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방을 돌려도 거실 바닥이 따뜻해지지 않는다.
뭐가 문제지?
관리실에 연락했더니 직원분이 올라와 난방기기를 살펴본다.
인서트 핀이 고장난 것 같아요.
연락해보라며 전화번호를 하나 알려준다.
남편은 인서트 핀을 검색한다.
유튜브를 몇 편 시청하더니 인서트 핀 부분에 먼지를 닦아내고 몇 번 마사지를 한다.
다시 보일러를 돌린다.
방바닥이 따뜻해진다.
와. 신기해. 너 전문가 다 됐구나.
손가락 열 개 까딱하지 않고 공부만 하며 살았던 남편은 결혼하면서부터 모든 걸 손수 고치기 시작했다.
신혼 집 부엌을 필름지를 붙여 깔끔하게 바꿔 놓은 게 시작이었다(다른 집으로 이사할 때 나는 필름 시공 회사에 가장 먼저 연락했다. 한번이면 충분하다).
시간이 흐르면서 남편은 고장 난 물건을 고치거나 수리하는 데 점점 능숙해졌다.
거실에 있는 형광등 불빛이 너무 흐리다고 불평하자 LED 전구와 모듈 판을 주문해 싹 바꿔주었다.
샤워기를 교체해도 욕실 수전에서 물이 한 방울씩 똑똑 떨어진다고 지적하자 남편은 수전을 주문해 통째로 바꿔버렸다.
부엌 수전이 촌스럽다고 하자 우아하게 목을 쭉 뻗은 거위 수전을 주문해 새롭게 달아주었다.
작업이 순조롭게 진행됐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안 맞고, 안 돌아가고, 안 빠지고, 잘못 바꿨다.
집안 구석구석을 고칠 때마다 남편은 애를 먹었지만 결국엔 고쳐놓았다.
나는 추임새만 넣으면 되었다.
“야, 우리 남편 최고네. 이걸 어떻게 고쳤대?
숨고에 전문가 등록해야 되는 거 아냐?
만능이다. 만능이야. 남편 덕분에 출장비 아꼈네.
우리 집 살림꾼이야.
남편이 다 고쳐주니 어디로 이사 가든 평생 걱정 없이 살겠구나. 얼쑤.”
몇 주 후 보일러가 또 고장났다.
이번엔 거실 전동 구동기가 문제다.
난방을 돌리지 않아도 구동기가 계속 뱅글뱅글 돌아간다.
이를 어쩌지. 기사님을 불러야 하나?
남편은 전동 구동기만 바꾸면 된다며 인터넷으로 주문하겠다고 말하고 출근했다.
남편은 생각하는 사람이다.
간단하게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있을지 고민한다.
사소한 부분이라고 무시하지 않는다.
직업의 영향도 있는 것 같다.
프로그램을 만들거나 바꾸려면 수많은 변수를 예상하고 그에 맞춰 코딩을 짜야 하기 때문이다.
퇴근 후 남편은 부품을 주문하지 않고 문제를 해결했다.
우리 집엔 딱히 놔둘 물건이 없어 텅 비어있는 빈방이 하나 있다.
겨울엔 난방을 돌리지 않고 문을 닫아 둔다.
한 번도 난방을 해본 적이 없다.
남편은 그 방 구동기를 떼어내 거실 구동기와 바꿔 끼웠다.
바꾸는 김에 인서트 핀도 함께 교체했다.
눈앞에 스프링 핀을 보여주며 설명도 한다.
봐봐. 스프링이 다 죽었지? 그래서 바닥이 안 따뜻해졌던 거야(자기야, 나 책 읽고 있거든).
남편이 집안 수리를 직접 하기 시작한 건 돈을 아끼기 위해서였다.
집 안의 무언가가 고장 났거나 바꾸고 싶다면, 글이나 영상으로 전문가의 설명을 들어본 후 스스로 고칠 수 있을지 판단한 후 대응해도 늦지 않다.
뭐든 딱 한번만 성공하면 자신감이 붙는다.
생각해보면 부모님 세대는 모든 걸 직접 했다.
부모님이 드나들던 철물점엔 없는 거 빼고 다 있었다.
엄마가 풀을 개어 도배지에 바르던 모습, 아빠가 전선을 길게 연결해 필요한 장소에 등을 달던 모습이 떠오른다.
부모님들은 그런 걸 어디서 배운 걸까?
동생은 얼마 전 기사를 불러 집안 등을 LED로 바꿨다.
우리는 예전에 직접 바꿨다고 하니 깜짝 놀라는 눈치였다.
그걸 직접 할 수 있어?
해보면 쉬워. 요새 넌 너무 바쁘니 잘했어. 다음에 기회 되면 해봐. 평생 써 먹을 수 있으니까.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질수록 사는 게 만만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