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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lyingoreal Sep 07. 2024

당신의 가정에서 벌어지는 멋진 일

사소한 듯 보이지만 마땅히 해야 할 집안일로부터 아이가 배우는 것

  아이에게 집안일을 돕게 하는 것은 가족 구성원으로 인정하는 것과 같다. 책임감을 가르치는 것은 아이에게 성장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아이가 스스로 옷을 입을 수 있을 정도의 나이가 되면, 3살부터라도 작은 일을 맡기는 것이 바람직하다. 아이와 함께 집안일을 하는 것은 가족의 유대감을 높이고 아이의 성장에 도움이 되는 멋진 일이다. 하지만 많은 부모들이 '아이를 위해서'라는 명목으로 이런 귀중한 경험을 무의식적으로 빼앗고 있다.




  얼마 전, 아파트 산책로에서 본 장면이 떠오른다. 아빠와 아들이 각자 무언가를 들고 바쁘게 걸어가고 있었다. 아파트 분리수거일이었는데, 아빠는 구식의 전자레인지를 양손에 들고, 초등학생 3학년쯤 보이는 아이는 각종 플라스틱류가 가득 든 종이상자를 들었다. 한눈에 봐도 아이 어깨너비보다 훨씬 폭이 넓은 상자이니 그 안에 빈 플라스틱이 담겼다 하더라도 어린아이에게는 버거워 보였다. 아빠도 신경이 쓰이는지 자꾸 뒤를 쳐다보며 따라오는 아들에게 물었다. "아빠가 들고 갈까?" 그러자 아들이 대답했다. "아뇨. 괜찮아요." 얼마 가지 않아 아들은 상자를 바닥에 내려놨다가 다시 들고 끝까지 분리수거장으로 갔다. 나는 천천히 걸으며 그들을 지켜보면서 문득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교육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아이를 키울 때는 집안일을 돕는 것을 사소하게 여겼다. '공부하기도 한창 바쁜데.', '내가 후딱 하고 말지.'라는 생각으로 그것은 아이의 일이 아니라고 여겼다. 시간이 흘러 아이들은 모든 집안일이 엄마의 몫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청소기를 밀고, 먹은 그릇을 설거지하고, 실내화를 빨고, 빨래를 개고, 자고 난 이불을 정리하고, 분리수거하고, 화장실의 두루마리휴지가 떨어지기 전에 미리 수납장에 휴지를 채워 넣고, 변기를 청소하는 일 등 모든 일이 나의 몫이 되었다. 이는 단순히 내가 일을 더 많이 해서 고단해지는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 더 중요한 것은 아이들이 생각하고 배울 기회를 잃게 된다는 점이다.

  어지럽히고 나가도 매일 방에 들어설 때마다 깔끔한 상태가 되어있는데, 정리할 필요성을 느낄 수 있을까? 물건을 정돈하고 질서를 잡는 등 어린 시절부터 길러야 할 근면함과 자리 관리 능력을 놓치게 된다. 자신의 일상을 관리하지 못하면서 다른 일들을 잘 해내길 바라는 것은 엄마의 희망사항일 뿐이다.


  



많은 아이들이 일상생활에 필요한 기본적인 일들을 '사소한 것' 쯤으로 여기고, 그것을 누군가가 대신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엄마들은 고통받는다. 이는 공부와 일상생활의 기술이 상반된 것처럼 여겨지는 오래된 인식이 우리 생활에 스며들어 생긴 문제이다. 친정 엄마도 공부량이 많은 손주들을 안타까워하며 "아휴, 공부하기도 힘든 애인데, 그냥 해줘. 잠잘 시간도 얼마 없는데."라고 하셨다. 나도 잔소리하기가 싫어서 어금니를 꽉 깨물고 못마땅하지만 가끔은 그렇게 했다. 하지만 '때가 되면 알아서 하겠지'라는 생각은 너무 안일했다는 것을 이제야 깨닫는다.



1) <엄마를 위한 멘탈수업>  p.179

  철학을 가지고 휘둘리지 않고 아이를 키우는 것은 쉽지 않다. 부모로서 우리의 선택은 상황에 따라 불확실할 수 있다. 우리가 누구를 만나고, 어떤 심정이었으며, 어떤 기대를 품었는지에 따라 아이의 인생 전환점이 달라질 수 있다.

  이는 마치 라퐁텐 우화에서 아버지와 아들이 당나귀를 업고 가는 이야기와 유사하다. 아버지와 아들이 당나귀를 팔러 장에 가는데, 주위 사람들이 당나귀에 짐을 싣지 않고 두 사람이 끌고 간다고 비웃자 아버지는 곧바로 아들을 태운다. 한참을 가다 보니 어떤 노인이  아버지는 힘들게 당나귀를 끌고 가는데, 아들은 편안하게 당나귀를 타고 있다며 혀를 끌끌 차자 이번엔  아버지가 당나귀를 탄다. 이번엔 빨래터의 여자들이 조그만 아이를 걷게 한다고 이야기하자 아버지는 다시 아들과 함께 당나귀를 탄다. 조그만 당나귀에 두 사람이나 타다니 당나귀가 불쌍하다는 아가씨 이야기를 듣고는 결국 당나귀를 짊어지기에 이른다. 그러다가 그만 당나귀를 물에 떨어뜨리고 만다는 이야기다. 이처럼 우리도 아이를 키우며 주변의 의견에 휘둘려 판단력을 잃을 수  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아이의 성장을 믿고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그 성장의 기회를 매일매일 제공하는 것이다.



 

  우리는 아이를 키울 때, 사랑하겠다고 다짐을 하지만 구체적으로 아이와 무엇을 나눌 것인지 일상적으로 무엇을 함께 할 것인지 생각하지 않는다. 평범함 속에서 가르쳐야 할 중요한 가치들을 놓치기 쉽다. 아이가 공부를 해서 좀 더 편안한 선택을 하길 바라는 엄마의 마음으로 당연히 일상에서 해야 할 것을 배제시킨다. 하지만  공부는 배움의 욕구가 있어야 가능하며 공부의 영역도 학교 공부에만 있지 않다. 알고 보면 도처가 공부할 거리이다.

  요즘 세상은 달라졌다. 요리를 잘하는 사람은 요리 인플루언서가 되고, 정리를 잘하는 사람은 정리수납전문가 된다. 그것은 새로운 분야의 지식이다. 신발에 그림을 그려서 고가로 파는 커스텀 신발 아티스트도 있다. 그러니 오히려 생활을 주의 깊게 들여다보도록 하는 편이 더 낫다. 그러려면 적극적으로 집안일에 참여하며 불편을 겪고 개선해 보고 다른 가족구성원의 반응을 확인하는 모든 절차가 실은 마케팅 과정이라 볼 수 있다.

  시대가 이러하니 아이에게 집안일을 시켜 가족이 함께 움직이는 것은 멋진 일이다. 그것은 단순히 일을 나누는 것이 아니라 삶을 나누는 것이다. 아이는 그 과정에서 책임감을 배우고, 가족의 일원으로서 자신의 역할을 인식하게 된다. 그리고 그 작은 경험들이 모여 훗날 아이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어줄 것이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아이의 성장을 믿고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그 성장의 기회를 매일매일 제공하는 것이다. 당신 앞에 당나귀가 온다고 생각해 보자.  이제 당신의 선택은 무엇인가? 아이의 손을 잡고, 부모로서 길을 함께 걸을 것인가, 아니면 타인의 시선에 휘둘리다 당나귀를 놓치고 말 것인가?




1) 저서 <엄마를 위한 멘탈 수업>(2024.9.10 출간) Ⅲ. 관계: 같이 키우는 아이 편에서 '내 맘대로 육아 청사진'을 부록으로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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