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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자와 모과 Jun 04. 2024

부모 맞춤 서비스


오래 전 시부모님과 속초 여행을 떠났다.

아버님이 설악산 케이블카를 타보고 싶어하셔서 그리로 갔는데 주차장 입구로 들어서려는 자동차 줄이 끝도 없었다.

표를 끊고 케이블카를 타려면 차 안에서 한 두시간은 기다려야 할 판이었다.

“아버님 어떡할까요? 많이 기다리셔야 할 것 같은데요. 기다릴까요? 그냥 갈까요?”

아버님은 그럼 그냥 가자고 하셨다.

남편은 그 말을 듣고도 한참을 머뭇거렸고 나는 그런 남편이 의아했다.

나중에 남편이 말했다.     


아빠는 케이블카 타고 싶었을 거야.

아니 그럼 기다리자고 말하면 되잖아. 왜 싫다고 하셨지?

세 번은 물어봐야 속마음을 말하셔.

왜?

몰라. 예전부터 그랬어. 어렸을 때 그런 말 자주 들었어. 어른들께 세 번은 권해야 한다고.

와. 너무 한 거 아냐? 처음부터 확실하게 표현하면 서로 좋잖아.

몰라.     


결혼해보니 우리 집과 남편 집은 종교를 제외하고는 같은 부분을 찾기 어려웠다.

우리 집은 식사를 마친 후 각자 하고 싶은 걸 하는 반면 남편 집은 하루 종일 거실에 함께 있는 분위기였다.

우리 집은 기념일은 전혀 챙기지 않는 반면 남편 집은 매우 중요하게 생각했다.

우리 집은 솔직하게 각자의 생각을 말하는 반면 남편 집은 두루뭉술하게 표현했다.

처음에는 이게 뭐지 싶었는데 차츰 양가 부모님께 적응하기 시작했다.     

결혼 13년차, 친정과 시댁 부모님께 고객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 중이다.


명절과 기념일에는 남편 손을 꼭 잡고 시댁을 방문한다. 

길이 막혀 5시간 만에 도착해서 간신히 밥 한 끼를 먹고 다시 5시간을 운전해 되돌아간다 할지라도.

함께 외식 할 때는 분위기 좋은 장소를 찾고 아버님께 메뉴는 괜찮은지 반드시 세 번 물어본다(다시는 속지 않으리).

시부모님은 평생을 한 지역에서 사셨고 성품이 좋으셔서 친구들이 많다.

두 분 다 운전도 잘하셔서 매주 친구들과 어디든 다녀오신다.

따라서 시댁 부모님께는 용돈이 최고의 선물이다.     


친정 부모님은 격식을 따지지 않기에 명절에도 오면 좋고 안와도 그만이다.

시댁에 다녀오느라 지쳐 있기에 친정에 가서는 점심만 먹고 돌아온다.

외식 할 때도 드시고 싶어 하는 음식이 명확하기에 어디를 가야할지 고민할 필요가 없다.     

친정 부모님은 지금까지 여러 번 이사를 다니셨다.

몇 년전 아무 연고도 없는 수원에 정착하셔서 동네 친구 하나 없다.

운전도 하지 않으시니 어디를 가기도 어렵고 함께 갈 친구도 마땅찮다.

따라서 친정 부모님께는 여행이 최고의 선물이다.

명절이나 생신 때 용돈을 드리는 대신 함께 여행을 간다.

비수기 평일 숙박비가 저렴하기에 주로 여행하는 시기는 봄과 가을이다.     


양가 부모님이 연세가 많아질수록 자식에게 심리적으로 기대는 부분이 커진다.

부모님의 까다로움을 불평할 때도 있고, 피곤하다며 고개를 흔들기도 하지만

다시 힘을 내어 한분 한분에게 세세한 맞춤 서비스를 해드리고 싶다.

부모는 이 세상에서 만나는 사람 중 가장 중요하고 소중한 고객이니까.        

  

부모가 자녀에게 간섭하는 경우를 떠올리겠지만의외로 많은 부모가 자녀의 갑질 때문에 마음을 다친다. “엄마 아빠는 그게 문제야그렇게 살 거면 빨리 이혼해!”, “친구 엄마처럼 세련되게 입으면 안 돼?” 하며 선을 넘는 조언과 비교도 한다

<마음 지구력윤홍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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