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오른쪽 눈에 녹내장 판정을 받았다.
검사를 해보니 안압은 정상이나 시신경이 조금 망가졌다.
언젠가부터 책을 오래 읽다보면 눈에 미세한 통증이 느껴졌지만 그게 녹내장이 될 줄이야.
의사는 안약을 처방했고 하루에 한 방울씩 넣어 주라고 했다.
언제까지요?
평생 넣어야 해요.
그길로 나는 도서관으로 달려갔다.
녹내장에 관한 책을 모조리 빌려 읽기 시작했다.
결과는 절망적이었다.
이미 파괴된 시신경은 다시 회복될 수 없다.
더 이상 시신경이 손상되지 않도록 노력하는 방법밖에 없다.
동양에서는 정상 안압 녹내장 환자가 많다.
안압 자체는 높지 않지만 추가적인 시신경 손상을 막기 위해 안압 하강제를 점안하는 약물치료가 일반적이다.
평생 치료를 지속해야 하는 만성질환이라고 보면 된다.
한 달 정도 안약을 넣었지만 그걸로 만족할 수 없었다.
정말 이게 효과가 있을까?
안약에 대한 부작용도 무시할 수 없다.
마흔 살에 녹내장 진단을 받았으니 90세까지 산다고 가정하면 앞으로 50년을 넣어야 한다.
그만큼 안약이 안전할까?
확신할 수 없었다.
안약 넣는 걸 그만두었다.
다른 방법을 찾기로 했다.
안압에 무리를 주는 행동은 하지 말아야 했다.
이를테면 요가의 언더독 자세나 물구나무 자세.
일상에서 어떤 경우에 고개를 깊이 숙이는지 생각해 보았다.
머리를 감을 때와 말릴 때다.
머리카락이 길어 세숫대야에 물을 받아 욕조 안에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이고 감는다.
서서 샤워기로 감으면 노폐물과 샴푸 액을 완벽히 씻어낼 수 없다.
두피 건강도 중요하기에 이 부분은 바꾸지 않기로 한다.
머리는 똑바로 서서 말릴 수 있다.
그전까지는 드라이기를 화장대에 올려놓고 고개를 숙여 머리를 말렸다.
방법을 바꿔 똑바로 서서 드라이기를 높이 들고 말리려니 손이 아프다.
방법이 없을까?
드라이기 거치대를 사면 되겠다.
인터넷을 검색하여 튼튼한 거치대를 구매한다.
마이크 거치대와 똑같이 생겼다.
동그란 홀더에 드라이기를 넣으면 고정된다.
화장대를 등지고 앉아 드라이기를 켠 후 고개를 뒤로 젖혀 머리카락을 말린다.
어깨도 펴지고 머리카락도 말리고 일석이조다.
한의학 책에서 밤에 입을 벌리고 자면 안압이 높아진다는 문장을 발견한다.
입 안으로 세균이 침투하는 건 물론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잠이 들면 입이 살짝 벌어지기 마련.
당장 3M 근육 테이프를 구입한 후 적당히 잘라 밤마다 입술에 붙인다.
깜박하고 테이프를 붙이지 않고 자면 다음날 입 안이 말라 있는 게 확 느껴진다.
안구 운동도 중요하다.
하루에 한두 번 눈알을 굴려주고 고개는 움직이지 않은 채 아래 위 사선으로 눈알을 옮기며 안구 스트레칭을 한다.
핸드폰 화면 쳐다보는 횟수도 줄인다.
원래도 잘 사용하지 않지만 더 줄이기 위해 밤 9시부터 오전 9시까지 취침 모드로 설정한다.
핸드폰으로 검색하기 보다는 노트북을 켜는 습관을 들이려 노력하고 유튜브 영상은 보지 않고 소리를 듣기만 한다.
이 정도면 되겠지 라고 생각했다.
눈을 쉬게 하는 게 중요하지만 그렇다고 독서 시간을 줄일 수는 없었다.
이 모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책을 읽다보면 어느 순간 눈에 통증이 느껴졌다.
1시간 정도 읽으면 통증이 시작된다.
1시간에 한 번씩 스트레칭을 하고 눈을 쉬게 해 줘도 2시간이 넘어가면 통증이 심해진다.
다른 일을 할 때는 괜찮다.
영화를 보고, 집안 일을 하고, 쇼핑을 하고, 수다를 떨고, 산책을 할 때는 아무 문제가 없다.
오직 책을 오래 읽거나 노트북으로 내 유튜브 채널 ‘원북’ 추천 도서 영상 만드는 작업을 오래 할 때만 통증이 느껴진다
(막간 홍보: ‘원북’ 구독하시면 좋은 책 추천받으실 수 있습니다).
보르헤스가 생각난다.
80만권에 이르는 책을 관장하는 국립도서관장이 되었지만 시력을 거의 상실하여 정작 단 한권도 제대로 읽을 수 없었던 아르헨티나의 작가.
그는 ‘축복의 시’에서 이렇게 고백했다.
‘신은 빛을 여읜 눈을
이 장서 도시의 주인으로 만들었다.
여명마저 열정으로 굴복시키는 몰상식한 구절구절을
내 눈은 꿈속의 도서관에서 읽을 수 있을 뿐.’
눈에 통증이 시작되면 오른쪽 눈을 감고 책을 읽었다.
책 읽는 걸 멈춰야 했지만 그럴 수 없을 때가 더 많았다.
그렇게 1년을 보냈다.
한쪽 눈을 감고 책을 읽던 어느 날, 더 이상 이렇게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방법을 찾아야 했다.
녹내장 협회에 들어가 녹내장 개선에 관한 글을 모조리 읽어보고 유튜브로 관련 영상을 찾아보았다.
당장 해야 될 일이 무엇인지를 발견했다.
미루고 미뤄두었던 일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