 고개를 끄덕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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