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문진 항이나 통영 항을 거닐다 보면 작은 고깃배들이 항구에 옹기종기 모여 있다.
배 선체 중앙에는 이름이 큼직하게 적혀 있다.
창대, 일출, 필승, 행성, 벽산, 부성, 대한 같은 두 글자로 된 이름이 대부분이다.
모든 선박은 이름이 있고 성(性)이 있다.
조선소에서 한척의 배가 완성되기 전까지는 통상적으로 선체 번호로 불린다.
그러다 배가 건조되면 본격적인 항해에 앞서 진수식이라는 축하 행사가 열리게 되고, 거기서 공식적으로 배의 이름을 지어주는 명명식을 진행한다.
“오늘부터 이 크루즈선을 공식적으로 다이아몬드 프린세스호 라고 명명한다”라고 발표하는 것이다.
명명식은 오래전부터 여성들이 스폰서를 맡고 있다.
유일한 예외지역은 여성의 사회진출을 금기하는 중동지역이라고 한다.
명명식에서는 왜 여성이 호명할까?
선박은 사물이지만 여성 명사로 쓰인다.
영어로는 ‘it’이 아닌 ‘she'로 받는다.
왜 여성인지는 여러 설들이 있다.
배의 어원이 된 라틴어가 여성이라 그렇다는 설도 있고, 거친 항해 중 어머니가 아이를 돌보는 것처럼 안전하게 운항되기를 기원하는 마음에서 여성으로 붙였다는 설도 있다.
선박이 건조되면 선박을 보호하고 은총을 내려줄 상징적인 여성을 대모(God Mother)로 선정하여 행사를 진행한다.
주로 선박회사와 관련된 인사들이나 유명인이 대모를 맡는다.
MSC 크루즈의 경우 소피아 로렌이 공식 대모로 선정되어 있다.
크루즈 선박은 대부분 회사 명칭이 배 이름에 들어간다.
코스타 크루즈 소속의 선박이라면 코스타 세레나(Costa Serena), 코스타 빅토리아(Cost Victoria) 식으로 이름이 붙여진다.
내가 탄 다이아몬드 프린세스 호는 프린세스 크루즈 회사 소속이라는 뜻이다.
철수와 영희처럼 크루즈 선박에도 자주 쓰이는 이름들이 있다.
네비게이터(Navigator), 보이저(Voyager), 스타(Star), 익스플로러(Explorer), 스카이(Sky) 등은 선사들이 사랑하는 이름이다.
진수식에서는 처음으로 물로 나아가는 배와 선원들의 안전을 기원하고, 앞으로의 항해가 순조롭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선박 뱃머리에 샴페인을 깨뜨리는 세례식도 거행한다.
고대에는 바다의 신을 공경한다는 의미로 짐승이나 인간을 재물로 바치기도 했으니 비싼 샴페인을 깨트린다고 너무 안타까워하지 말자.
문제는 와인 병보다 두꺼운 샴페인 병의 두께다.
뱃머리에 던지는 샴페인 병이 잘 깨져야 운이 좋은 것으로 간주되는데 드물게 병이 깨지지 않는 경우가 있다.
공교롭게도 1912년 최악의 해상사고로 기록되는 타이타닉호가 세례식 때 샴페인 병이 제대로 깨지지 않았다고 한다.
그로부터 딱 100년 후인 2012년에 코스타 콩코르디아호가 암초에 걸려 좌초되었다.
33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는데 이 배 역시 2006년 진수식 때 샴페인 병이 제대로 깨지지 않았다고 하니 미신이라기엔 섬뜩한 기분이 든다.
선박에게 국적도 주어진다.
통상적으로는 대한민국 국민이 소유했다면 선박도 한국 선박이지만 선주가 선박의 등록국가를 선택할 수도 있다.
국적은 국가가 선박에 대해 입법, 사법, 행정, 사회상의 관할권 행사를 할 수 있음을 결정하는 기본적 요소다.
선박은 국적국의 국기를 게양해야 하고 그 국기는 국적의 증거가 된다.
따라서 선주는 자신이 유리한 대로 선박의 등록국가를 정하기도 한다.
운항 등의 편의를 위해 선박소유자의 국가가 아닌 외국에 등록된 선박을 편의치적선(Flags of Convenience)이라고 한다.
파나마, 홍콩, 몰타, 온두라스 등의 나라가 선주들에게 인기가 있다.
이유는 이 나라들이 세금만 제대로 내면 선박에 대한 통제를 거의 하지 않기 때문이다.
저율과세, 고용 편의성, 선박 운항의 유리함 때문에 편의치적선으로 등록하는 선주들이 상당하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