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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일상

뭣이 중한디

by 유자와 모과
보늬밤.jpg


일본 영화 ‘리틀 포레스트’를 보며 어떤 맛일지 궁금한 음식이 두 개 있었다.

아카시아 꽃 튀김과 보늬밤.

튀겨 놓으면 맛있지 않은 게 어디 있겠냐마는 튀김에서 아카시아 꽃 향이 날지 그게 궁금했다.

보늬밤은 겉껍질만 까고 속껍질(보늬)은 남긴 생밤을 조린 건데, 까슬까슬한 율피를 어떻게 먹을 수 있는지도 의문이었다.


그러던 어느날, 교회 구역 식구 중 한명이 힘들게 만들었다며 작은 유리병 하나를 꺼냈다.

거기엔 보늬밤이 들어 있었다.

보늬밤을 한 입 베어무는 순간 예상과 다른 식감에 깜짝 놀랐다.

무스 케이크처럼 부드러우면서 달콤했다.

엄청난 디저트구나.


집에 돌아와 바로 레시피를 검색했다.

공정이 까다로웠다.

먹고 싶긴 하지만 이 정도 에너지를 써가며 먹을 필요는 없지.

입맛을 다시며 아쉬워하는 모습을 지켜보던 남편이 자기가 해보겠다고 나섰다.

아니야, 이거 만들기 힘들어. 정말 할 수 있겠어?

남편은 알밤만 주문해 주면 만들어 주겠다고 했다(남편이 하겠다고 했을 때 이미 검색 중이었다).


공주 햇 알밤 1kg이 도착했다.

밤을 물에 담궈 불린 후,

남편은 식탁에 앉아 칼을 들고 밤 외피를 까기 시작했다.

밤에 조금이라도 흠집이 나면 설탕에 조릴 때 으스러지기에 조심조심 까야했다.


한 시간.

두 시간.

세 시간.

네 시간 만에 남편은 밤 까는 걸 끝냈다.

남편이 말했다.


“가만히 있어도 손이 자꾸 떨리네. 이것 봐.”


정말이었다.

남편 손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요리법은 이렇다.

율피만 남은 밤에 물을 붓고 베이킹 소다를 푼 다음 반나절 담근다.

밤 담근 물 그대로 냄비에 올려 약불로 30분 끓인다.

검은 물을 따라 버리고 찬물에 헹군다.

끓이고 헹구는 이 과정을 세 번 반복한다.

깨끗해진 밤을 한알 한알 살펴보며 이쑤시개로 남은 밤 심지와 털을 제거한다.

이제 마지막 차례. 물과 설탕을 넣어 약불에 50분 졸인다.

간장을 한 스푼 넣고 10분 더 끓이면 끝.

보늬밤을 만드는 데 꼬박 하루가 걸렸다.


완성된 밤은 윤기가 자르르 흘렀다.

어쩜 이렇게 잘 까고 잘 졸였니.

밤 한 알을 조심스럽게 입안으로 가져갔다.

생크림처럼 부드럽고 달콤하다.

와. 근데 아까워서 못 먹겠다.


한국에서 리메이크한 ‘리틀 포레스트’에서 주인공은 마루에 앉아 밤조림을 먹으며 생각한다.


‘시간이 주는 선물

밤 조림이 이렇게 맛있다는 건

가을이 깊어지고 있다는 뜻이다.’


밤 조림이 그만큼 맛있긴 하지만,

남편이 보늬밤 만드는 걸 온종일 지켜본 나는 결심했다.

이제 보늬밤은 끝이다.

이게 뭐라고. 맛밤 먹으면 되지.

남편 손이 더 이상 혹사당하는 걸 볼 자신이 없다.


남편은 해보니 할 만하다고, 내년에 또 만들어 주겠다고 하지만,

그러는 와중에도 남편 손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부모님께 조금 나눠드리고 남은 건 몇 달간 아껴 먹었다.

마지막 남은 보늬밤 세 알.

가을은 이미 지났고 한겨울이다.

더 이상 우리 집에서는 맛볼 수 없기에 사진으로 남겨본다.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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