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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일상

이승만 지우기 이제 그만 하시죠

by 유자와 모과
건국전쟁포스터.jpg


대학원에서 영미시 수업을 들을 때였다.

주제는 ‘디아스포라’

특정 민족이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여 집단을 형성하는 걸 뜻한다.


미국에서 활동하던 한국 시인을 공부하던 중 눈에 띄는 자료가 있었다.

이승만의 편지였다.

대통령이 왜 여기서 나와?


하와이에서 독립 투쟁을 하던 이승만이 미국의 도움을 촉구하는 내용이었다.

이승만이 독립 투쟁가였어?

의아한 마음이 들었지만 그러고는 끝이었다.

한국 역사에 아무 관심 없었다.


몇 년 후,

지나가는 투로 아빠가 물었다.


“이승만 대통령에 대해 아니?”

“이승만이요? 독재자 아니에요?”

“나도 그런 줄 알았어. 그렇게 배우고 자랐거든.

근데 공부해보니 그게 아니야.”


아빠는 시간날 때 읽어보라며 서재에 꽂힌 책을 가리켰다.

알겠다고 했다.

시간은 났지만 확인하기 귀찮았다.

그러고는 또 끝이었다.


몇 년 후,

이승만 건국 대통령에 관한 만화 책이 나왔다.

그때 처음 알았다.

한국 대통령 위인전에 이승만이 없다는 걸.

더 이상 미루기는 싫었다.


도서관에 희망도서로 만화책을 신청했다.

<엄마가 들려주는 이승만 건국 대통령 이야기>

이거라도 읽자 하는 심정이었다.

만화니까 재밌겠지.


책을 읽으며 울었다.

마음이 벅찼다.


내가 지금 누리는 ‘자유’가 어디서 왔는지 알게 되었다.

이승만이 29살에 감옥에서 쓴 <독립전쟁>도 읽었다.

내게도 존경할 위인이 생겼다.

드디어!


나는 이승만에 대해 아는 게 하나도 없었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안다고 생각했다.



<건국전쟁>이 개봉했다.

김덕영 감독이 만들었다.

이승만 대통령 다큐멘터리 영화다.

영화는 이승만에 대한 오해와 진실에 초점을 맞췄다.


이승만이 친일파를 등용한 게 사실인지.

6.25때 한강다리를 끊고 도망간 게 사실인지.

미국 앞잡이였다는 게 사실인지.

부정선거 원흉인 게 사실인지.


독재자라는 말이 사실인지.

분단 책임자라는 게 사실인지.

독도를 우리 땅으로 만든 게 누구인지.

양반과 노비 신분차별을 없앤 게 누구인지.


영화는 객관적 자료를 제시하며 관객에게 묻는다.

자. 당신 눈으로 직접 보세요.


한국이 일본 식민지로 고통받던 시절

미국은 세계 최대 빈민국이었던 한국에 관심이 없었다.

한국 독립군이 모두 합쳐 5천 명이 되지 않았을 때 일본 군대는 700만 명이었다.

이승만은 외교를 통해 이 나라를 구할 수 있다고 믿었다.


‘독립에 미친 늙은이’

미국 사람들이 미국에서 독립 운동을 펼치던 이승만에게 붙인 별명이었다.


진실은 살아남는다.


여성으로서 영화에서 감동받은 부분이 있다.


1916년 하와이에서 독립 투쟁을 하던 이승만은 여성학교를 세운다.

‘한인여학원’이다.

하와이 최초의 여자학교였다.


한국에서는 여자 아이가 태어나면 버리던 시절이었다.

하와이 이민자 가정에서도 여자 아이는 버려졌다.

이승만은 길거리에서 구걸하는 한국 여자 아이를 데려와 학교에서 키웠다.

이승만은 여자 아이도 평등하게 교육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승만의 여성 인권 사상은 1948년 대한민국 첫 선거에서 그대로 이어진다.

당시는 양반과 노비 차별도 존재하던 시절이었다.

여성 인권? 그게 뭐야?


이승만은 여성에게도 투표권이 부여되어야 한다고 주장했고 그것을 실현시켰다.

프랑스가 여성에게 투표권을 부여한 건 1944년이다.

스위스는 1971년이다.


대부분의 선진국에서는 여성들이 투표권을 얻기 위해 거리로 나가 투쟁했다.

여성은 감옥에 갇히고 모욕을 당했다.

투표권을 주장했다는 이유였다.

대한민국 여성은 첫 선거 때 투쟁 없이 투표권을 얻었다.

기적이었다.


1948년 5월 10일 자유 총선거를 실시하기로 하자

4월 3일,

제주도에서 남로당 주도로 총선거에 반대하는 무장폭동이 일어난다.

그 당시 육군 병력의 약 10%가 좌익 공산 세력이었다.

남로당원은 약 50만 명.

남로당은 군인과 민간인을 학살했다.


여수 사건도 마찬가지였다.


이승만 대통령은 국가보안법을 내려 주동자들을 체포하고 무기를 압수했다.

폭동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양쪽 합쳐 3만 명 정도 되는 희생자가 발생했다.


누군가는 이승만이 과잉 진압을 하였다며 비난한다.

그 과정에서 무고하게 희생된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누가, 왜 국가 반란을 일으켰는지도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

총과 칼을 든 무장대 앞에서 어떻게 해야 평화롭게 해결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희생을 줄일 수 있을까?


영화라는 특성상 시간적 제약으로 이승만 대통령의 공로가 생략된 부분이 많다.


그가 우리에게 준 가장 큰 선물은 ‘자유’다.

재산을 가질 수 있는 자유.

비판할 수 있는 자유.

종교를 선택할 수 있는 자유.

여행할 수 있는 자유.

글을 쓸 수 있는 자유.


북한에서 태어났다면?


<건국 전쟁>이 개봉한 지 일주일이 지났다.

어제 오전까지도 네이버에서 건국전쟁 포스터를 찾아볼 수 없었다.

영화를 예매할 때도 의아했다.

왜 건국전쟁만 포스터가 없지?

영화 안하나?

다음 포털도 마찬가지다.

왜 그러는 거니?

비난이 들끓자 그제야 포스터가 걸렸다.

개봉 6일만이었다.


이승만 지우기 이제 그만 좀 하시죠.


이승만 건국 대통령.

잊지 않겠습니다.


이승만 만화책.jpg



“나라를 한 번 잃으면 다시 찾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우리 국민들은 잘 알아야 하며,

경제에서나 국방에서나 굳건히 서서

두 번 다시 종의 멍에를 매지 말아야 한다.

이것이 내가 우리 국민들에게 주는 유언이야.

반드시 자유를 지켜야 해.”

이승만 유언 by <엄마가 들려주는 이승만 건국 대통령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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