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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일상

회식이 부러울 때도 있다

by 유자와 모과
남편옷.jpg


“다음 주 목요일에 회식이야.”

“또?”

“이번엔 새로운 팀 회식”

“뭐 먹는데?”

“오리 구이”

“좋겠다. 내가 대신 가면 안 돼?”


남편은 MBTI 검사에서 내향형 100%를 찍은 사람이라 꼭 가야만 하는 회식 외에는 일절 참석하지 않는다.

회식은 주로 팀이나 계원이 바뀌는 12월과 1월에 몰린다.

메뉴는 거의 고기다.


남편은 고기 냄새 배는 걸 끔찍이 싫어하기에 회식하는 당일 아침 옷을 입으며 그들에게 운명의 날임을 통보한다.

가디건아 잘가라. 머플러도 안녕. 코트도 안녕. 바지도 잘 가.

회식을 마치고 귀가한 옷들은 모조리 빨래통에 들어간다.

저기, 빨래는 제가 하거든요.


회사라는 조직에서 근무해 본 적 없는 나는 회식이 부러울 때가 있다.

공짜로 비싼 음식도 잔뜩 먹고 얼마나 좋아.


나와 남편은 누가 사주면 감사하게 먹지만 우리 돈 주고 고기집을 방문하는 경우는 잘 없다.

가장 큰 이유는 먹고 나서 뒤처리가 번거로워서이다.

옷을 몽땅 빨고 바로 샤워도 해야 하는데 굳이 고기를 먹을 필요가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다른 이유는 고기 사먹을 돈이면 떡볶이나 짜장면을 두 번 먹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든다. 새우튀김도 좋고.


남편 회사 앞에 분위기 좋은 화로구이 집이 있다.

미국산 소고기를 화로에 구워주는 데 꽤 맛있다고 한다.

음식 평가에 인색한 남편이 괜찮다고 하니 가보고 싶다.

문제는 가격.

현재 100g에 3만원이 넘는다.

혼자 3인분은 먹어야 간신히 배를 채울 만큼 양이 적다고 한다.

둘이 가면 20만원은 내야 한다.

고기 주제에 너무 한 거 아냐?


6년 전부터 고기 집을 지나갈 때마다 남편에게 말했다.

“자기 승진하면 먹자.”

몇 년 뒤 남편은 승진했지만 고기 가격도 그만큼 올라버렸다.

“안되겠어. 퇴직할 때 먹자.”

부디 남편이 퇴직할 때까지 고기집이 잘 버텨주길 바란다.


지금 남편은 회식 중이다.

구석에 앉아 조용히 고기를 쌈 싸먹으며 시간을 확인하는 남편을 상상하면 대신 그 짐을 지고 싶다.

기쁘게 받아줄 수 있는데.

일은 남편이 하고 회식은 아내가 하는 회사는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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