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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일상

돈 주고 살 수 없는 것들

by 유자와 모과
곶감.jpg


얼마 전 시댁에 다녀왔다. 2층 현관 입구에 감들이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

“아버님 이번엔 감 몇 개 만드셨어요?”

“120개.”

“와. 맛있겠다. 저 많이 주세요.”


언젠가부터 매년 아버님은 감을 깎아 곶감을 만드신다.

감 깎고 말리는 게 얼마나 수고스러운지 알기에 아버님이 만드신 곶감만 보면 자꾸 욕심이 난다.

사먹는 것보다 훨씬 부드럽고 달콤한 맛이 난다.


작년 곶감은 특히 보기에도 아름다웠다.

분이 뽀얗게 피어 상주 곶감 저리가라 할 만한 자태를 뽐냈다.

올해는 바람이 많이 안 불어서 분이 잘 안났다고 아쉬워하신다.


하지만 겉모습으로 판단하긴 이르다.

아버님이 주시는 곶감 한 개를 얼른 입으로 가져간다,

역시.

최고의 곶감 맛이 난다.

나는 아버님 곶감이 제일 맛있다고, 올해도 너무 맛있게 잘 됐다며 감탄을 내뱉는다(그러니 남은 곶감 저 다 주세요).

아버님은 올해도 가장 비싼 감을 사서 만들었다고 하시면서 곶감을 봉지에 담으신다.


옆에서 어머님은 대봉감을 박스에 하나씩 넣고 있다.

과수원에서 직접 사와 한 달간 익힌 감이다.

‘내가 최고야’를 온몸으로 보여주는 대봉감의 위엄.

군침이 절로 난다.

올해는 시기를 놓쳐 대봉감을 한 박스밖에 못 먹었는데 어머님 덕분에 또 먹게 됐다.

이런 행운이 있나.


어머님이 일일이 손으로 깐 은행도 한 봉지나 얻었다.

귀한 선물이다.



김수경의 <끼니들>에 이런 문장이 나온다.

‘껍질을 잘 벗긴 날밤의 모양을 일정하게 다듬는 것을 ’밤을 친다‘고 하는데, 밤을 치는 일만큼은 숙련된 솜씨와 일종의 미적 감각이 필요했다.

할아버지가 쳐 낸 그 고운 밤의 모양을 표현할 단어가 기껏 다이아몬드뿐인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할아버지의 밤은 각이 있되 모질지 않은 특별한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었다.’

곶감을 먹을 때마다, 은행을 오븐에 구울 때마다,

식탁에 앉아 조심스럽게 감을 깎는 아버님과 은행 껍질을 까는 어머님 모습이 그려진다.

우리 남편이 착하고 고운 사람이 된 건 다 부모님 사랑 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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