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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일상

한사람

by 유자와 모과
브런치알림.jpg


오후 3시쯤 헬스장에 간다.

회원이 가장 적은 시간이다.

6명 정도 있다.

헬스 트레이너들도 이때가 휴식시간이다.

음악조차 차분한 곡이 흐른다.


몇 달 운동을 하다 보니 한 사람이 눈에 들어온다.

평일에는 비가 오든 눈이 오든 바람이 불든 나는 헬스장에 가고 그도 헬스장에 온다.

나는 월화수목 몰아서 가고 금토일을 쉰다면 그는 이틀 오고 하루 쉬는 식이다.

따라서 일주일에 세 번 정도 마주친다.

나이는 나와 비슷한 것 같다.

트레이너처럼 몸이 좋다.


여러 시간대에 방문해 봤지만 민소매티를 입고 운동하는 남자는 그가 유일하다.

항상 야구 모자를 쓰고 검은 백팩을 창가에 둔다.

무슨 일을 하길래 이 시간에 올 수 있을까?

그는 프리웨이트 존에서 주로 머문다.

나는 기구 운동을 하기에 그와 동선이 전혀 겹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헬스장에 들어서면 창가를 확인한다.

창가에 가방이 놓여 있으면 왠지 안심이 된다.

저 분도 왔으니 나도 열심히 해볼까 하는 마음이 든다.

그와 나는 말없는 동지다.


며칠 전 그가 긴팔과 긴바지를 입고 왔다.

혹시 몸이 안 좋은 건 아닌지 걱정되더라.

다음날 다시 민소매티를 입어 한시름 놓았다.

브런치에 꾸준히 글을 쓰기 시작한지 두 달이 되었다.

보통 오전 8시쯤 글 한 편을 올린다.

글을 올리면 바로 창을 닫는다.

남편 계정을 쓰는 거라 좋아요나 댓글 알림은 노트북을 켜서 로그인을 해야 확인 할 수 있다.

다음날 새 글을 올리며 확인한다.


한 달 전, 새벽 5시마다 글을 올린 적이 있다.

창을 닫으려다 궁금해졌다.

이 시간에 누가 깨어있을까?

새로 고침을 하며 종 모양에 점이 찍혔는지 확인했다.

다른 글을 쓰며 틈틈이 새로고침을 했다.

네 분 정도가 30분 안에 좋아요를 눌러 주었다.

다들 부지런하시네.


일주일 동안 새로고침을 하며 새벽에 누가 깨어있는지 확인하다보니 한분이 눈에 띄었다.

글을 올리면 가장 먼저 좋아요를 누르는 분이다.

새벽 5시에 올리건, 7시에 올리건, 8시에 올리건 3분 안에 하트가 달린다.

신기하다.

로봇인가?

내 글을 읽고 누르는 걸까?


그분을 인식하는 순간 버릇이 시작되었다.

이제는 글을 쓰면 잠시 기다렸다가 새로고침을 누른다.

그분이 좋아요를 누르면 창을 닫는다.

그분이 봤으니 됐다는 느낌이 든다.

뭐가 됐는지는 잘 모르겠다.

왠지 숙제 검사가 끝난 기분이랄까.


딱 한번 그분이 좋아요를 누르지 않은 날이 있다.

어디 아프신지 걱정되더라.

나도 이런 내 모습이 황당하다.


일상을 살다보면 가끔 특정한 ‘한 사람’이 눈에 들어온다.

누구인지 전혀 알지 못하지만 심리적으로 그에게 살짝 기대어 본다.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한 사람’이 될 수 있을까?

하루의 루틴을 수행할 때 낯선 누군가가 힘이 되기도 한다.



나의 글을 읽어주는 사람이 단 열 명이라도 존재한다면, 그리고 나에게 쓰고 싶은 문장이 남아 있다면, 고요하고 적당한 어둠 속에서 꾸준히 쓰고 싶다. (최진영)

<작가의 루틴> 김중혁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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