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약하다 날 새겠다

by 유자와 모과

“너 올해 해외여행 안가니? 백신 안 맞아도 갈 수 있다던데.”

“가고 싶긴 한데, 돈 좀 모아볼까 하고요. 이젠 안 가려고요. 아마 남편 퇴직하기 전까지는 안갈 것 같은데.”

“진짜? 매년 여행 가던 네가 웬일이니. 같이 일본 가자고 말하려 했는데.”

“평일 낮에 테라스에 앉아 언니랑 브런치도 먹고 와인도 마시는 게 여행이지 뭐겠어요.”


6월 초, 널따란 잔디밭이 깔린 야외 카페에서 친한 언니와 이야기를 나눴다. 언니는 나를 속세 떠난 현자처럼 바라보았다.


중국 우한에서 코로나가 발생하기 직전 시드니 여행을 다녀왔다. 그 후 3년이 흘렀다.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에 다니고부터 매년 해외를 나갔다. 모과도 여행을 좋아해 결혼하고 둘이서 줄기차게 비행기를 탔다. 하늘 문이 막히자 우리는 졸지에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된 기분이었다. 하지만 인간은 어떤 상황에서든 적응하며 살 수 있다.


우리는 국내 소도시를 방문하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좋았고 재밌었다. 무엇보다 돈이 적게 들었다. 일 년에 12번 여행을 가도 해외 한번 나가는 비용과 비슷했다. 조금씩 돈이 모이자 의욕이 솟았다. 그래. 그동안 해외는 갈만큼 갔다. 돈도 많이 썼다. 이젠 돈을 모아보자. 통장에 돈이 쌓여가니 지인들이 해외여행을 떠나도 부럽지 않았다. 너흰 여행가니? 난 돈 모은다.


언니와 헤어지고 며칠 후 모과가 지나가는 말로 8월 크루즈 여행 특가 상품이 나왔다고 했다. 크루즈? 크루즈 여행은 해본 적 없는데. 가격이 궁금했다. 페이스북에 올라온 광고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3박 4일 / 부산 > 나가사키 > 해상 > 도쿄(요코하마) 도착, 1인 요금 303,000원부터~ 선착순’

뭐? 30만원이면 크루즈를 타고 도쿄에 갈 수 있다고? 식사와 세금 모두 포함이라고?


“우리 크루즈 여행 가자”

“나 퇴직할 때까지 해외여행 안 간다며”

“그래도 이건 안 되겠어. 갈 수 밖에 없는 가격이야.”

“도쿄에서 서울 오는 비행기 표도 끊어야 하는데”

“그래도 이건 가야 돼”


코로나 방역 조치가 완화되고 지인들이 우르르 해외여행을 떠날 때에도 동요하지 않았던 나였기에 남편은 의아해했다. 하지만 내겐 크루즈 여행의 로망이 있었다. 수년 전 읽은 에세이 때문이다.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의 <재밌다고들 하지만 나는 두 번 다시 하지 않을 일> 책을 읽으며 다짐했다.

나도 언젠가 월리스처럼 크루즈를 타고 응석받이 승객(직원이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하고 손님의 자잘한 요구를 즉각 들어주기에 크루즈에 탄 승객은 자연스레 응석받이가 된다는 뜻)이 되어 보리라. 50세는 되어야 가능할 거라 생각했는데 이렇게 일찍 기회가 찾아오다니. 돈 모으는 건 잠시 보류하자.


상품을 올린 여행사에 즉시 전화를 했지만 응답이 없었다. 벌써 마감된 걸까? 다음날 아침 다시 전화를 했다. 직원이 받았다. 8월 28일 부산에서 출발하는 3박 4일 크루즈 여행 자리가 남았냐고 물었다. 오션뷰와 발코니뷰는 모두 나갔고 창이 하나도 없는 인사이드뷰만 자리만 있다. 선택의 여지가 없다. 카드 결제도 가능하지만 수수료가 붙는다.


직원은 여권번호와 생년월일을 물어본 후 지금 바로 메일로 예약확인서를 보낸다고 했다. 예약확인서에 있는 계좌로 돈을 입금하면 되고, 영문 이름이 여권과 일치하는지 확인해 달라고 부탁했다.

메일함을 열어보았으나 편지는 오지 않았다. 스팸 메일함도 마찬가지였다. 한 시간 동안 수십 번 메일 창을 새로 고침 한 후 다시 전화를 걸었다. 메일이 안 왔다고 하자 미국에서 보내는 거라 안 들어갈 수도 있단다.


점심시간이 지나길 기다렸다가 다시 전화했다. 구글 메일 주소도 알려주었다. 여전히 메일은 감감무소식. 한 시간 동안 수십 번 메일 창을 새로 고침 한 후 다시 전화. 구글 메일로도 안 왔다고 하자 이상하다며 본사에서 예약확인서를 받아 자기 메일로 보내보겠다고 한다.

사기인가 하는 의심이 들었다. 한 시간 동안 수십 번 메일 창을 새로 고침을 반복했다. 메일이 왔다. 시간을 보니 오후 4시. 예약 방법이 이렇게 허술하고 힘들다니. 직장인들은 어떻게 예약하라는 걸까? 이제 돈만 입금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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