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끝자락

by 유자와 모과
눈나무.jpg


새벽 4시 50분. 따뜻한 물을 마시며 거실 커튼을 연다.

근데 오늘, 왜 이리 환하지?

나무 가지마다 눈이 내려앉았다.


나무는 한 송이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 가지를 쭉쭉 뻗어 눈을 끌어안는다.

밤새 내린 하얀 눈송이들이 나뭇가지에 걸터앉아 땅 아래를 살핀다.

아무도 없네. 너무 일찍 왔나?

겨울왕국이다.


세수를 하고 옷을 입은 후 집을 나선다.

사순절 새벽기도 3일차.

신문은 이미 문 앞에 놓여있다.

택배 차량은 이미 아파트 앞에 서 있다.

아파트 내 길은 이미 비질이 되어 있다.

나무는 이미 몸치장을 마쳤다.


눈발이 날린다.

아무도 밟지 않은 눈길 위 뽀드득 소리가 나도록 걷는다.

눈이 녹아 질퍽해진 웅덩이길 발꿈치 들고 걷는다.

공기는 따뜻하다.

주변은 고요하다.

사락사락 눈 내리는 소리.

생크림 컵케이크로 변한 관목들.


예배 마치고 돌아오는 길.

여전히 눈이 내린다.

나무로 우거진 공원은 영화 속 풍경처럼 새하얗다.

벚꽃이 활짝 피어난 것 같기도 하다.

눈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하늘이 내린 깜짝 선물이다.

봄이 온 줄 알았지?


이불에 폭 쌓여있는 남편에게 속삭인다.

멋진 선물이 있어. 눈떠봐.



춘설


문 열자 선뜻!

먼 산이 이마에 차라.


우수절 들어

바로 초하루 아침,


새삼스레 눈이 엎인 뫼뿌리와

서늘옵고 빛난 이마받이하다.


얼음 금가고 바람 새로 따르거니

흰 옷고름 절로 향기롭어라.


(정지용 시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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