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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자와 모과 Jun 07. 2024

제천 여행


제천에서 초중고를 나왔다.

내게는 제천이 고향과도 같은 곳이다.

부모님도 제천에서 오래 사셨으니 비슷한 심정이다.

부모님을 모시고 제천 여행을 떠났다.

제천에 살면서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장소를 골랐다.

둘 다 최근에 조성된 곳이다.     


2시간을 달려 청풍호반에 다다랐다.

충주호를 끼고 굽이굽이 도는 드라이브길은 변함없이 아름답다.

어릴 때부터 크면 여기서 데이트 해야지 생각했던 길이다.

충주호와 연결된 월악산 끝자락 섬들이 악어떼가 모여 있는 것과 같다고 하여 악어섬이라는 명칭이 붙었다. 

이름 그대로 악어떼가 충주호에 가득한 것처럼 보인다. 


근처 식당에서 막국수와 불고기 전골을 점심으로 먹는다.

옥순봉 식당. 소박하고 깔끔하다. 

옥순봉 출렁다리로 이동.     

청풍호를 가로질러 긴 다리를 놓았다. 

입장료는 성인 3천원. 2천원은 지역화폐로 돌려준다. 

지역화폐로 생수와 뻥튀기를 샀다.


흔들다리는 생각만큼 흔들거리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아예 안 흔들리는 건 아니다.

울산 흔들다리보다는 덜 흔들리고 예산 흔들다리보다는 더 흔들린다.

흔들다리가 유행이라 없는 도시는 명함도 못 내밀 판.

고소공포증이 있는 아빠는 앞만 보며 걷는다.

아빠를 닮아 높은 곳을 싫어하는 나도 앞만 보며 걷는다.

다리가 끊어져도 호수에 떨어지니 죽지는 않을 거다(원주 소금산 출렁다리 같은 곳은 답이 없다).

다리를 건너면 호수 따라 걷는 데크 길이 있다.

천천히 걸으면 왕복 30분 정도.

나무가 우거져 시원하다.    

 

다시 차를 타고 충주호를 바라보며 드라이브.

카페 라끄에서 차 한잔.

호수 바로 옆이라 분위기가 좋다.

나무 그늘 아래 야외 자리도 많다.

우리는 옥상에 앉는다.

건축상을 받았다는 콘크리트 월 카페에 가보려 했으나 휴무라 여기로 왔는데 부모님 반응을 보니 오길 잘했네.     



제천 의림지를 지나 비룡담 저수지 도착.

솔밭 공원 위에 있는 저수지다.

솔밭 공원은 학교 소풍, 교회 야유회 때마다 오던 장소. 

바위나 나무 뒤에 숨겨 놓은 쪽지(보물)를 찾고, 풀밭에 대충 앉아 김밥을 먹으며 즐거워하던 시절이 있었다.

어렸을 적엔 저수지 뒤로는 꽉 막혀 있어서 둑방에 올라 바라보기만 했는데 세상에, 언제 길을 닦은 걸까?

저수지를 한 바퀴 돌 수 있도록 전체 데크를 깔아놓았다.


저 성은 또 뭐지? 마법의 성?

의림지보다 운치 있잖아.

총 길이 4.5km.

아까시 나무와 산목련을 바라보며 걷는 길이 한가롭다.

제천, 너 많이 컸다.     


오후 5시. 여전히 배가 불러 숙소에서 간단히 저녁을 먹기로 한다.

부성당에서 빵을 고른 후 원주 오크밸리로 출발.

비수기 평일이라 31평을 97,000원에 예약. 

숙소에 도착해도 여전히 밖이 환하다. 따뜻한 햇살.

겨울이 영영 사라져버리면 좋겠다.

미안한데 겨울아, 나는 여름에도 손발이 얼음장처럼 차가워서 나보다 차가운 너를 감당할 수 없어.    

 


체크인을 하니 방 키 대신 비밀번호를 문자로 보내준다.

점점 핸드폰 없이 살 수 없는 세상이 되어간다.

체크아웃할 때 키를 반납하지 않아도 되니 그건 편하겠다.

부모님은 쉬시고 혼자 숙소 맞은편에 있는 스타벅스에서 차 마시며 책 읽기.

이제야 나만의 시간을 갖는구나. 


평일엔 누가 오나 봤더니 단체로 온 팀들이 많다.

공무원 연수, 회사 연수, 대학생 MT 등.

둘이나 넷인 경우는 골프 치러 온 부부들.

다들 느긋한 표정으로 느긋하게 의자에 앉아 있다.     


다음날 아침, 부모님은 밀키트로 가져온 황태 해장국을 끓여 드신다. 

난 스타벅스로 건너가 커피 한잔.

선물받은 기프트카드를 오크밸리에서 다 쓰겠네.

쓴맛이 강한 스벅 커피는 내 취향이 아니다. 

스벅에 가는 이유는 분위기 때문.

편안한 마음으로 쉴 수 있는 카페이기에.

요즘 스벅이 실적 부진으로 주가가 많이 떨어졌던데.

소액 주주지만 응원하는 마음으로 몇 주 담아본다.

스벅 힘내. 너가 잘되야 내 미래가 밝지.    

 

부모님과 조각공원을 둘러 본 후 소나타 오브 라이트 길로 접어든다. 

저녁에는 입장료를 받는 숲속 산책로다. 왕복 40분 정도. 

다시 입구로 오면 오른편에 다둔길 산책로가 있다. 

다둔은 산의 둔덕에 있는 마을이라는 의미다.

숲속 둘레길인데 팔각정까지 40분 정도 걸린다. 전체 길이는 40km라고 한다. 

원주 굽이길 코스 중 일부라고 한다. 

울창한 숲길인데도 길이 험하지 않아 좋다.

산을 좋아하는 부모님께 딱 맞는 코스다.     

산 속을 거닐다 보니 벌써 점심시간.

지난주에 남편과 왔던 묵향에 다시 들려 솥밥정식을 먹는다.

맛있다.



근처 카페로 이동.

절벽 바로 앞에 위치한 카페 스톤 크릭.

와. 이곳에 땅을 구입한 주인에게 박수를 보냅니다.

언제 사 놓으셨을까?

덤불 사이를 지나 내려가면 바로 앞이 삼산천이다.

작은 물고기들이 떠다닌다.


천 맞은편이 절벽인데 겨울에는 빙벽 등반의 성지로 불리는 곳이다.

2002년 겨울, 원주클라이머스 연합회 회원들이 강물을 끌어올려 조성한 인공 빙벽이라고 한다.

동양 최고 규모라고 하니 꽁꽁 언 겨울에도 볼만하겠다.     


집에 도착하니 오후 5시. 

날씨만 좋으면 여행의 반은 성공이다.

날씨가 좋지 않을 때도 성공하는 방법이 있다.

사랑하는 사람과 가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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