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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일상

친밀함의 암호들

by 유자와 모과
마지팬.jpg


12월이 오면 독일식 크리스마스 케이크인 슈톨렌을 만든다.

10년 전 쯤 광화문에 있는 우드앤브릭에서 처음 슈톨렌을 맛보았다.

슈톨렌을 먹으며 결심했지. 앞으로 크리스마스 케이크는 슈톨렌이다.


백신을 맞지 않아 외식도 못하던 코로나 시절, 남편은 말했다.


“슈톨렌이나 만들어 볼까?”


그 뒤로 우리는 슈톨렌을 직접 만들어 귀한 분들께 선물한다.

슈톨렌은 견과와 말린 과일을 잔뜩 넣어 구운 빵이다.

슈가 파우더가 하얀 눈처럼 소복이 덮인, 통나무 같은 모양이다.


단면으로 자르면 그저 평범한 곡물빵처럼 보이나 실상은 케이크만큼 달콤해서 처음 먹으면 깜짝 놀란다.

만드는 방법이 어렵지는 않지만 과정들이 조금 귀찮다.

재료비도 많이 든다. 사먹는 걸 권장한다.


적어도 한 달 전에는 오렌지 필을 만들어 각종 말린 과일과 함께 럼에 절여 두어야 한다.

슈톨렌을 굽는 당일에는 빵 안에 넣을 마지팬을 반죽한다.

마지팬은 아몬드가루와 슈가파우더를 1대 1로 섞은 앙꼬 같은 거다.

나와 남편은 ‘아몬드 똥’이라 부른다.


“아몬드 똥 만들었어?”

“아직. 견과 구운 다음에 하려고.”


누군가와 함께 하는 시간이 많아지면 둘 만의 단어들이 생겨난다.

수도 없이.

남들에게는 암호와도 같은 수많은 단어들.


게리 콜드웰은 <먼길로 돌아갈까?>라는 책에서 세상을 떠난 친구 캐럴라인과 보냈던 시간을 회상하며 이렇게 말한다.


‘ ‘태팅’이란 우리의, 그리고 아마도 누구에게나 있을 소일거리를 뜻하는 암호였다.

공통의 지인에게 태팅센터를 설명하려다 문득 얼마나 바보 같은 이야기로 들리는지 깨닫고 목이 메던 일이 떠오른다. 친밀함의 암호들이 대부분 그렇듯 해독을 거부하는 말이었으므로.

이 말이 재미있었던 것은 우리 둘만의 것이라는 이유도 있었다.’


포인트는 그거다. 그 말이 재미있는 건 우리 둘 만의 것이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남편과, 가족과, 친구와 만들어가는 친밀함의 암호들.


암호들이 쌓일수록 관계는 점점 달콤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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